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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미의 세상 Nov 26. 2021

대나무 숲에서

담양 죽녹원과 관방제림

여름에도 잘 내리지 않던 비가 이 가을에 왜 이렇게 자주 오는지. 을씨년스러운 날 찾아간 곳은 담양 죽녹원이다. 10 년 전 오랫동안 운영하던 빵가게를 접고 무기력하게 지내는 나를 위로하기 위해 남편이 데려왔던 곳이다. 


비 때문인지 대나무숲은 더욱 짓푸른 빛을 띠고 있다.


빽빽하게 자란 대나무 숲은 하늘까지도 가려버려 한 낮인데도 숲 안은 칠흑 같은 어둠이 깔렸다. 사진 출사 시, 마디 진 줄기에 달려있는 댓잎이나 한 줄기 빛에 비친 이파리의 그림자가 예뻐 한 컷 담으려면 한참을 찾아 헤매곤 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자라는 대나무를 우리 조상들은 선비가 가져야 할 제일의 덕목이라며  묵죽화의 소재로 많이 그렸다.



울창한 대나무 숲에 홀로 있으면 신성함과 함께  섬찟한 두려움이 몰려온다. 지난달 익산 여행에서  개인 소유지라는 구룡마을 대나무 숲에 들렀을 때는 쨍쨍하게 해가 났었다. 관광객이라고는 우리뿐이라 사진 몇 장 찍느라 남편과  조금이라도 떨어지게 되면 다급히 "기다려!"를  외쳐야 했다. 다른 관광지처럼 정리되어 있지는 않으나 꽤나 넓게 숲이 형성되어 있어  대나무 숲의 정취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익산 구룡마을 대나무 숲


몇 년 전, 제주도 협재해변 건너의 작은 섬 비양도에 갯무꽃이 한창이라 하여 홀로 카메라 한 대 달랑 메고 찾은 적이 있다.  검은 돌 사이에 작고 여리게 피어있는 보랏빛 갯무꽃을 따라가다 보니 나도 모르게 비양봉을 오르고 있었다. 그때 산 중턱에서 대나무 숲을 만났다. 죽녹원처럼 넓지는 않아도 키를 훌쩍 넘은 대나무 숲길이 이어졌다.  


바닷바람이 불기라도 하면 대나무는 마치 폭포수가 쏟아지는 것처럼 큰 소리를 냈다. 그때마다 오싹한 기운에 얼음이 된 나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준 것은  "호로록호로록 뾰로롱" 하고 울어대는 휘파람새였다. 아마 그 새가 없었다면 비양봉 정상을 가득 메운 갯무꽃은 보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왜 이렇게 겁이 많은 건지.....



나이가 들수록 가장 어려운 것이 사람들과 잘 어울려 지내는 것이다. 나와 다른 사람들과 부대끼며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휘어질 망정 부러지지는 않겠다며 대나무처럼 살다가는 고집불통의 괴팍한 사람이 되어 금세 왕따가 되고 말 것이다.  그저 그러려니 하며 대나무의 속 빈 강정처럼 나를 드러내지 않고 욕심을 내려놓아야 한다. 고집 센 나는 그 간단한 것이 어렵기만 하다.



비 온 뒤 죽순이 하루에 1 미터 이상 자라는 것을 보고  '우후죽순'이라는 말이 생겨났고, 대나무 꽃은 번식과 상관없이 피지만 한 번 꽃이 피게 되면 대나무 밭 전체포 퍼지고 꽃이 지면 그 대나무밭의 대나무는 모두 고사하고 만단다. 그렇다면 이곳의 대 숲도 언젠가는 모두 없어지고 마는 걸까?



죽녹원 건너 관방천에 빼곡하게 심어놓은 관방제림은 비 때문에 그 붉음이 더욱 진해져 정말 '불탄다'라는 말이 딱 어울렸다. 지인과 산책길에 나선 사람들의 환호성 소리가 그치질 않는다. 나무들이 올해 마지막 피날레 공연을 하고 있는 것이다. 완전히 가슴이 터질 것만 같다.



만추의 여행지로 담양 죽녹원 강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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