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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미의 세상 Oct 05. 2021

마냥 머무르고 싶은 섬 관매도

관매 해수욕장, 벼락바위, 하늘다리, 방아섬

새떼가 모여 있는 것 같다는 조호군 도의 150여 개나 되는 섬 중 하나인 관매도는 진도 팽목항에서 철부선을 타고 약 1시간 20분 정도 달려가야 한다. 그 전에는 해변에 매화가 가득해  '관매도'로 불렀다지만 지금은 매화나무가 한 그루도 없다. 종일 걸으면 섬 전체를 대충 돌아볼 수 있는 작은 섬은 배편이 많지 않아 최소 하룻밤은 머물러야 한다.


조호군 도의 작은 섬들과 관매도 지도

  

조도 앞바다의 양식장


12시 10분에 출발하는 관매도행 배를 타기 위해 서울에서 새벽부터 달려간 데다 배 안에서는 금식이라 쫄쫄 굶은 우리는 섬 선착장에 도착하자마자 식당부터 찾았다. 코로나 19 때문인지 7년이나 지난 세월호 사건 때문인지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어진 관매도에는 주말임에도 문을 연 식당은 한 곳도 없다. 다시금 팽목항에서의 노란 리본들이 떠오르며 가슴이 아릿해 온다. 그래도 그날 오후 섬 반 바퀴를 돌 수 있었던 것은 민박집 쥔장께서 가져다 주신 갓 쪄낸 따끈한 감자와 두유 덕분이다.


아주 잘 꾸며놓은 정원을 갖춘 돌담 민박 집은 취사 시설까지 갖추고 있어 간단히 먹거리를 준비해 가면 된다.


중국집은 영업을 할지도 모른다는 민박집 사장의 말을 듣고 기쁘게 관호마을로 향했으나 "영업 안 해요"하고 휑하니 돌아서는 중국집 사장을 보고는  갑자기 다리에 있는 힘까지 빠지고 만다.  바닷가 정자에서 할머니 한 분이 홀로 앉아 계시길래 "안녕하세요?"하고 인사차 말을 건넸다. 주름지고 까맣게 그을린 얼굴을 슬며시 들고 우리를 올려다보던 할머니는 갑자기 신세타령을 이어나갔다.

사투리가 섞여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오늘도 육지로 간 아가들이 보고 싶어 바다만 보고 계시단다. 하긴 가까운 진도에 산다 해도 당일로 왔다 갈 수가 없으니 오기가 쉽지는 않을게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고개만 끄떡이다 갈 길이 멀어 애써 외면하며 일어서자 다시 자식 생각이 났는지 어느새 할머니의 눈가는 촉촉해지고 있었다.

 

마치 매가 날개를 펴고 날아가는 것 같은 형상을 한 관매도는 섬 네 귀퉁이에 절경을 감추고 있다. 하늘다리를 보기 위하여 먼저 찾은 곳은 선착장 오른쪽 마을인  관호마을이다. 관호마을 지도를 보면 오른쪽 위로 쑥 올라간 데다 왼쪽 허리가 잘록하게 들어가고 호랑이 꼬리까지 있는 것이 꼭 우리나라 지도를 떠올리게 한다.  정겨운 돌담길을 사브작사브작 걷다 보니 괜스레 발걸음이 가벼워지며 엉덩이 춤까지 추게 된다.


앞은 잔잔한 바다요, 뒤로는 야트막한 산이 있는 관호마을의 평안한 모습
구불구불 이어지는 마을의 담벼락은 온통 돌을 쌓아 만들었다


섬 오른쪽 끝에 있는 하늘 다리가 우리의 첫 목적지다.  마을에서 10 분만에 도착한 산등성이에는 뜬금없이 돌담이 있는데 우실이라 한다. 농작물의 피해를 막는 것 외에도 마을의 온갖 재액과 액신을 막는 역할을 했단다.


마을 청소를 하러 오신 듯한 주민들께서 우리가 오는 것을 보고는 천천히 자리를 뜨시며 "쓰레기가 많이 몰려와서....." 무슨 말씀인지 잘 알 수가 없어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한 아주머니는 빙그레 웃으시며 튼튼해 보이는 나무 지팡이까지 건네주신다.  해변가로 내려오자 그분이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해변에는 저 먼바다에서 몰려온 쓰레기가 엄청나게 쌓여 있는 것이다. 


영덕기미 쉼터에 있는 담장은 우실이라 하며 그네에 앉아 쉬노라면 확 트인 바다 전경이 일품이다.
우실 앞바다


영덕기미 쉼터에서 바다로 내려가 잠시 걷다 보면 바닷가에 홀로 덩그러니 놓여 있는 꽁돌과 오른쪽을 유심히 살펴보면 아기 무덤과 같은 돌묘를 찾을 수 있다. 꽁돌은 공깃돌의 사투리로 높이 3.5 미터 지름 4~5 미터나 되는 크고 둥근 바위로 아랫부분에는 커다란 손바닥 자국이 나 있다. 

