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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미의 세상 Feb 12. 2020

성곽 아랫마을 창신동

이음 피움 박물관

"지금 좋은 직장 다니셨다고 자랑하시는 거예요?"

대화 중 나온 '9 to 5'라는 단어에 농담 반으로 들은 그 한 마디는 비수가 되어 날아왔다. 20여 년 동안 직장이 은행이었던 나는 세상 사람들이 다 나처럼 사는 줄 알았다.  직장생활과 자영업을 하면서 아이들을 키워내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벅찼기에 그 옛날 연일 뉴스에 보도되었던 전태일의 노동운동도 열악한 봉제 공장의 실태도 내게는 그저 다른 세상의 일일 뿐이었다. 



낮에는 제법 봄기운이 느껴지기에 창신동으로 해서 이화마을까지 걷기로 했다. 오랜만에 나온 평화시장은 신비로운 우주선 같은 DDP 외에도 높이도 올라간 쇼핑몰 주변 건물 때문에 흥인지문(동대문)이 작게만 보인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인적이 뜸한 곳도 많은데 평화시장이 있는 이곳 만큼은  많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것이 생동감이 느껴졌다.



동대문 성곽 공원에 올라보니 한양도성의 성곽과 흥인지문의 멋들어짐이 수많은 현대식 건물에 결코 뒤지지 않은 채 그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조금 올라왔을 뿐인데도 시끌벅적한 소음도 잦아들고 한가한 공원에 내리쬐는 햇볕이 따사롭다.



우리나라 패션산업의 일번지는 평화시장으로 어려웠던 시절 나이 어린 여자 아이들의 일터였다. 1층은 상가로 2~3층은 제조업체가 있었는데 두 평의 공간에 13명 정도 일을 했다 하니 매우 열악한 환경에서 혹사당했음을 알 수 있다.

지금도 재봉틀 소리가 들리고 호스를 통해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는 특이한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 동대문 너머 평화시장과 마주 보고 있는 동네 창신동이다.  일제강점기 석조건물을 세우기 위하여 화강암을 캐내던 채석장이 있던 절벽 마을에 한국전쟁 이후 서울로 상경한 이주민과 피난민들이 빽빽하게 지었던 집들은 봉제공장이 되었다.  



한 벌의 옷이 만들어지기까지는 패턴(옷본을 제도)- 재단(옷본에 따라 원단을 자름)- 재봉( 잘라진 원단을 미싱으로 이어 붙임)- 마무리(안감 처리 단추 부자재 처리 등의 마무리)- 완성( 다림질 포장)의 단계가 있는데 이 모든 단계가 철저하게 나뉘어 각각의 공장의 되었다. 각 단계를 이어주는 이가 있으니 오토바이 기사들이다. 가게와 가게 사이를 오토바이 기사들이 바쁘게 돌다 보면 하루 안에 새로운 옷이 만들어지고 그 옷은 평화시장으로 또 전국 각지로 퍼져나가게 된다.



2007년 창신동 일대가 뉴타운으로 지정되며 철거 위기에 처하기도 했으나 주민들의 선택에 의하여 뉴타운이 해제되고 도시 재생 사업이 이뤄졌다. 봉재 산업의 보존 및 활성화 등의 일환으로 봉제산업의 역사를 훑어보고 각종 체험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곳이 이음 피움 봉제 역사관이다. '이음 피움'은 '잇다'와 '피다'에서 따온 말로 과거와 현재를 잇고 새로운 미래를 피운다라는 뜻으로 70년대 이후 봉제 노동자들의 힘겨운 삶을 돌아볼 수 있다.






  

마을 벽에 아름다운 벽화를 그려놓아 사진을 배우며 즐겨 찾았던 이화마을에는 꽃 계단 그림도 생동감 있던 물고기 그림도 회색 페인트로 덧칠되어 없어져 버렸다. 중국 관광객까지 찾아와 소음으로 곤욕을 치렀을 주민들을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가 가긴 하지만 서운한 마음 그지없다. 




벽화 찾기를 포기하고 좁은 골목길을 지나 가파른 언덕을 오르니 성곽 너머 익숙한 도심 풍경이 펼쳐졌다.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아있는 빌딩들이 있는가 하면 우리네 얼마 전 모습을 간직한 이화마을이 바로 뒤에 있다. 청계천의 많은 무허가 판잣집들이 철거되고 다시 맑은 물이 흐르게 된 청계천 주변에는 여전히 많은 상가들이 성업 중이다. 짧은 시간 안에 눈부신 발전을 이루게 된 뒤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이 있었으리라.




아파트가 들어서 언덕배기 골목길을 찾아보기도 어려운 요즘 옛 추억을 되새기며 창신동을 지나 낙산 성곽에 올라 힘닿는 데까지 한양도성 성곽길을 따라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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