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선도를 떼어놓고 설명하기 어려운 보길도 여행은 땅끝마을 해남 길두항에서 시작한다. 30분마다 배편이 있는 것으로 보아 한때는 꽤나 많은 관광객이 찾았던 곳으로 보이나 지금은 문을 연 식당조차 찾기 어렵다. 코로나는 땅끝마을까지 꽁꽁 얼어붙게 했나 보다.
2008년 보길대교의 완공으로 보길도를 찾는 관광객들은 보길도의 청별항이 아닌 노화도의 이목항으로 간 후 자동차로 보길도로 향한다. 보길도는 자동차로 4시간 정도면 볼 수 있는 아담한 섬이다.
조선 중기의 문신 윤선도는 병자호란 당시 해남에서 칩거하고 있었다. 인조가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제주도로 가다가 보길도의 아름다운 자연에 매료되어 뿌리를 내린다. 광대봉 적자봉 격자봉 방월봉 안산 등이 병풍처럼 둘러있는 부용동은 보길도에서 가장 경치가 수려한 곳이다. 윤선도는 이곳에 자기의 무릉도원을 만들었다.
세연정은 고산이 손님을 맞고 연회를 베풀며 풍류를 즐기던 곳으로 세연지와 회수담이라는 두 개의 연못 사이에 정자를 지었다. 독특한 한국미를 발산하는 정원으로 담양의 소쇄원과 더불어 조선시대 최고의 정원으로 손꼽히고 있다.
동천석실은 부용동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산 중턱에 있다. 고산이 신선처럼 글을 읽던 곳이다. 치열한 당쟁으로 일생을 거의 벽지의 유배지에서 보냈던 윤선도는 세연정과 동천석실을 오가며 독서와 시문학에 빠져 살았다.
망끝 전망대
보옥리에서 북쪽으로 1.5 킬로미터 지점 해안도로가 지나는 보길도의 서쪽 끝에 망끝 전망대가 있다. 옥매 갈도 상도 등의 무인도가 지척에 있고 남쪽으로 횡간도와 추자도가 보인다는데 자욱한 안개 때문에 그저 뿌연 바다만 보인다.
전망대 너머 뾰족하게 솟아 오른 산이 보죽산이다. 현지 사람들은 보옥리를 뽀리기라고 부르는데 뾰족산에서 연유된 것이 아닌가 싶다.
보옥리 공룡알 해변
공룡알 해변이라 해서 호기심을 안고 마을 샛길을 따라 바닷가로 가 보니 해변을 가득 채운 몽돌은 특이하게도 큼지막한 데다 색도 붉은빛을 띠고 있는데 청명석이라 한다. 어떻게 보면 공룡 무리가 알을 잔뜩 낳아 놓은 것 같아 아이들이 오면 신기해하며 좋아하겠다.
해변 뒤편에는 백 년이 넘은 동백나무가 빽빽하게 해변을 감싸고 있다. 어찌나 으슥한지 숲에 들어가기 무서울 정도다. 3,4월이라면 만개한 동백꽃을 보았을 것을.
다도해라더니 보길도 주변에는 크고 작은 섬이 많다. 제일 왼쪽 어장 너머 보이는 섬이 갈마도, 길게 누워 있는 섬이 당사도, 그 옆에 작은 섬이 소도와 복생도 그리고 크게 보이는 섬이 예작도 오른쪽으로 길게 뻗어 있는 곳은 예송리 해수욕장이다. 바다가 잔잔해서인지 근처 해안가에는 양식장도 많다.
예송리 갯돌 해변
예송리는 보옥리와 다르게 둥글고 납작한 갯돌(청환석)이 2 킬로미터나 이어진다. 그 해변을 감싸고 있는 상록수림은 활처럼 휘어진 해변과 어우러져 멋진 풍광을 이룬다. 300 년 전 섬 주민들이 거센 바닷바람을 막기 위하여 심었다던 나무는 이제 울창한 숲을 이뤄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이 되고 겨울에는 방풍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다.
송시열 암각시문 글쒼바위
보길도의 동쪽 끝 해안 절벽에 송시열의 암각시문이 있다. 표지가 잘 보이지 않아 갯바위를 타고 한참을 갔으나 알고 보니 빨간 건물 쪽이 입구다. 현재 암각시문은 훼손되어 형태를 알아보기는 어려우나 주변 백도리의 풍광이 시원하다.
선조에서 숙종조에 이르기까지 대유학자로 알려진 송시열은 왕세자 책봉 문제로 삭탈관직을 당하고 제주도 유배길을 가다가 풍랑으로 잠시 보길도에 머물게 되었다. 그는 임금에 대한 서운함과 그리움을 바위에 남겼으니 지금까지 그 시문이 남아있다.
등산객들이 많이 찾고 있는 보길도는 윤선도 유적지 때문인지 자연적인 섬이라기보다는 잘 가꾸어진 공원 같다. 배편이 많아 당일 코스로도 거뜬히 다녀올 수 있어 좋다. 이른 봄에는 꽃구경 여름철에는 피서지로 오면 좋겠다. 윤선도와 송시열의 이해에 따른 역사와 문학 정보는 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