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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미의 세상 Apr 06. 2020

추억 찾아 떠난 삽시도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화살을 꽂아 놓은 활처럼 생겼다는 삽시도는 대천항에서 배를 타고 한 시간 정도 가야 한다. 내게 삽시도는 고등학교 때  MT를 갔던 아련한 추억이 있는 섬으로 몇 번이나 다시 가보자 했건만 이제야 가게 되었다. 


하늘에서 바라본 삽시도


그 당시에는 수학여행 외에 친구들끼리 외박을 하며 여행을 간다는 것은 꿈도 못 꾸던 때다. 짐을 꾸리며 한껏 들떠있던 우리는 대천 해수욕장의 푸른 바다 앞에서 환호성을 질렀고, 초등학교의 교실에 마련된 숙소에서는   웃고 떠드느라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총총 묶어맨 양갈래 머리를 풀어헤치고 나팔바지 펄럭이며 나온 우리의 성숙한(?) 모습에 선생님들은 또 얼마나 놀라셨을까?



자매결연을 맺은 꼬맹이의 손을 잡고 물이 빠져나간 바닷가로 해산물을 채취하러 갔을 때는 또 얼마나 흥미로웠던지. 잔뜩 들떠서 물가를  방방 뛰어다니다 물뱀(?) 같은 것이 종아리를 스치고 난 후 너무 무서워 얼음이 되어버린 나는 그 녀석의 작은 손을 잡고서야 겨우 나올 수 있었다. 모두가 잡아 온 한 보따리의 해산물로 그날 밤에 멋진 바비큐 파티가 열렸고  캄캄한 밤하늘에 떠있는 아름다운 별을 바라보며 우리는 또 얼마나 많은 노래를 불러젖혔는지...



다음날 그 꼬맹이 집에 찾아갔을 때 정성껏 차려주신 바다내음 가득한 밥상 또한 잊을 수가 없다. 게다가 돌아올 때는 한 보따리의 말린 해산물이 손에 들려 있었다. 이궁 맛있는 과자라도 준비해 갈 것을. 그리고 한참 뒤 그 녀석들이 서울에 올라왔을 때 우리는 그들에게 아무 보답도 못했다. 


즐거웠던 그 시간은 가끔씩 떠올랐고 사회에 나와 곧 다시 찾아가리라 생각했지만 40여 년이나 걸리고 말았다. 즐거웠던 추억과 함께 그 꼬마에게 고맙고 미안하고... 하긴 꼬마라 부를 수도 없겠다. 어느새 나와 비슷하게 나이 들어가고 있을게다.



그런데 하필이면 코로나가 유행하고 있을 때 삽시도를 방문하게 되었다. 그렇게도 가보고 싶던 그 초등학교나 마을 근처에는 얼씬도 못하고 그저 둘레길 만을 돌고 와야 했다. 



삽시도 둘레길은 섬의 해안선을 따라 비교적 널찍하게 조성되어 있는 데다 오르막길이라 해도 해발 백여 미터밖에 되지 않으니 누구나 쉽게 다녀올 수 있다.  삽시도의 3개 마을 중 가장 큰 마을인 웃말에는 보건소 경찰초소와 같은 공공기관과 펜션 슈퍼마켓 등이 몰려 있다. 많은 펜션 사이로 잠시 올라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거멀너머 해수욕장과 이웃하고 있는 진너머 해수욕장이다. 이른 아침인 데다 제철이 아닌 넓디넓은 해수욕장은 썰렁해 보인다.  섬의 서쪽에 있어 아름다운 해넘이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진너머 해수욕장


잠시 뒤 만나는 양갈레길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둘레길이 시작된다.


바닷물이 빠졌을 때 걸어갈 수 있는 섬 속의 또 다른 섬인 면삽지에 가려면 많은 계단을 내려가야 한다. 둥글게  보이는 면삽지는 오랜 세월 동안 바람과 물에 깎여나간 모습이 선연하다. 뒤돌아보니 기암괴석 옆으로 희한하게 동굴이  뚫려 있다. 중간까지 빛이 바랜 것을 보아하니 바닷물이 그곳까지 차는가 보다.





마른 잎새들이 수북이 쌓인 길에는 유난히 소나무가 많아 상쾌하다. 이 좋은 산책길에 사람이라고는 우리 둘 뿐이다. 약간은 적적하던 차에 어디선가 동물이 우는 소리인가 싶더니 소리가 점차 가까워지자 그것은 마을 주민 몇몇이 부르는 노랫소리였다.  

"우리는 여기 사는 주민이에요"

묻지도 않았는데 다정하게 말을 건네던 그녀들은 바다가 보이는 쉼터에서는 흥에 겨워 춤까지 추는 것이다. 한적했던 산책길에 생기를 불어넣은 그녀들 덕분에 우리는 더욱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또다른 섬


다음에 만난 삽시도의 보물은 물망터다. 바닷물이 빠져나가야만 볼 수 있는 물망터의 약수는 피부병 등에 효험이 있다고 알려져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하나 그 많은 바위 중 어느 곳이 약수터인지는 잘 모르겠고  위쪽 바위틈으로 물이 흐르고 있는 곳이지 않을까 하며 그곳을 떠났다.



물망터



붕 구덩이 산기슭에 있는 황금곰솔이 있는 곳까지는 지금까지와 달리 어느 정도 경사진 길을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해야 한다.  가빠진 숨을 고르다 만난 울창한 소나무 숲의 정취에 빠져 있을 때 눈에 들어오는 '황금곰솔'이라는 팻말.





생각했던 만큼 무지 크지도 또 솔잎이 그렇게 황금빛을 띠지는 않았으나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서있는 소나무의 자태만큼은 수려했다.


황금 곰솔은 해변에서 바라봐야 다른 소나무와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울창한 해송 앞으로 나타난 넓고도 넓은 해변이 밤섬해수욕장이다. 고운 모래와 물속 깊이까지  훤하게 보이는 투명한 바다가 반짝이는 모습은 엄지 척하지 않을 수 없다.




그다지 화려하지도 멋스럽지도 않은 삽시도였지만 마음속에 간직한 추억들을 떠올리며 뒷동산에 다녀온 듯한 하루다. 삽시도 초등학교에 다녀오지 않은 것이 더 낳겠다 싶으며 옛 기억 속에 떠오르지 않던 섬의 아름다운 모습을 더하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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