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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미의 세상 Nov 16. 2021

이제야 마곡사에 간 것은

수국 색동 정원

"10월인데 아직도 수국이 남아있다고?"

제주도 까만 돌담 넘어 보랏빛으로 탐스럽게 피었던 수국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특히 수정이 끝난 뒤 주위에 피어있던 헛꽃이 고개를 숙여 더 이상 벌들이 오지 않게 한다는 산수국에 대한 설명을 들은 뒤로는 산수국을 보면 헛꽃 모양부터 살피는 버릇까지 생겼다.



지난달 공주 여행할 때 인터넷을 뒤지다 찾아낸 곳이 '수국 색동 정원'이다. 그까짓 꽃 하나 찍겠다고 공주 시내에서도 멀리 떨어진 색동 정원까지 가겠다는 마누라의 성화에 아침 식사도 거른 채 유구까지 갔다. 


3분의 2 정도는 이미 시들어버렸지만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말라 햇살에 반짝이는  모습도 독특하다.


다행스럽게도 유구교 아래 천변에는 6월에 만개했던 수국이 아직도 남아 있다. 게다가 요즘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핑크 뮬리와 댑싸리까지. 그저 꽃만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마누라 때문에 쌀쌀한 아침 바람 고스란히 맞으며 남편은 한~참을 떨고 있어야 했다. 아마 배도 어지간히 고팠을게다.



아침 빛 받은 강아지풀도 별처럼 반짝이고 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만족한 얼굴에 만면의 미소를 짓고 있는 나와 달리 잔뜩 웅크린 채 불만 가득한 남편은 느닷없이

 "조금만 가면 마곡사다. 그곳에 들렀다 가자" 

'마곡사!' 갑자기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다.  마곡사는 50여 년 전 작은 언니가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된 절이기에 일부러 피했던 곳이다.


유난히 키 큰 가로수가 줄지어 있는 길은 S자를 그리며 한참이나 이어졌다. 야심 차게 시작한 양송이 사업이 유류파동으로 쫄딱 망해버리고 술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아버지는 딸이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어야 했다. 허겁지겁 딸을 찾아 이 낯선 절까지 오며 얼마나 황당하셨을까? 아마 아버지는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 모든 것이 자신 때문이라고 꽤나 자책하셨을게다. 시집도 보내지 않은 딸의 삭발한 모습을 보고는 또 얼마나 땅을 치고 우셨을까? 


나만큼이나 고집 센 언니를 설득할 도리는 없었다. 그 딸을 이 심심 산곡에 두고 발길을 돌리셨을 부모님을 생각하니 가슴팍이 뻐근해 온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가 언니가 스님이 된 주된 이유는 아니었지만 아마 작은 계기는 되었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안강에서 작은 절을 운영하며 사는 스님은 오로지 부처님 모시고 기도하는 생활이 즐겁기만 하단다. 지방에서는 사주팔자라던가 뭐 그런 것을 봐줘야 신도도 있으련만 오로지 기도만 하는 스님을 동네 사람들이 반길 리가 없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경상도 신도는 절을 한 곳만 다니는 것이 아니라 서너 군데는 다니고 스님이 얼마나 열심히 기도하는 것을 아는 신도들이 있어 겨우겨우 절이 운영되고 있다. 


내가 젊었을 때 낮에 직장 다니랴 밤에 대학 다니랴 정신없이 사는 모습을 늘 안타깝게 지켜보던 스님은 "너도 머리 깎고 절에 오지 않을래? 부처님 모시고 사는 게 얼마나 좋은데!"하고 말하곤 했다. 불교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곤 일도 없는 내게는 택도 없는 소리였다. 



마곡사는 법주사 통도사 등 7개의 사찰과 함께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으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태화산에 둘러싸인 절은 해탈문을 지나  계류를 건너야 대광보전 등 본전을 만나게 된다.


8,000여 평 정도로 부지가 넓은 마곡사는  마곡천 계곡을 사이에 두고 남원과 북원으로 나눠진다.


티베트식 상륜부를 갖추었다는 오층석탑은 공사중이라 볼 수가 없고 옆에서 볼 때  여덟 팔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을 한 대광 보전 안에는 진리를 상징하는 비로자나불을 모시고 있다.
대웅보전 (보물 제 801호)은  2층 건물 형태의 중층구조로 보이지만 실제는 한 공간인 목조 건물에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약사여래불과 아미타불을 모시고 있다.
계곡 건너편에는 템플스테이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한말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일본인 장교 스치다를 황해도 안악군 치하포 나루에서 죽인 김구는 인천 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하다가 탈옥하여 하은당이라는 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법명을 원종이라 하고 승려를 가장하며 마곡사에서 살았다 한다.


김구 선생이 심은 향나무와 잠시 머물렀던 백범당


마곡사에서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길에는 길게 데크가 형성되어 있다. 마곡천을 따라 울창하게 자란 나무와 계곡이 잘 어우러진 길이다.  청아한 물소리에 귀 기울이며 걷다 보니 어느덧 무거운 마음도 한층 가벼워졌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정답은 없다. 그저 하루하루가 행복하면 그만이다. 돈을 좇고 배움을 쫒고 이념을 쫒고 아름다움을 쫒고..... 각자의 가치에 따라 한평생 살고 간다. 아마도 부모님은 돌아가시면서도 작은 언니는 손톱 밑에 낀 가시와 같았을 것이다. 하긴 나는 30대 중반에 결혼 안 하고 사는 딸도 이해 못하고 있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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