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마저 희미해진 아버지

by 마미의 세상

아버지가 태어나고 자란 곳은 충남 예산이다. 부잣집 3대 독자로 귀하게 태어난 아버지는 젊어서 교편생활을 하셨다는데 어떻게 서울까지 올라오셔서 사업을 하셨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버지는 양계장뿐만 아니라 서울 마포 여기저기에 집을 지어 파는 일도 하셨다. 그 때문에 안양에서 서울로 올라오시는 날이면 용돈을 탈 수 있는 날이었다. 우리는 할머니께 따로 용돈이라는 것을 받지 않았기에 아버지만 보면 사야 할 참고서가 있다며 돈을 타서 쓰곤 했다. 물론 아버지는 그런 참고서를 정말 샀는지에 대해서는 한 번도 묻지 않았다.


우리 형제들은 아버지 돌아가신 지 40여 년이 지난 요즘 가끔씩 뜻하지 않은 용돈을 받고 있다. 서울 지역에 집을 짓고 팔기를 되풀이할 때 남았던 땅이나 양계장을 하던 안양에 아버지 명의로 되어 있던 땅이 재건축 바람이 불며 땅주인을 찾으며 알게 된 것이다. 물론 넓은 땅이 아니라 자투리 땅이라 큰돈은 되지 않으나 어렸을 적 받지 못한 용돈을 요즘에야 받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버지가 나처럼 덜렁덜렁한 성격은 절대 아니다. 군대도 다녀오지 않은 아버지는 이부자리를 정리하실 때는 네 귀퉁이가 딱 맞게 개어 놓으시는가 하면 엄마가 계란 판 돈을 수금해 오면 지폐의 앞 뒷장을 정렬하여 구겨진 돈은 깨끗이 펴서 한 다발씩 단정히 묶어 놓으시곤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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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술을 참 좋아하셨다. 술 한잔 하고 오는 날이면 양손에는 자식들에게 먹일 찐빵이나 군고구마 같은 간식거리가 들려있었다. '아빠의 청춘' 노랫가락이 대문 너머에서 들려오면 우리는 허리 굽혀 아버지께 인사하기보다는 아버지가 오늘은 무엇을 사 오셨을까를 궁금해하며 아버지 손 먼저 보곤 했다. 혹시 내가 잠이라도 들어버리면 까슬까슬한 수염을 볼에 문지르며 기어코 단잠을 깨워 간식을 먹이던 아버지가 그때는 그리도 싫었건만 붕어빵만 보면 아버지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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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이 망하고 빚쟁이들에게 쫓겨 결혼한 큰 언니네 뒷방에 숨어 살 때 언니네 거실장을 가득 메웠던 양주는 아버지를 몹시 힘들게 했다. 엄마는 아버지가 그렇게 마시고 싶어 하는 것을 알았으나 그렇지 않아도 사위 눈치보기 바빠 그냥 모른 척할 수밖에 없었단다. 양주병만 보면 떠오르는 아버지의 초췌한 모습.


사람은 자기의 죽는 날을 예감하는 것일까? 갑자기 할머니 할아버지 사진들을 정리해서 액자에 끼워 넣던 아버지는 막내 오빠가 취직했다고 사온 담배 한 보루를 다 못 피우고 떠나셨다. 2년만 더 사셨다면 은행에 취직한 내 모습도 보여드리고 그 좋아하시는 술 한 잔 사드렸을 텐데.

한 사람이 생을 마감하기에 마흔아홉이란 나이는 짧아도 너무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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