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진시험으로 갈라진 우정

by 마미의 세상

취직 후 가장 친했던 사람은 은행 입행 동기들이다. 멀리 있어 자주 만나지 못하는 동창들보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마주치고 같은 환경에서 비슷한 고민거리를 나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점심시간에는 도시락을 싸가지고 위층 식당에서 같이 나눠먹고 퇴근 후에는 명동거리를 활보하며 음악다방에도 가고 가끔은 디스코텍에 가서 스트레스를 풀었다.


그러다 각자에게 남자 친구가 생기기 시작했다. 4시 반, 은행 셔터를 내리고 나면 다정다감한 남자 친구를 둔 동기부터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얄미울 정도로 행복하게 전화를 받는 바람에 샘이 난 나는 기다리다 못해 내가 먼저 전화를 해보지만 길어야 다섯 마디나 될까 "그래 잘 있어." 뚝! 정말 왜 그렇게도 멋대가리가 없는 남자를 만났는지.


시중 은행에 비해 퇴근 시간이 정확했기에 우리 모두 야간 대학에 지원했다. 그때부터 우리의 퇴근 후의 만남은 없어졌고 연애와 공부를 병행하느라 점심시간 외에는 만날 수가 없었다. 그래도 같은 처지였기에 만나면 반갑게 웃을 수 있었다.


6명의 동기들은 결혼도 비슷한 시기에 하였다. 멀고 먼 서울 외곽에 신혼집을 차린 동기의 집들이도 마다하지 않았다. 비록 연립주택 단칸방이었던 우리 집에 와서도 맛있는 저녁을 먹고는 분위기를 잡느라 불을 끄고 모두 따뜻한 이불 안에 발을 넣고는 무드를 잡으며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모두 신혼인 데다 사랑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친구들과 함께했던 그 시간은 지금 생각해봐도 정말로 행복했다.


우리는 임신도 비슷하게 했다. 은행 곳곳에 뒤뚱거리며 다니는 임산부들을 보며 남자들은 얼마나 싫었을까? 어디 그뿐인가 은행 야유회에 갈 때도 아이들까지 데려가곤 했다. 어느 날 살도 많이 찐 선배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는 자기네끼리 수근덕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도대체 저렇게 관리를 안 할까? 머리 스타일하며 몸매는 또 어떻고."

머리 전체를 뽀글뽀글하게 볶은 아줌마들이 얼마나 싫었을까? 맞아. 우리도 여자지... 그 후 나는 생뚱맞게 그때 유행하던 단발머리로 스타일을 바꾸고 유니폼을 입는 바람에 통 신경을 쓰지 않던 옷차림에도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동기들은 비록 전처럼 친하지는 않았으나 서로 우애가 돈독했다. 그런데 '도비고'라고 하는 인사제도가 생겼다. 상사가 일 잘하는 사람에게 일호 승진을 더하게 해 주는 것이다. 물론 6명 전부가 같은 대우를 받지 못했고 그로부터 보이지 않는 벽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승진 시험을 보고는 직책까지 달라진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서로 원수 아닌 원수가 되어 버렸다.


승진 시험을 재수 삼수하는 사람도 있었으나 나는 죽을 둥 살 둥 밤을 지새우며 준비를 해서 한 번에 전 과목을 패스하게 되었다. 그런데 재수를 해서 시험을 같은 해에 통과한 동기에게 결제를 받으라는 것이다. 정말로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다. 그것은 정말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다. 정말 사표를 내던지고 싶었으나 억지로 참았다. 그때 우리는 단칸방에서 독채 전세로, 다시 작은 아파트에서 방 한 칸씩 넓혀 가던 때라 그저 눈물을 머금고 다녀야만 했다.


정말로 친했던 친구들과 이런 문제로 멀어지게 된 것이 정말로 가슴이 아팠다. 그리고 몇 년 후 내가 조기 퇴직 신청서를 내고도 그 친구들은 밥 한 끼 같이 하지 않을 정도로 우리 사이는 멀어져 있었다. 그녀들은 모두 정년까지 은행을 다녔다.


일찌감치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교포와 결혼했다가 이혼했다는 친구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남편 따라 캐나다에 이민 갔다가 이혼한 친구는? 일본 스텝과 어울리며 고문까지 하고 나온 친구는 지금 행복할까? 50 플러스 캠퍼스에서 본인이 외국은행 출신이라고 목에 힘주고 다닌다는 또 다른 친구와는 전화하기조차 껄끄럽다. 다음 달 아들 결혼식에 와 달라고 오랜만에 청첩장을 보낸 친구, 홀로 된 친구의 아들 결혼식에 가주어야 하는데 그곳에서 옛 동료들을 만날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편히 않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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