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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미의 세상 Mar 16. 2021

칠곡 한티 억새마을

경북 가산산성과 팔공산 사이 한티재에 자리한 한티 억새마을.  입구에 세워진 '한티 순교성지'라고 쓰인 커다란 돌 십자가를 지나 성지 안으로 들어가자 넓은 잔디밭 사이로 야외 제대와 성모상 그리고 예수님이 핍박받던 모습을 한 조각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조금 더 올라가자 정겨운 한옥 마을을 만나게 되는데  지붕이 볏단이 아닌 억새다.



1815년 조선 순조 때 안동 김 씨의 세도정치, 홍경래의 난 등으로 사회가 혼란해지자 다산 정약용 선생이 학문으로 받아들였던 천주교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평화를 주며 종교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러나 유교식 제사를 거부하는 등의 신문명인 천주교는 당시 뿌리 깊은 유교 사회에서 사악한 종교로 몰리게 되고 갖은 박해를 당하게 된다.



특히 유교가 강했던 경상도의 깊은 산골마을에는 상대적으로 천주교에 대한 박해가 그리 심하지 않자 경기 충청 전라지역의 신도들은 한두 명 씩 이곳으로 숨어들며 집이 생기고 마을을 이루게 되었다. 세상의 눈을 피해야 했던 사람들은 화전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참담한 생활 속에서 오로지 신앙이라는 정신 유산으로 위로와 평화를 받으며 버텨내었다. 마을의 규모는 점차 커졌고  을해 정해 박해 시 많은 사람들이 대구 감형으로 압송되어오자 대구 가까이에 있던 한티마을은 그들의 옥바라지를 하는 가족까지 모이게 되었다.



그 당시 교인들이 실제로 살았던 곳은 근처의 순교자 묘역이나, 한티 억새마을 조성사업으로 만들어진 억새마을은 200년 전 순교자들이 살았던 그 모습 그대로 투박하게 만들어졌다. 돌과 진흙을 치대 벽을 만들고 억새로 지붕을 만들고 굴러다니는 돌을 쌓아 담을 만들었다.  장작 타는 고소한 내음을 따라 방문을 여니 아주 자그마한 방이 보인다. 맑은 새소리까지 들리는 그 방에 누워보고 싶다.


한강의 기적 속에 급격한 성장을 이루며 우리는 우리 고유의 문화를 많이 잃었다. 특히 국토의 70% 이상이 산지인 우리나라에서 남아 있는 산골마을이라고는 거의 없다. 고유의 산촌살이를 엿볼 수 있는 공간으로 문화사적 가치를 지니며, 어르신께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감성 공간이 되고, 천주교 신자들에게는 더없이 자랑스러운 공간이 되었다.



먹고살아야 했던 사람들은 숯을 굽고 옹기를 구워 팔며 생계를 이어나갔다. 그 옹기를 팔러 가던 길이 지금의  '한티 가는 길'이다. 기나긴 가실성당부터 한티마을까지 조성된 45.6 킬로미터의 순례길을 걸으며 사람들은 자신을 돌아보고, 비우고, 뉘우치고, 용서하며, 큰 사랑을 찾게 된다. 한티 억새마을은 전체 5개 코스 중 마지막 코스의 끝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이 길은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본떠 '한티 아고'라고도 한다.



억새 초가집 외에도 생태 자원을 교란하지 않도록 재건된 순교자 묘역에는 봉분이나 대리석조차 없이 오로지 십자가 하나가 세워져 있다.  사방팔방에 흩어진 시신들은 훼손이 심해 옮기지 못한 채 그 자리에 그대로 묻고 봉분을 만들었다. 어떤 묘역은 바위 틈새에, 또 어떤 묘역은 햇볕이 전혀 닿지 않는 곳에 있는 것을 보면 그때 그 상황이 얼마나 참혹했었는지 알 수 있다. 배교하면 살려주었다는데...

 

동그란 돌은 순교자들의 머리를 의미한다 함


합천 가야산이 조망되는 고즈넉한 억새마을에서 배운 한티 선조들의 공동체적인 삶은 우리 모두에게  큰 교훈을 준다. 굳이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이기주의가 팽배해 가는 현대 사회에 강한 메시지를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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