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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미의 세상 May 11. 2020

이제야 봄이 시작되는 태백산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명산 태백산을 찾은 것은 지금 야생화가 한참이라는 기사 때문이다. 그동안 환상적인 눈꽃이 멋진 겨울날 태백산 정상에서의 일출을 보기 위하여 야간 산행을 감행하는 사람들을 그저 부러운 눈빛으로 봐야만 했다. 더군다나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집에만 갇혀 지내다 보니 어느새 봄꽃은 다 져버렸고 한낮에는 더위마저 느껴지는 요즘 야생화를 볼 수 있다니...


태백산의 높이가 1,567 미터나 된다지만 900 미터 높이의 유일사 주차장부터 장군봉까지는 두 시간밖에 걸리지 않는 데다 남녀노소 누구나 갈 수 있다는 소리에 감히 용기를 내어 보았다.



등산로 초입에는 철쭉도 아닌 진달래가 수줍게 피어 있다. 야생화가 가득한 모습을 떠올리며 시작한 산행은 여태까지 다녔던 산과는 사뭇 다르다. 오밀조밀한 오솔길이 아닌 대형버스도 지날 수 있는 넓디넓은 돌길에 방금 보고 온 진달래꽃이 무색할 정도로 스산한 겨울나무들의 행렬이 유일사까지 길게 이어진다.


유일사까지 가는 길은 경사도가 그리 높지는 않았으나 계속되는 오름길에 서서히 지쳐갈 무렵 드디어 귀여운 녀석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연보랏빛 꽃잎을 한껏 추켜올린 채 수줍게 고개 숙인 얼레지부터 짙은 보랏빛의 갈퀴현호색, 마른 낙엽 위에 유난히 눈에 띄는 노란 선괭이눈, 작고 하얀 이파리가 유난히 많은 꿩의바람꽃까지 있다.  비슷비슷한 모습이건만 그냥 지나칠 수 없어 가다 멈추기를 여러 번.


갈퀴현호색과 얼레지


선괭이눈과 꿩의 바람꽃



유일사부터 장군봉까지는 울퉁불퉁한 돌계단길이 이어진다. 암벽이 거의 없고 경사가 완만하다지만 다리가 불편한 사람들이 오르기에는 무척이나 벅차다. 헐떡이는 숨을 고르며 오르고 또 오르다 만난 것은 주목이다.  살아서 천 년 죽어서 천 년이라 했던가? 텅 빈 나뭇가지 위로 푸른 잎이 나고 있는 모습 앞에 경탄을 금할 수 없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멋들어진 주목의 꺾어진 가지 위에 눈이 소복하게 쌓인 모습을 상상해본다. 지금도 이렇게 좋은 것을 겨울이면 얼마나 더 멋질지.



한 무더기씩 피어있는 노루귀





주목


드디어 오른 장군봉 아래로 매봉산 연화산 그리고 태백시가 희미하게 보인다. 장군봉의 장군단에서 아직 움도 트지 않은 철쭉 사이로 능선을 따라가 보면 또 하나의 제단인 천제단이 있다.  신라시대부터 지속된 나라의 태평과 번영을 바라는 제를 올리던 곳이다.


장군단과 장군봉


장군단과 천제단이 태백산 정상에 한 줄로 놓여 있다.


개천절에 나라의 태평과 번영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는 천제단


산 정상에서 먹는 컵라면의 맛은 그저 엄지 척할 수밖에 없다. 융프라우에서도 비싸게 사 먹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마약과 같은 개운한 국물 맛에 속도 시원하게 하고 아픈 다리도 쉬게 하니 이게 바로 천국이지 싶다. 다행히 거센 바람도 잔잔하여 산아래 내려다보며 충분한 휴식을 취해본다.



반 이상을 자동차로 올랐고 또 가장 쉬운 길로 오른 장군봉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코스다.  다소 밋밋할 수도 있는 산행길에 눈요기가 되어 준 야생화와 주목 덕분에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얼마 후에는 천제단 아래를 분홍빛으로 물들일 철쭉이 필 게다. 겨울은 눈이 있어 멋지고 이맘때는 야생화가 있어 아름다운 태백산, 철쭉이 필 때는 놓치지 말고 찾아보는 것이 좋겠다. 아쉬운 발길 뒤에는 까마귀와 주목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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