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미의 세상 Apr 13. 2021

지금 딱 걷기 좋은 속리산 세조길

보은 가볼만한 곳, 법주사, 세조길, 정이품송

그 옛날 열두 구비나 되는 말티고개를 넘어서야 만날 수 있던 산은 '속세를 떠난 산'이라 하여 속리산이라 했다.  태백산에서 시작하여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소백산맥 줄기 한가운데에 있는 속리산은 천왕봉 비로봉 등 9 개의 봉우리와 문장대 입석대 등이 만들어내는 장엄한 모습과 기암괴석과 울창한 삼림이 만들어 내는 풍광은 사계절 내내 많은 사람들을 들끓게 한다. 특히 신록이 아름다운 봄의 모습이란!


말티재


아름드리 소나무가 가득한 오리숲길

속리산 입구 상가부터 법주사에 이르는 길이 오리(약 2 킬리 미터) 숲길이다. 넓은 공간에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울창하게 자란 노송과 갈참나무들이 허리를 낮추고 있는 모습에 격조가 느껴진다.  상쾌한 솔내음과 진득한 흙내음에 취하여 걷다 보면 사이사이에 숨겨진 조각품들이 눈길을 끈다.  사이다 같은 맑은 기운이 느껴지는 곳, 그냥 마냥 머무르고 싶다.




서어나무 등 희귀한 식물에 대한 숲 이야기와 하늘다람쥐 같은 멸종 위기의 동물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자연관찰로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호기심이 일어난다.  흙을 밟지 않고 걸을 수 있는 야자매트가 깔려있는 산책길,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사브작사브작 걸어간다.

 



법이 머무는 사찰인 법주사는 보물 사찰

좋은 산은 좋은 절을 품는다고 했던가?  법주사는 2018년 양산 통도사, 영주 부석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호서 제일가람'이라 쓰인 일주문을 지나 법주사에 이르면 법주사의 상징이 되는 30여 미터가 넘는 웅장한 자태의 금동미륵대불과 부처님의 일생을 여덟 폭 그림으로 그린 팔상도가 모셔진 팔상전이 인상적이다.


일주문
금동미륵대불과 팔상전

법주사는 팔상전 안쪽으로 우리나라 3대 불전의 하나로 꼽히고 있는 대웅보전(보물 제915호)과 원통보전이 있고, 사자 두 마리가 가슴을 맞대고 윗돌을 받치고 있는 쌍사자 석등(국보 제5호)과 수미산의 사방을 지키는 사천왕이 조각되어 있는 사천왕 석등(보물 제15호) 등 많은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대웅보전과 마애여래의좌상


쌍사자 석등과 사천왕 석등


세조가 복천암까지 내려간 까닭은?

범어 등 언어학에 능통한 신미대사는 성균관 유생이었다가 아버지가 유배형에 처하자 출가의 길에 들어선 스님이다. 세조가 왕자 때부터 스승으로 받들었고, 왕위에 올라서도 늘 의지하며 신미대사의 법문을 듣곤 했다. 그 후 세조는 신미대사를 만나기 위하여 피부병을 고친다는 이유로 복천암까지 내려가 3일간 머물며 법회에 참여한 적이 있다. 


이 사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세조길은 법주사 삼거리부터 저수지 탈골암 목욕 소 세심정 복천암까지  약 3.2 킬로미터 가량 이어진다. 왕복 6.4 킬로미터를 걸으려면 약 2시간 반 정도 소요된다. 가파른 오르막 길이 없는 데다 계곡 따라 만들어진 길은 걷는 내내 경쾌한 물소리와 새소리가 함께 하여 시인이 아니라도 절로 시구가 떠오르는 가벼운 산책길이다.



바람도 잔잔한 날,  부드러운 속리산의 능선과 파릇파릇 햇볕에 반짝이는 새순들이 그대로 저수지에 비친 초록빛 풍광은 환상적이다. 나무들은 어떻게 봄이 왔음을 알고 저렇게 매년 거르지 않고 새순을 내고 키워내는 것일까?



