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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미의 세상 Nov 09. 2019

정읍 무성서원과 김명관 고택에서 한옥의 정취에 빠져보기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한국의 서원

1995년 석굴암 불국사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이후, 종묘 창덕궁 등 11곳이 차례로  등재되었고 2019년 7월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제43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한국의 서원 9곳이 추가 등재됨으로써 우리나라는 문화유산 13곳과 자연유산 1곳을 보유하게 되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한국의 서원  9곳


유네스코가 서원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중국의 4대 서원(악록 백록동 숭양 응천 서원)을 제치고 한국의 서원을 높게 평가하여 등재한 이유 

첫째, 한국의 서원은 16세기 중반부터 17세기까지 조선시대 지방 지식인들이 세운 대표적인 사립 성리학 학교로 성리학 가치에 부합되는 지식인을 양성하며 지역의 대표 성리학자를 사표로 삼아 제사를 지냈으며 무엇보다 지역 사회의 공론을 형성했다는 점이다.

둘째, 서원 건축 유형이 탁월하기 때문이다. 서원은 제향과 강학, 휴식 공간으로 나누고 각 공간은 지형과 경관을 적극적으로 이용해서 뚜렷한 건축 전형을 완성하였다. 서원 앞으로는 맑고 깨끗한 계류가 흐르고 뒤로는 산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둘러있어 심신 수양의 환경으로 으뜸이다.


원래 동쪽에 있던 홍살문은 세계유산 자문 기구의 지적에 따라 현재의 위치로 이동하였다.


 거문고를 타며 노래를 그치지 않는다. 즉 어렵고 힘든 상황에도 학문을 계속하라는 뜻을 가진 현가루


대원군의 형이며 영의정을 지낸 이최응의 불망비 등 무성서원 보존에 공이 있는 사람을 기념하는 비석과 무성서원 중수 기념비등이 현가루 옆 담장 앞에 있다.


무성서원은 원래 최치원을 모셨던 곳이다.  최치원이 이곳 태수로 부임했을 때 선정을 베풀었기에 그의 은덕을 기리고자  '태산사'라는 생사당을 세웠다. 후에 이곳은 태산 서원으로 인재를 양성해 오다가 숙종 22년에 사액을 받으면서 '무성서원'이 되었고  정극인 송세림 정언충 김약묵 등을 차례로 배출하였다.


강당 뒤에 있는 사우는 최치원외에도 불우헌 정극인 등 7인의 위패를 모시는 제향영역이다


조선시대 우후죽순으로 늘어난 서원은 학문과 인격 도야의 전당이 아니라 당쟁 논의의 소굴이 되어갔고, 향촌의 교화를 담당하는 곳이 아니라 민폐의 본산이 되었으며, 세금과 부역 등을 면제하는 국가의 지원은 국가재정을 악화시키게 되자 대원군은 서원철폐령을 내리게 되어 겨우 47곳의 서원만 남게 되었다.


강당은 많은 유생들이 공부하던 강학 공간으로 전면에 걸려있는 현판을 보면 1696년 사액되었음을 알 수 있다 


지역민 결집에 중심적 역할을 하였던 무성서원은 일본에 의해 을사늑약(1905년)이 체결되자 이듬해인  1906년에 일어난 병오창의에 영향을 끼쳤다. 면암 최익현 선생과 둔헌 임병찬 선생은 호남 최초로 이 무성서원에서 항일의병을 일으켰다. 


강당 오른쪽 작은 문을 나오면 병오창의 기적비와 정문술 중수의조비, 최영대 영세불망비와 비각이 서 있고 기숙사 인 강수재가 나온다 원래는 동재와 서재가 있었는데 현재는 동재의 자리에 강수재 만이 남아 있다.


병오창의기적비와 정문술 중수의조비 최영대 영세불망비와 비각이 서 있다.


기숙사 역할을 하던 강수재


2015년에 제출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신청서가 반려되었다가 올해 다시 결정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으며 등재된 '한국의 서원'은 그 자체뿐만 아니라 서원을 둘러싼 자연경관의 가치도 인정받았다. 세계문화유산이 된 한국의 서원을 찾아가 멋들어진 풍광 아래 세워진 한옥을 돌아보며 옛 선비들의 정취에 빠져보는 것도 좋다.



그 옛날 아흔아홉 칸 집이라고 부르는 상류층 가옥인 김명관 고택은 창하산을 등지고 앞으로는 동진강 상류의 맑은 물이 흐르는 배산임수의 터에 동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국가 민속 문화재 제26호로 지정된 곳으로  바깥 행랑채 안 행랑채, 바깥 사랑채와 안 사랑채가 좌우 대칭 'ㄷ'자형 평면 구조를 이루고 있다. 




김명관은 17세의 나이에 터를 닦기 시작하여 12년 동안 정성껏 이 집을 완성하여 전통 한옥의 교과서가 되고 있다. 처마의 흐름이나 기둥의 배열 등이 소박하면서도 세련되고 아름답다.



뒤뜰에는 우물과 장독대가 있다


문을 건너가야  만날 수 있는 안채

넓은 집 수많은 방에 살았을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아흔아홉 칸 고택은 무척이나 넓게 느껴진다. 고층으로 올린 현대의 그 어떤 건물보다도 운치 있고 한국의 멋을 잔뜩 뿜어내고 있다. 한적하게 한옥의 정취에 빠지고 싶다면 정읍 여행 시 한 번쯤 들러보자. 특히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이라면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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