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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미의 세상 Sep 27. 2021

사진 한 장에 끌려 시작한 무모한 도전

베틀바위 산성길, 마천루, 무릉반석

베틀바위 사진과 함께 산성길을 개방했다는 소식을 들은 후 나는 내내 두타산 산행을 꿈꾸었다. 고장 난 다리로  가파르고 짧지 않은 산행을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사진 속 그 장엄한 모습을 실제로 보고 사진으로 담고 싶었다. 아무리 높아도 천천히 오르면 되는 것이고 또 오늘은 내가 살아있는 날 중 가장 젊은 날 아닌가?


금강송 군락지 '휴휴'


하루 종일 걸을 생각으로 무릎 보호대까지 단단히 동여매고는 아침 일찍 등산길에 올랐다. 숯가마터를 지나자 오르막이 시작되는데 역시 만만치가 않다. 경사도 가파른 데다 크고 작은 돌로 얼기설기 만들어진 계단은 전망대까지 이어진다. 험하다는 말은 익히 들어 단단히 각오는 했으나 쉴 새 없이 흐르는 땀방울을 닦으며 과연 완주를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부터 앞섰다.



안개 낀 산봉우리들의 몽환적인 모습이나 울창한 숲에 안겨 사는 평안한 우리네 마을, 매혹적으로 가지를 늘어뜨린 채  서있는 나무의 의연한 모습 등 선물 같은 풍경은 나의 지친 몸과 마음에 힘을 실어 주었다.



맑은 가을 하늘 아래 쏟아지는 아침 햇살이 슬며시 스며드는 장쾌한 베틀바위의 모습은 숨을 멎게 했다. 뾰족뾰족 솟은 바위가 장대처럼 서있는 벼랑은 이렇게 두타산 깊숙이 숨어 있었다. 베틀바위는 전문적으로 암벽을 타는 사람들이나 올 수 있었다는데 일반인들도 볼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 주니 우리도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길게 이어지는 산세는 아니어도 웅장하고 수려한 바위의 자태는 중국의 장가계를 떠올리게 했다. 하늘나라 질서를 위반한 선녀가 벌을 받고 내려와 이 무릉계곡에서 삼베 세 필을 짜고 잘못을 뉘우친 후 승천했다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가진 바위는 이름처럼 비단을 짜는 베틀을 닮았다.


 

베틀바위까지 1.5 킬로미터의 험악한 길을 오르고부터는 평이한 길이다. 그제야 발 끝에 스치는 풀도 보이고 잔잔한 바람이 귀를 간지럽히고 있는 것도 느끼게 된다. 미륵봉 능선에 있는 미륵바위는 선비 같기도 하고 미륵불 같기도 하다. 자연이 만들어 낸 걸작품들은 수시로 나타난다. 집채만 한 바위와 수직 암벽의 경관, 위태로운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춤추듯 네 활개를 펼치며 자라는 소나무 등을 지날 때면 절로 탄성이 나온다.


 

뒤에서 누군가의 기척이 들리기라도 하면 잠시 옆으로 비껴 선다.  거북이처럼 걷는 내가 누군가에게 걸리적거리지 않기 위해서다. 살아오면서도 이렇게 남들에게 기쁘게 자리를 내줄 수 있었다면 내 삶이 좀 더 행복했을 터인데..... 



녹음이 짙게 드리운 나무 아래 핀 보랏빛 돌개미취가 유난히 자주 눈에 띈다. 새로 조성한 듯한 길은 너덜길이다. 나무뿌리가 바위에 뒤엉킨 데다 물기마저 어린 내리막길을 내려가 보니 어디선가 물소리가 들리더니 갑자기 작은 폭포가 나타났다. 계곡에서 발을 닦으며 여유를 부리는 사람도 있었으나 산 아래의 깎아지른 듯한 낭떠러지를 보고는 사진 한 장 찍기도 두려워 이내 건너편 등산로로 넘어갔다. 이 물줄기가 흘러 산성 12 폭포가 된다.



