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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미의 세상 Oct 12. 2020

산사에 비가 내리면!

언택트 관광지 , 내소사, 직소 폭포


전나무 숲 길하면 오대산의 월정사와 부안의 내소사가 떠오른다. 하늘 높이 올라간 전나무는 싱그럽게 연초록을 띤 모습도, 완숙하게 푸르렀을 때도 좋지만 눈이 올 때 그 높은 전나무 사이에 쌓였던 눈이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은 나를 완전히 매료시켜 그 후로도  자주 전나무 숲을 찾았다.


삼나무 숲길과 일주문


내소사 일주문을 들어서면서부터 우리를 반기듯 줄지어 서있는 전나무의 행렬에 움츠린 어깨 활짝 펴고 가슴 가득 상큼한 공기를 들이마신다. 6.25 한국전쟁 때 내소사의 전각들은 피해를 입었지만 입구의 전나무는 피해를 입지 않아 지금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하니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두 번째 문인 천왕문과 대장금을 촬영했다는 연지


천왕문을 들어서자 능가산 자락에 포옥 파묻힌 천년고찰의 고즈넉한 모습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처마 밑에서 청아하게 울리는 풍경소리뿐.  오랜 세월 빛과 바람에 단청이 벗겨져 속살이  훤히 드러난 모습은 화려한 단청으로 치장한 것보다 더 고풍스럽다.


내소사 전경



차곡차곡 쌓아 올린 축대는 각 공간을 분리하고 네모난 공간에 지어진 전각들은  하나의 군더더기도 없다.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행여나 깨트릴까 조심조심 경내를 돌아본다.



 

석조 건축물과 달리 고목의 나뭇결과 옹이가 그대로 보이는 목재 건축물은 운치를 더하고 못 하나 박지 않고 만들었다는 꽃살문의 화려하고 정교한 모습에서 장인의 손길이 느껴진다.



주차장에 내렸을 때만 해도 멀쩡하던 하늘은 갑자기 엄청난 비를 쏟아 붓기 시작했다.  우산 하나 챙겨 오지 않은 우리는 생각지도 않게 오랫동안 산사에 머물게 되었다. 쨍쨍한 해를 본 날이 며칠이나  있었을까? 어느새 여름은 고 가을이 성큼 와버렸다.


비 오는 날이면 공연히  기분이 울적해지고 축축해지는 느낌 때문에  비를 싫어했는데  왠지 오늘은 장대같이 퍼붓는 빗소리가 음악이 되어 가슴속까지 후련하게 한다.  천 년된 아름드리 느티나무, 비를 맞아 더욱 웅장해 보이는 고찰, 게다가 스멀스멀 몰려오는 비구름 덕분에 내소사는 아주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내소사에서 직소폭포로 넘어가려 했으나  비 때문에 다음을 기약했다. 비 내리는 전나무 숲 또한 장관이다. 빗소리에 맞춰 몽환적인 숲길로 찰박찰박 걸어가니 마치 꿈길을 걷는 듯하다.  



변덕 같은 날씨는 내소사를 빠져나오자 금세  멀쩡해져 우리는 다시 직소 폭포로 향했다. 이번에는 우산과 우비까지 완벽히 준비했다.  촉촉한 날씨에  번져오는 숲의 상큼함과 익숙한 흙내음은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직소폭포가 있는 내변산은 변산반도 국립공원 안에 있다.


변산 바람꽃다리



부안의 4대 절 중 하나인 실상사지로 고려시대의 불상과 대장경이 있었으나 한국전쟁 때 모두 불타고 현재는 고승의 사리나 유골을 넣어두던 석조 부도 3기가 남아 있다.


부안 군민의 비상 식수원으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직소보'다.  직소보의 잔잔한 모습은 주변의 경관을 그대로 비춰주고 있어 멋진 데칼코마니가 되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직소보


폭포 가는 길에서 바라본 직소보 전망대


신선대의 신선 샘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내변산에서 서해바다까지 20 킬로미터 구간에 아홉 개의 계곡을 만들어 멋진 비경을 선사하고 있다.


또다시 하늘에 구멍이 뚫렸다. 열심히 준비해 온 우산과 우비는 무용지물이 된 체 금세 물에 빠진 생쥐가 되고 다.

"괜찮아요?"

"오랜만에 비를 맞으니 도리어 기분이 좋은걸" 그렇게 말해주는 남편이 고맙다.

하긴 어릴 때 갑자기 내린 소나기에 온몸이 젖어버리면 일부러 물 흐르는 고랑에서  찰박거리던 기억이 오른다.  강하게 내리치는 빗발이 얼굴을 때려도 또 빗물이 속옷까지 홀딱 적셔도 무엇이 그리도 좋았던지 마냥 신나게 돌아다녔다. 또 혼자 엉엉 울고 싶었던 날도 빗속을 마냥 헤맸던 것 같다. 그때처럼 정말 오랜만에  비에 홀딱 젖어버렸다.



얼마쯤 갔을까? 저런 ~ 우비 하나 없이 쫄딱 비를 맞으며 등에는 무거운 배낭까지 진채 산에 오르는 이들이 있다. 아마도 내소사까지 넘어가려나보다. 응원의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지만  그들의 열정에 격하게 박수를 보냈다.


드디어 제2 계곡인 직소폭포에 도착했다. 잠시 그친 비 덕분에 또렷하게 보이는 폭포는 30여 미터 아래의 둥근 연못으로  떨어지우렁찬 소리를 내며 산속의 정적을 깨고 있다.

  



비에 흠뻑 젖으며  다녀온 부안의 명소 내소사와 직소폭포는 한동안 매력적인 모습으로 기억되겠다.


선녀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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