거북바위가 있는 수정봉



약사여래의 명을 받은 월광 태자가 세조의 피부병 완쾌를 위하여 목욕을 하게 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목욕 소


마음을 씻는다는 세심정이 있던 곳에는 휴게소가 있고  이곳에서 직진하면 세 번은 올라야 극락에 간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문장대(1,054 미터) 요, 우측으로 오르면 천왕봉(1057 미터)과 신선대까지 오를 수 있다. 복천암은 문장대길로 올라야 한다



계곡에는 지난해 떨어진 낙엽들로 가득하다.


신미대사가 머물던 복천암

이뭣고 다리를 건너 가파른 언덕을 오르면  세조가 신미대사를 만나고 머물며 마음의 병을 치유하고자 했던 복천암이다. 



억불숭유의 조선시대, 세종의 최대 과업이었던 한글 창제에 주도적 역할을 한 사람 중 하나가 신미대사다. 비밀리에 4년에 걸쳐 모음과 자음의 소리글을 범어에서 참고해 28자를 기본으로 하는 한글을 만들어 냈다. 세종은 친히 신미대사에게 법호까지 내렸으나 대신들의 심한 반발에 부딪히고 만다. 



신미대사는 그 후로도 복천암에 머물며 후학 양성에 힘쓰는 동안 세종과 문종이 승하하고 단종이 폐위되고 세조가 왕위에 오르는 긴박한 순간들이 지났다. 세조와도 깊은 인연이 있던 신미 대사는 세조에게도 영원한 스승이었다. 세조가 승하하자 조용히 마지막 법석까지 열어 주었던 신미대사는  억불 정책 속에서도 꾸준히 불사를 진행 하다가 이곳 복천암에서 적멸에 들었다.



큰 공헌을 세우고 왕들의 스승이기도 했던 신미 대사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제대로 된 기록 하나 남기지 않고 조용히 세상을 떠난 신미대사는 불교의 법을 제대로 실천한 대승이다. 부도탑만이 그의 안식처였던 복천암에서 동쪽으로  500여 미터 올라간 곳에 있을 뿐이다.



정이품 벼슬을 받은 소나무

세조가 속리산 법주사로 행차할 때의 일이다. 타고 있던 가마가 커다란 소나무 아래를 지날 때 가지가 아래로 처져 있어 가마가 가지에 걸릴 것을 우려한 세조가 '가마가 걸린다'라고 말하자 소나무가 자신의 가지를 위로 들어 왕이 무사히 지나가도록 하였고 서울로 돌아갈 때는 마침 쏟아지는 소나기를 이 나무 아래서 피할 수 있었다. 신기하고도  기특한 소나무의 충정을 기리기 위하여 세조는 정이품이라는 벼슬을 내렸고 '정이품송'이라 부르게 되었다.



600 년이라는 세월이 짧지 않음을 보여주는 현재의 정이품송은 돌풍으로 인해 한쪽 큰 가지가 부러지면서 위풍당당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좌우 대칭이 깨지고 말았다.


정이품송과 약 7 킬로미터 떨어져 자라는 서원리 소나무를 정이품송과 부부 사이라고 불리고 있다.


지난달 갔을 때만 해도 봄기운이 완연하지 않았으나 지금쯤이면 더욱 푸르름에 젖어 생기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을게다 혼자 걷기 아까운 세조길은 꼭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가는 것이 좋다. 아마 희미해진 사랑도 다시 샘솟게 할 것이다. 그리고 나만 몰랐을지 모르지만 국립공원에는 애완견을 데려갈 수가 없다. 쉬운 산책길이라 데려갔던 우리 집 강아지는 우리가 즐거운 산책을 하는 동안 주차장 차 속에서 기나긴 시간을 보내야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여의도 샛강에서의 3.5 한강길 기후 투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