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아는 만복의 근원이라고 하나 내겐 지지리도 없는 것이 치복이다. 친할머니의 뻐드렁니에, 친정 엄마의 옹니가 합하니 아래위 치열이 맞기를 하나, 어려서 제대로 치아 관리를 못해 충지도 많다. 무엇보다 거울 앞에 앉아 제일 먼저 보이는 뻐드렁니가 죽기보다 싫다.
내 첫 월급은 13만 원 정도였다. 물론 처음 3 개월은 그 금액의 70 퍼센트를 받았지만 그중 매달 10만 원 정도를 저축했다. 다른 시중은행 들어간 친구들의 월급이 7~8 만원 정도였으니 새내기가 10만 원이라는 돈을 저축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때는 요즘처럼 치아 교정이 일반화되지 않았다. 취직해서 사회생활을 하던 나는 치아 교정기를 끼고 직장에 다니는 것은 생각할 수가 없었다. 내가 선택한 무식한 방법은 튀어나온 앞니 네 개를 뽑고 여섯 개를 새로 해 넣는 것이다. 아마 좋은 의사를 만났더라면 적극적으로 말렸겠지만 여섯 개나 의치를 하겠다는 손님을 놓치지 않으려는 의사는 흔쾌히 내 건강한 이를 왕창 뽑아 버리고 의치를 해주었다. 나는 1년 동안 고이고이 저축해 놓은 돈뿐만 아니라 첫 휴가도 고스란히 바쳤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에 일어났다. 다음 주 출근하자 갑자기 고열이 나며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발치한 후 제대로 처리를 못해 그만 장티푸스에 걸린 것이다. 열을 내리게 하느라 간호사들이 수시로 팔다리를 소독약으로 닦아내는 통에 나는 입원 내내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 퇴원해서 집으로 갔을 때 핼쑥한 내 얼굴을 보고는 엄마는 당장 사골을 사다 고아서 먹였고 나는 며칠 후 또다시 열이 올라 병원에 입원을 했다. 열병에 사골 국물을 먹었으니.
그렇게 입행 1년 만에 나는 어렵게 환골탈태를 했다. 물론 잇몸 수술까지 한 것이 아니라 그저 앞으로 향했던 이 몇 개를 약간 아래로 숙인 것뿐이다. 그래도 인상은 전보다 많이 부드러워졌다. 1년 동안 번 돈을 한방에 날렸어도 나의 변한 모습은 꽤 만족스러웠다.
나이가 들며 가장 곤혹스러운 것이 치아다. 그때는 임플란트가 없었으니 충치 하나를 치료하려면 브리지 치료를 하다보니 나의 이는 온통 브릿지로 연결되어 있다.
치아는 엄마를 닮는다더니 우리 두 딸의 이도 말이 아니다. 나처럼 심하지는 않으나 앞니는 약간 튀어나왔고 치아 건강도 좋지 않다.
둘째가 직장에 들어간 지 1년, 그 아이도 나처럼 치과에 다니고 있다. 물론 앞니까지 손을 본 것은 아니나 치열이 불규칙한 데다 충치가 잘 생기는 통에 치료할 것이 많은가 보다. 지방에 내려가 직장 생활을 하느라 월급이 고스란히 쌓이다가 엉뚱하게 치과에 돈을 쏟아 붓고 있다. 그저 어미 닮아 그런 것 같아 미안하고 안쓰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