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를 착용하세요"
"환승입니다"
참 좋은 세상이다. 교통카드의 터치만으로 버스 요금이 결제되고 지하철을 갈아타도 내가 어디부터 무엇을 타고 왔는지 알아서 계산해서는 요금이 청구된다. 학창 시절 한 달 용돈을 받으면 우선 챙겨야 했던 버스 회수권. 10장 정도로 길게 만들어진 회수권을 한 장씩 잘라 버스 안내양에게 주고는 버스에 탔다.
깻잎머리에 둥근 모자를 쓰고 제복을 입은 앳된 안내양이 만원 버스 안으로 승객을 꾸역꾸역 밀어 넣고는 소리 높여 "올~라잇"하고 외치며 버스를 탕탕 두드리는 장면은 어느새 그리운 추억이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직 어린 소녀였을 텐데 일찌감치 밥벌이에 나선 것이다. 늦은 시간 잠깐잠깐 졸고 있는 안내양을 보며 안쓰러운 마음에 내려야 할 정류장에 도착할 때까지 깨우지 못한 때도 있었다. 생각해보면 그녀들은 나와 비슷한 나이었을게다.
친구들보다 성숙했던 나는 버스 안에서 이런저런 성추행을 당할 때가 많았다. 만원 버스 안에서 이리저리 밀리다 보면 커다란 손이 가슴에 와 있지를 않나, 등 뒤에 착 달라붙어 씩씩대는 아저씨들 때문에 곤혹을 치르지를 않나. 아마 이런 경험 때문에 내가 성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게 됐을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 초만원 버스에 몸을 구겨 넣고 버스 문도 닫지 못한 채 출발할 때였다. 안내양은 손님들을 몸으로 꾹꾹 밀어 넣고 올~라잇을 외쳤으나 그 사이에 끼었던 나는 어쩌다 버스 밖으로 굴러 떨어지게 되었다. 부리나케 가방과 소지품을 들고는 다시 버스에 탔다. 이곳저곳이 결리고 얼굴은 따끔거렸으나 학교 등교시간에 늦을까 내 얼굴이 어떻게 되었는지 돌아볼 생각조차 못했다.
막상 학교에 도착해 거울을 보니 시멘트 바닥에 갈렸던 한쪽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친구들은 호들갑을 떨며 양호 선생님을 호출했다. 그때 나타난 선생님은 내 얼굴 따위에는 관심도 없이 소독약을 쓱쓱 발라주고는
"고깟 이것 때문에 교무회의 중인 나를 불러낸 거야." 하며 마구 화를 내는 것이다. 영문도 모른 채 혼이 나야 했고 교실로 돌아오며 소독약을 발라 따가웠던 얼굴보다 벌컥 화를 내는 양호 선생님의 눈초리가 더 따가웠다.
얼마 전 버스를 탔을 때 급 정거하는 바람에 어떤 아주머니가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지고 말았다. 버스 기사는 버스를 세우고는 괜찮냐고 물으며 이상이 있으면 전화하라고 몇 번이나 친절하게 말하는 것이다. 세상 참 많이도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