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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미의 세상 Aug 01. 2018

북한산둘레길

                                                                                                                                                                                                                                                                


오늘은 그저 소파에 누워 TV 드라마나 봐야지~~

그때 창밖만 바라보던 남편
"오늘은 미세 먼지가 없다. 북한산이 너무 잘 보여."
이궁~ 또 마음이 약해진다.
"그래! 남을 위해 봉사도 하는데. 여보 우리 북한산 둘레길이라도 가볼까?"
남편의 얼굴에  금세 웃음꽃이 핀다.
세수를 하고 나오니 어느새 배낭에  물, 커피, 과일, 과자 등 간식을 엄청 싸고 있다.
"여보, 나 제일 쉬운 산책코스 잠깐 다녀올 건데..."
"그래 녹번역에서 올라가는 길이 짧고 좋다더라!"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도착한 녹번역에는 둘레길에 대한 표지판이 보이질 않는다. 내려오는 등산복 차림의 남자에게 물어 아파트 사이로 한참을 올라서야 보이는 표지판. 땡볕에 아스팔트 길을 걷는 것은 정말로 싫다.
벌써부터 무릎이 삐걱거린다. 이 더운 날씨에 내가 왜 오자고 했을까!   

무릎이 아픈 뒤로는 산을 오르는 것이  두렵다. 둘레길은 비가 오랫동안 오지 않아서인지 흙길이 아니라 모래 길이 되어 완전 미끄럼틀이다.


이 길에 설치된 의자는 앉지 말라는 뜻인지 걷는 길보다 높이 설치되어 있다.
"그래 쉬지 않고 갈게. 벌써 쉬면 안 되지"
투덜거리던 소리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숲 속의 푸르름에 한결 기분이 좋아진다. 지나가던 남자의 카세트 음악에 맞춰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기까지! 그저 발아래 내려다보이는 시원한 서울시내 풍경이 반갑다.                          


조금 더 걸으니 정자가 나온다. 정자에서는 건너편 봉우리들이 훤하게 보인다. 왼쪽부터 족두리봉 향로봉 비봉 승가봉... 남편의 설명이 이어진다.

"다음은 저기 족두리봉에서 능선을 타고 걸어보자"

"에구 별말씀을! 내가 저길!"
남편은 마누라가 관절염 환자라는 것을 왜 자꾸 잊어버리는지 모르겠다.       

              

전망대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가 내려다보인다. 성냥갑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는 저 작은 공간

에서 울고 웃고 사랑하고...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사람들이 각기 다른 얼굴과 성격을 가지고 있듯이
나무들도 저마다 아름다운 선을 그리고 있다.
해를 보기 위하여 저렇게 휘었을까?
뿌리가 거의 노출되어 지나가는 수많은 행인들의 발끝에 차이면서도
하늘을 향해 꼿꼿이 서있는 나무, 파이팅!     

                                                                                   7코스를 넘어 8코스로 넘어가자니 갑자기 도로가 나타난다.   산속 길이 아닌 아파트 뒷길이 이어진다.
게다가 평평한 길이 아니라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고 있다. 점점 힘들어진다.                                                                                                                                                                                                            

 "우리 어디까지 가는 거야?"

7코스를 걸을 때만 해도 진관사까지 가리라 마음먹었건만 이제는 하산길의 표지판만 보인다.
"힘들어? 그럼 불광중학교 쪽으로 내려갈까?"
갑자기 밀려오는 피로감에 버스정류장을 보자 그만 길거리에 털썩 주저앉는다.  우리는 버스를 갈아타기 위해 불광동 어디쯤인가에 내렸다. 값싼 과일, 빵, 해산물을 노점상에서 팔고 있다. 피곤하다고 늘어졌던 나의 손에는 어느새 까만 비닐이 늘어만 갔다. 그런 마누라가 보기 싫은지 남편의 얼굴은 점점  찌그러지고 있다.
"명호 엄마!"
"됐어 상관하지 마!"
해주는 밥만 먹는 남자들이란...
뿔딱지 난 나는 일부러 버스에서도 자리를 멀리 잡고 앉는다.
좋은 공기 마시고 데이트하자며 떠났던 길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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