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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미의 세상 Oct 17. 2019

영랑 선생과 하멜도 만나보는 강진나들이

모란공원, 전라병영성, 하멜 기념관 , 병영 하멜 길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빽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히 슬픔의 봄을


시구가 애절해서일까 47세의 짧은 생을 살다 간 시인의 삶이 안타까워서일까 영랑생가와 모란공원을 돌아보는 내내 그 먹먹함이 사라지질 않는다. 암울했던 시절 '시문학지'를 중심으로 창작활동을 하며 창씨개명과 신사 참배 및 삭발령을 거부하며 조선인으로 외롭게 살다 간 영랑 김윤식의 생가와 모란공원이 강진에 있다.


사시사철 아름다운 영랑생가



모란과 작약은 같은 과에 속하는 식물로  모란 공원 하우스에 가면  사시사철 볼 수 있도록 재배하고 있다 



'아름다운 야경과 함께하는 강진 야간여행'지이기도 한 모란공원은 밤에 오르면 또 다른 맛이 있다. 산책하기 좋은 계절, 모란공원으로의 야간 산책도 권하고 싶다.







전라병영성은 조선시대 500여 년 동안 전라도와 제주도를 포함한 호남 지방을 총괄하는 육군의 최고 지휘부였으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에 조선의 서남부 지역을 방어하던 군사 본부였다. 원래 광산현에 설치되었으나 태종 17년에 왜구의 침입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하여 현재의 이곳으로 옮겨졌다.




천혜의 요새 역할을 하던 수인 산성이 뒤에 있고 넓은 들판에 있어 식량자원이 풍부한 군사적 요충지였다. 이후 개보수가 이뤄져 오다가 1895년 갑오개혁 때 폐영 된 것을 다시 복원하고 있다. 




우리나라를 서양에 최초로 알린 '하멜표류기'의 저자 헨드릭 하멜을 기리는 기념관이 전라병영성 건너편에 있다. 제주도에 표착한 하멜은 이곳 강진에 유배되어 7 년간 지내며 네덜란드 담쌓기 기술을 전파하였다. 다른 지방과 달리 지그재그식으로 쌓아 올린 빗살무늬 형태의 담을 볼 수 있다.  


하멜기념관은 목조 건축물로 타원형은 하멜이 표착한 남도의 섬을, 맞은편 사각형 건물은 망망대해에 표류한 선박 스페르베르호를 상징한다. 


전라병영성과 수인 산성의 가운데에 있는 마을길은  군인들이 말을 타고 지나가는 일이 많아 높게 쌓았고 그 높은 담 안으로 농작물까지 키우고 있는 널찍한 집들은 아마도 부유한 군인들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독특한 돌담길과 소박한 풍경은 2.4 킬로미터나 이어진다.





강진 성돌리 은행나무의 수령은 800여 년으로 추정되며 나무의 모양이 곧고 아름답다. 하멜표류기의 일행들이 고인돌 위에 앉아 고향을 그리워했다는 은행나무가 이나무 일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비자나무의 수령은 500여 년으로 추정되며 마을을 바라보는 북향 경사지에 우람하게 서있다. 이 비자나무는 키가 작고 볼품이 없어 전라병영성을 세울 때 쓸 수가 없어 살아남게 되었다는 이야기와 나라에 큰일이 있으면 우는 소리가 들린다는 신비한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하멜 기념관 근처의 성동리 은행나무와 삼인리의 비자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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