그럴싸한 전설이 전해오는데 옥황상제가 애지중지하던 꽁돌을 딸들이 가지고 놀다 그만 떨어뜨렸단다. 장수를 시켜 꽁돌을 가져오게 했으나 너무 무거운 나머지 손자국만 남기고 그만 그 꽁돌에 깔려 죽었다. 꽁돌 옆에는 장수의 무덤이라는 돌묘까지 있는데 꽁돌의 손자국에 비하면 아주 작다.


관호마을 뒷재 왕돌끼미


장수의 무덤이라는 돌묘와 손바닥 모양이 선연한 꽁돌


왕돌끼미에서 하늘다리로 가려면 바닷길과 산길을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해야 한다. 아주머니께서 지팡이를 주신 것은 이 때문이다. 무성하게 풀이 자란 등산로를 숨 가쁘게 오르다 나무 사이로 보이는 시원한 바다 풍경에 잠시 쉬다보면  빨간색 달랑게가 어찌나 빠르게 발 밑을 지나는지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영골 잔등에서 내려다본 바다 풍경

어렵게 하늘다리에 도착해서는 실망감이 몰려왔다. 다른 이름 있는 다리처럼 출렁거리는 것도 아니고 그 길이도 짧아 "이게 뭐람"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칼로 자른 듯 3~4미터의 사이를 둔 두 절벽 사이에 놓인 다리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마치 번지 점프대에 선 것처럼 아찔하다.

허기진 속을 채우느라 준비해 온 떡을 먹고 있을 때 갑자기 천둥 치는 소리가 들려 깜짝 놀랐는데 바로 깊고 비좁은 바위틈으로 바람과 파도가 들어왔다 나가는 소리다.  하늘다리의 절경은 벼락바위에 가서 봐야 짜릿함이 느껴진다.

하늘다리는 고백을 못하고 속앓이를 하는 하는 젊은이들을 데리고 하늘다리 너머로 소풍을 가서는 둘만 남겨놓고 통다리를 치워버렸다가 두 사람이 사랑을 고백하고 이뤄지면 다시 마을로 데려온다는 풋풋한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벼락바위 쪽에서 보이는 하늘다리
.

관호마을 아래쪽에 있는 하늘담(벼락바위)과 다리여를 가려면 마을로 돌아와 관호마을 끝에 있는 팽나무골 민박집을 끼고 다시 산으로 올라가야 한다. 산을 오르며 은은히 콧등을 스치는 향이 있으니 바로 길 옆 밭에 가득 심어놓은 쑥이다. 이곳 등산로는 물기가 많아 이끼가 잔뜩 끼어 미끄러운 데다 풀이 무성하게 자라 조심조심 헤치며 가야 한다. 벼락바위로 가는 길은 등산로와 바닷길이 있으니 오고 갈 때 길을 달리하면 관매도의 구석구석의 비경을 전부 볼 수 있다.


관호마을의 능선까지 만든 밭에는 섬의 대표작물인 쑥이 크고 있다.
길이 어디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풀이 자란 길을 헤치고 가다 보면 나무 사이로 옹기종기 떠있는 섬 모습이 푸근하다.


하늘 담은 옛날부터 당제를 지내던 용머리다. 청년을 제주로 추대해 당제를 올렸는데 그 전 후 일 년 동안은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하고 처녀와 만나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규율을 어기고 만난 처녀와 총각은 어느 날 벼락이 쳐서 돌무더기가 떨어지는 바람에 그 자리에서 죽어 다리여의 쌍 구렁이 바위가 되었단다. 해안가에는 정말로 벼락이 내리친 것처럼  거대한 바위들이 여기저기 뒹굴고 있다.  


하늘담(벼락바위)
벼락바위 앞으로 길게 바다로 나있는 다리여는 한 달에 4~5회 바닷물이 빠졌을 때 걸어서 갈 수 있다.


벼락바위부터 이어지는 해안길을 걷다 보면 산으로 올 때 보지 못했던 해안가의 기암절벽을 볼 수 있다. 가다 가 길을 잘못 들었나 싶을 때도 있으나 자세히 보면 마을 주민들이 까맣게 화살표를 해놓아 바위틈 사이로 사람 하나는 통과할 수 있다.


희미해진 화살표 아래를 통과하면 다시 바닷길을 만날 수 있다.


폭포수의 물을 맞으면 피부병이 씻은 듯이 낫는다는 서들바굴폭포(좌)는 배를 타지 않고도 볼 수 있다.


벼락바위와 하늘다리를 보기 위해 섬의 오른쪽을 돌다 보니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관매도 해수욕장의 일몰이 볼 만하다 하여 급히 내려왔으나 끝내 해는 구름 속에 갇혀 볼 수 없었다. 밀려오는 피로감을 붉고 어스름한 분위기가 포근하게 감싸준다.



