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색을 싫어하게 된 것은 그 날부터다. 갑자기 들이닥친 여러 명의 남자들이 집안 곳곳에 빨간 딱지를 붙였다. 어려서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잘 몰랐지만 수돗가에 힘없이 앉아 울고 있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직감적으로 안 좋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집안을 헤집고 다니는 그들을 어금니 꽉 깨물고 노려보던 내가 외친 한마디.
"왜! 땅에도 붙이시죠.“
그 후로 몇 년간, 정말 악몽 같은 나날이었다. 고향 선산까지 빚으로 날려버린 아버지는 그저 매일 술만 드셨다. 전처럼 기분 좋게 유행가 가락을 흥얼거리며 드시는 것이 아니라 안주도 없이 술을 드시고는 밤새도록 술주정을 하셨다. 한참 사춘기였던 나는 아버지의 고뇌를 이해하기보다는 무능한 아버지라 여기며 미워했다.
우리는 홍제동 유진상가 근처 상가의 2층 월세방으로 이사했다. 그렇게 얼굴 보기도 어려웠던 엄마 아버지와 종일 같이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정말 최악이었다.
하루는 엄마의 심부름으로 길 건너 시장에 가서 고기도 아닌 돼지비계를 사 왔다. 난생처음 먹어 본 돼지비계가 얼마나 맛있던 지. 모두 잠이 든 한밤중에 캄캄한 부엌으로 가서는 살며시 찌개의 냄비 뚜껑을 열고는 정신없이 비계를 골라 먹었다. 징그럽지도 않았는지 그 밤에 몰래 일어나 돼지비계를 골라 먹다니.......
다시 옮겨 간 곳은 홍제동 화장터 근처 산꼭대기에 있는 시민 아파트의 단칸방이었다. 먼저 집보다 더 작은 방에서 우리 네 식구는 정말 다닥다닥 붙어서 자야 했다. 당시 반찬 투정은커녕 콩나물 무침에 참기름만 넣어도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그 아파트에는 목욕탕도 없어 부엌에서 세수를 해야 했다. 같이 사는 주인 여자는 비누가 아닌 샴푸로 머리를 감았다. 가슴 두근거리며 몰래 짜낸 샴푸로 머리를 감던 날, 그 보드라움과 향기에 취해 나는 그 후로도 가끔 그 집의 샴푸병을 눌렀다.
막내 오빠는 예비고사를 치르던 날 시험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스스로 대학을 포기한 것이다. 그런 분위기 속에 나도 대학을 포기하고 상업학교를 택해야 했고, 한참 결혼 적령기에 있던 작은 언니는 어느 날 갑자기 머리를 깎고는 스님이 되었다.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우리 남매들은 생각지도 않은 엉뚱한 길로 접어들었다.
외할머니의 도움을 받아 작으나마 그 건너 아파트를 겨우 샀고, 고등학교 3학년 8월부터 은행에 조기 취업하게 된 나는 일찌감치 가장이 되어 결혼하는 날까지 동생과 엄마를 부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