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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미의 세상 Mar 05. 2020

봄에는 야생화 피어나는 가의도!

늘 기침감기를 달고 사는 나는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주변의 시선이 두려워 자가격리에 들어간 지도 거의 한 달이 다 되었다. 답답해하는 마눌을 위하여 떠난 곳은 태안군 신진항 서쪽에서 5 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가의도다.  봄이면 복수초 노루귀 산자고가 피어 봄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는데 귀여운 녀석들이 벌써 피었을지 궁금하다.


코로나 바이러스 덕분(?)에 태안까지 단숨에 도착한 우리는 오랜만의 외출이라 약간은 흥분했다. 그때 마땅치 않은 표정으로 다가 온 선장은   

"마을로 들어가지 마세요. 주민들이 싫어해요" 순간 주위를 살펴보니 관광객은 우리뿐인 듯. 그 뒤로 우리는 마치 죄인처럼 조용히 앉아 있었다.


가의도 북항에 내려서자  '육쪽마늘의 원산지 가의도'라는 표지판이 눈에 띈다.  가의도의 마늘은 추위와 해풍 속에서 자라 자생력이 뛰어나 종자 마늘로 쓰이기에 군에서 전량 구매하여 농가에 판매한다고 한다. 



야트막한 산기슭에 옹기종기 자리 잡은 마을 집 근처에는 겨우내 땅속에서 추위를 견디고 싹을 틔운 마늘이 푸릇푸릇하게 돋아나고 있다. 잔뜩 구부러진 허리를 펴지 못하고 유모차에 의지한 채 언덕을 올라가시는 할머니, 유일한 이동수단이 되고 있는 사륜오토바이를 타고 냅다 달리는 아저씨, 꽤나 쌀쌀한 날씨인데도 이른 아침부터 밭에 나와 일하고 계시는 어르신들. 소박하고 포근한 섬 풍경은 마치 고향집에 온 듯하다. 




신장벌로 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마을을 거쳐야 한다. 선장에게 들은 말이 있기에 주민들을 만나기만 하면 마스크를 한 채 고개를 한껏 수그리고 걸었다. 가파른 마을길을 벗어나자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나뭇잎을 모두 떨군 나무들 사이로 좁은 오솔길이 이어졌다. 소나무와 소사나무가 숲을 이룬다 하여 '소솔 길'이라 부르는 길이다. 우거진 푸른 숲과 달리 나뭇가지만 무성한 소사나무가 아침 빛을 받아 은빛으로 빛나는 모습은 마치 겨울나라에 간 듯 신선했다.





소사나무가 가득한 U자 계곡을 건너갈 때는 심히 난감하였다.  좁고 질퍽한 길, 발을 잘못 디뎠다가는 계곡 아래로 구르기 십상이다. 안전줄이라도 설치해 주었으면 좋았을 걸...



얼마쯤 더 가서 만난 멋진 신장벌 앞에서는 절로 입이 벌어졌다.  좁은 길과 비교해 신장벌이라 붙여진 이름과  딱 어울린다.  가의도에서 유일하다는 모래사장은 300여 미터나 이어졌고 코끼리바위(독립문 바위)와 함께 기암괴석의 풍치는 한동안 나를 얼음으로 만들었다. 


신장벌 건너 섬이 신진도다


이 넓은 신장벌에는 오직 우리 부부뿐이다. 벅찬 감동에 무한정 셔터를 눌러대는 마눌땜에 심심해진 남편은 독립문 바위 뒤쪽에 다녀오겠다고 가버렸다. 


멀리서 보면 코끼리 바위 같고


가까이에서 보면 독립문 같다

 


얼마쯤 지났을까? 멋지게만 보이던 넓은 모래사장에 혼자 있다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두려워졌다.  곧 온다던 남편은 보이질 않고 시커먼 기암괴석들은 무섭게 달려들 것만 같았다. 딸에게 전화를 해도 받지를 않아 요즘 유행하는 유튜브의 트롯을 틀어놓고는 따라서 불러도 봤지만 등짝이 오싹해지는 것은 멈추질 않았다. 얼마쯤 지났을까 전화를 받은 남편은 조금만 기다리라고 할 뿐이다. 천천히 독립문 바위를 향해 걸었다.



남편의 발을 붙잡은 것은  바위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다닥다닥 붙어 있는 굴과 소라 홍합이다. 세상에나! 투덜거리던 나도 카메라를 내팽개치고는 소라를 줍기 시작했다.  남편은 땀을 뻘뻘 흘리며 바위에 붙어있는 홍합과 굴을 떼려 했으나 어찌나 단단하게 붙어있는지 맨손으로는 어림도 없다. 겨우 떼어낸 굴을 먹은 남편은 오만상을 찌푸린 채 "아우 짜!" 아마도 슈퍼에서 우리가 사 먹던 굴은 세척 작업을 거쳤나 보다.




뿌듯한 마음으로 돌아오는 언덕배기의 모랫길은 내려올 때와 달리 푹푹 빠지는 통에 힘이 들긴 했으나 송장 너머에서 바라본 남편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밝았다.


송장 너머

"어머 꽃이 피었다"

마른 나뭇잎 사이로 소박하게 피어난 하얀 꽃을 발견한 후로 우리는 땅바닥만 보고 내려왔으나 그 후로는 찾지 못했다.  그제야 우리가 너무 빨리 왔음을 깨달았다. 조금만 늦게 올 것을...  그래도 때 묻지 않은 섬의 모습과 신장벌의 황홀한 풍경을 본 것만으로도 대만족이다.


바람꽃인지 산자고인지...


솔섬과 전망대까지 다녀오고 싶었으나 마을을 다시 가로질러 가야 하기에 다음을 약속했다. 


배에서 바라본 코끼리 바위


수사자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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