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 학교에서 처음 배우기 시작한 주산 타자 부기라는 과목은 차차 익숙해질 수 있었지만 죽어도 적응이 안 되는 과목은 '교련'이었다. 그때 반장이었던 나는 수업을 시작하려면 앞에 나가 인원 보고를 해야 했는데 앞에 나가기만 하면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하며 목소리가 점점 땅으로 꺼져 드는 것이다. 때문에 매번 혼이 났고 방과 후에는 강당 뒤에서 구령 연습까지 받아야 했다.
그 당시에는 국군의 날 행사를 매년 개최하였는데 그해 우리 학교는 학도호국단 자격으로 참석하게 되었다. 키가 160 센티미터 이상 되는 학생들이 차출되었는데 키가 큰 나는 어쩔 수 없이 참여하게 되었다. 군인도 아닌 우리가 갑자기 학업까지 중단하고 여의도에서 제식훈련을 받아야 했다. 9월의 땡볕 아래 우리 모두 깜둥이가 되어가던 어느 날 높은 분(?)이 오셔서는 치마 길이를 자르라고 하는 것이다. 그 바람에 우리는 교복 치마를 무릎 위까지 접어 올려야 했다. 이러저러한 기억 때문에 교련이라는 과목은 정말 싫었다.
그런가 하면 회계학에 해당하는 '부기'라는 과목은 나의 최애의 과목이었다. 나의 학구적인 호기심을 끌기도 했지만 담당 선생님이 좋았다. 그 시절 나의 첫 짝사랑은 바로 부기 선생님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다지 젊지도 멋지지도 않았는데 왜 그때는 그렇게 좋았는지 모르겠다. 2층 교실 창 너머로 보이는 선생님의 뒷모습만 보고 있어도 뛰는 가슴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2학년 때 그분은 담임이 되었고 나는 그 반의 반장이 되었다. 선생님께 잘해 보이고 싶었으나 환경미화 대회에서도 합창대회에서도 번번이 수상하지 못하게 되자 내 속은 타들어가 거의 재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또 왜 그렇게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아이들은 많았는지. 1학기 동안 네댓 번은 부조금을 걷었던 것 같다. 좋아하는 선생님께 잘 보이기는커녕 우울한 날이 계속되자 2학기 때는 죽어도 반장을 못하겠다고 거절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취직도 하고 결혼한 지 한참이 되었을 때 동창생이 그 선생님을 만나러 가자는 것이다. 그 약속을 한 후 나는 몇 날 며칠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붕 떠서 지냈다. 그리고 그날 약속 장소로 향했다.
그런데 예약된 방에 들어갔는데 웬 할아버지가 앞에 앉아 있는 것이다.
“어 잘못 들어왔나?” 그때 친구가
“이제 왔구나” 하며 내 손을 잡아 끈다.
진정하고 자리에 앉아 천천히 살펴보자 그분은 내가 그토록 좋아했던 바로 그 부기 선생님이다. 산뜻한 넥타이에 말쑥한 정장까지 차려입었으나 어느새 백발이 성성해진 노인이 되어 버린 것이다. 세월이 많이도 흘렀구나. 하긴 우리도 양갈래 머리의 수줍은 소녀에서 배가 빵빵한 아줌마가 되었지.....
비가 오거나 울적한 날이면 가끔 떠올리며 가슴 두근거렸던 첫사랑 선생님을 다시 만난 후로는 그렇게 가슴을 두근거리며 회상하는 일은 없어졌다. 첫사랑은 마음속에 간직한 그 모습 그대로 간직해야지 다시 확인하면 안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