 

계곡 근처에는 습기가 많아서인지 바위 대부분이 이끼로 뒤덮여 있다.


두타산의 절정인 마천루에는 거뭇거뭇한 바위와 푸른 나무들이 어우러진 모습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게다가 오른쪽 암벽 사이로 길게 떨어지는 산성 12 폭포로 멋진 산수화는 완성이 된다.  그 장관에 눈이 팔려 바위에 걸터앉아 바라보고 있을 때 뒤에서 누군가가,

"이렇게 멋진 산을 두고 사람들은 왜 그렇게 외국에만 나가려는지 몰라"

그러게요 아마 사람들은 두타산이 이렇게 멋진 걸 모를걸요. 그리고 올라오기가 쉽지 않네요.


폭포를 잡기 위해 당겨 찍었으나 깎아지른 듯한 멋진 바위와 울창한 나무가 어울린 장관은 사진 한 장으로 담을 수가 없다.


사람들이 들어갈 수 없는 계곡에는 수려한 나무들이 가득하다.


수질이 나빠 마실 수 없는 석간수는 큰 바위 옆에 있다. 누가 일부러 만들어 놓은 듯한 바위는 높이도 사람 키의 서너 배는 되고 열 명 이상이 편히 쉴 수 있을 정도로 넓다.
석간수


베틀바위만으로도 엄지 척했으나 두타 협곡의 광활한 마천루를 본 순간 너무 기뻐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오랜 세월 비바람이 만들어 낸 암릉과 기암 절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박달나무와 서어나무가 군락을 이룬 원시림은 살아 쉼 쉬는 듯했고 그 멋진 벼랑을 온통 채워 넣을 심산인지 좁은 바위틈까지 뿌리를 내리고 아슬아슬하게 크고 있는 나무들에게서는 강인한 생명력까지 느껴졌다.



두타산의 마천루는 빌딩 숲이 아닌 독특한 벼랑들이 줄지어 있다. 흘러내리는 폭포가 아주 작게 보인다.


가시지 않는 여운에 뒤돌아보니 걸어 내려온 데크는 커다란 바위 위에 놓여있다. 우리가 걸어온 길은 아마도 마천루를 잘 볼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것 같다. 얼마나 오랜 시간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놓기 위해 고생했을까 생각하니 그저 고마웠다.




쌍폭포와 용추폭포는 5분 내의 거리에 있다. 각기 다른 매력을 가진 폭포는 사람들의 환호에 답하듯 우렁차게 내려오며 그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폭포부터 삼화사까지는 짧지 않은 길이지만 정다운 사람과 이런저런 이야기 하며 걷기 좋은 산책길이다.


쌍폭포와 용추폭포



빽빽한 나무를 피해 겨우 볼 수 있는 병풍바위는 마천루의 축소판 같다. 그 끝에 있는 장군바위는 굵직한 이목구비를 갖춘 장군을 연상하게 한다.


옥류동을 지나 선녀탕에 이르는 계곡에는 마치 돌 박람회를 하고 있는 것처럼 다양한 돌들이 자연스럽게 놓여 있다. 이 돌들은 대부분 화강암 침식 및 퇴적 지형에 의한 것으로 학술적으로도 그 가치를 평가받고 있다 한다.


상류의 동굴에서 흐르는 물줄기가 지나는 바위에 학이 둥지를 틀고 살았다는 학소대



두타산의 또 하나의 절경은 바로 무릉반석이다. 석장암이라는 널찍한 바위는 5천 제곱미터나 된다. 반석 위에는 이곳을 찾은 명필가의 묵객들이 음각한 여러 종류의 글씨를 볼 수 있다. 이제는 거의 닳은 데다 한문으로 되어있어 그 뜻을 잘 알 수는 없으나 옛 선인들의 기개와 풍류가 느껴졌다. 




한동안 무리한 산행으로 인한 팔다리 통증에 고생 좀 하겠지만  정말 너무나 좋았다. 그리고 살며시  단풍이 한창일 때 오면 또 얼마나 멋있을까 하고 욕심을 내본다. 

두타산 정말 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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