섬 여행은 날씨가 허락해야만 가능하기에 늘 불안하기 마련이다. 다행히 이른 아침부터 창가로 스며드는 아침 햇살이 어찌나 고마운지 카메라 하나 둘러 매고는 마을 산책길에 나섰다. 관매 마을도 관호마을처럼 돌담을 쌓아 놓은 집이 많다. 육지에서 담을 쌓을 재료를 쉽게 가져올 수 없어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둥글고 모난 돌들을 켜켜이 쌓아 돌담을 만들었다 한다.  거센 비바람도 막아 주고 돌담 가족들의 비밀스러운 추억까지  간직하고 있는 돌담과 흰 벽에 그려진 추억의 벽화는 따뜻한 기억 속에 빠진 게 한다.


아침 산책길에는 강아지와 흑염소까지 따라나선다.
돌담길을 걷다 보면 어릴 적 추억이 소록소록 떠오른다.

거의 어르신만 남아 있는 섬에 초등학교는 문을 닫은 지 오래다. 모 숙박업체에서 사들여 관광지로 활성화하려다가 세월호 사건으로 연기된 채 학교에는 풀만 무성하게 자라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천연기념물 212호로 지정된 후박나무는 수령 800년으로 추정된다. 예전에는 매년 초 당제를 지냈다 한다.


관매도 해수욕장은 일몰 명소로 손꼽히는 곳이다. 게다가 고운 모래사장이 약 3 킬로미터나 이어지고 바다 쪽으로 200 미터를 들어가도 어른 키 높이 정도의 경사를 가지고 있어 가족 동반 휴양지로 안성맞춤이다. 무엇보다 해수욕장 뒤에 있는 곰솔 숲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심었다는 3만 평 규모의 곰솔 숲에 들어가면 금세 딴 세상에 온 듯하다. 게다가 곰솔 숲에는 캠핑이 가능하도록 데크도 마련되어 있다. 민박집도 충분히 편했지만 상쾌한 곰솔 숲에서 하룻밤 자고 나면 몇 년 묶은 지병도 날아가 버리지 않을까?


재선충 때문인지 아기 소나무에는 비닐로 만든 보호막이 쳐져 있다.


선녀들이 방아를 찧으며 놀던 곳이라는 방아섬을 찾아가는 길 또한 호락호락하지 않다. 한 여름에 발길이 끊긴 길에는 무성한 칡넝쿨이 차지하고 있다. 긴 바지를 입고 갔기에 망정이지 짧은 바지라도 입었다면 다리가 엉망이 되었을 것이다.  정말 정글 탐험을 하는 것 같다.


고구마를 재배했던 다랑밭은 봄이면 유채꽃으로 노랗게, 가을이면 메밀꽃으로 하얗게 변한다는 장산편 들판이다. 저 끝 바닷가에 셋배 쉼터가 있다.
칡 꽃을 즈려밟고 간 것은 처음이다.
왼쪽으로 보이는 섬이 방아섬이고 꼭데기에는 남근은 상징하는 바위가 우뚝 서있다.
대나무 터널은 밖에서 보면 하도 컴컴해 들어가기가 무서울 정도다


물이 빠지기 시작한 방아섬에서 우리를 반겨준 것은 흑염소들이다. 낯선 이방인을 보고 슬금슬금 피하기는 하나 도리어 우리를 질책 하 듯 우리가 떠날 때까지 계속 주의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방아섬 정상으로도 올라갈 수 있다고는 하나 우리는 방아섬 아래의 해안 절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했다. 까맣게 켜켜이 드러난 돌에서 다양한 형상을 찾아볼 수 있다. 파도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잔잔한 바다 이건만 오랫동안 들고 나기를 거듭하며 이런 작품을 만들어 놓았다.



마지막 목적지인 독립문 바위를 찾아 나섰다. 중간에 출입금지라는 팻말을 보고 옆 길로 빠졌다가 산을 얼마나 헤매고 다녔는지 모른다. 어쩌다 내려간 바닷가에는 또다시 흑염소 몇 마리가 있다. 결국 독립문 바위는 보지 못했으나 우연히 마주친 바닷가에서 또 한 번 신비한 바다 비경을 보았다. 

이런 바다 풍경은 배를 타고 봐야 제대로 볼 수 있을 텐데 관매도에는 유람선이 없어 어선을 빌려야만 한다. 혹시 다른 팀을 만나면 같이 돌아보려 했지만 못 만난 건지 우리 외에는 관광객이 없었던 건지 우리는 육상 관광만을 하고 할미중드랭이 굴 등은 보지 못하고 돌아와야 했다.




관매도는 남쪽 끝 진도에서도 다시 배를 타고 가야 하는 머나먼 섬이다.  숨은 비경이 많은 섬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하루빨리 코로나가 진정되고 사람들이 찾아와 활기를 되찾았으면. 비록 무성하게 자란 풀 때문에 정글 탐험을 하고 온 기분까지 들기는 했으나 하룻밤 머물렀을 뿐인데도 아주 오랫동안 머물렀던 것처럼 친밀감이 든다. 배를 기다리며 물 멍하던 시간은 또 얼마나 좋았던지. 뭐니 뭐니 해도 관매도 해변과 곰솔 숲은 이제껏 본 해수욕장 중에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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