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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미의 세상 Oct 03. 2018

목동 아줌마의 명동 나들이

모처럼 명동으로 나갔다. 


을지로입구에서 20년 넘게 직장 생활을 하던 나의 놀이터는 명동이었다. 은행에 처음 취업하여 동기들끼리 몰려가 DJ 오빠만 바라보며 커피 홀짝이던 시절부터 결혼 후 바쁜 생활 속에 유일한 자유 시간인 점심시간에 배회하고 다녔던 곳이 바로 명동이다.


직장을 그만두고 빵집 아줌마로 살기 시작하면서 목동에 틀어박혀 산지 어느새 20년이 다되어 간다. 물론 을지로나 롯데 백화점 앞을 차로 지난 적도 있고 고궁으로 사진을 찍으러 간 적은 많으나 명동 안으로 들어가 본 적이 없다. 어둠이 내려앉는 명동은 평일인데도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여기가 그 전의 명동 맞나? 건물들이 리모델링을 했는지 전 같지 않고 크고 높다. 골목골목 점심을 먹으러 다니던 콩나물 국밥집 국시집은 어디론가 가버리고 낯선 음식점들 뿐이다. 마치 외국의 밤거리 같다. 그 많던 구두 거리도 없다. 여기 상업은행이 있었는데.... 아, 합병하여 우리은행! 굳건히 지키고 있는 은행 이름도 어느새 바뀌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더니 정말로 많이 변했다.


초저녁에 만난 우리는 서둘러 모임을 끝내고 명동 밤거리를 돌아본다.  명동 성당 앞에 들어선  새로운 건물로 성당이 제대로 보이질 않는다. 바로 앞으로 나오자 문득 수표를 들고뛰던 은행연합회가 생각나 돌아보니 리모델링하기는 했으나 아직 그곳에 있다. 그렇게 정이 있던 곳도 아니건만 반갑기 그지없다. 이제부터는 보물찾기 하듯 그 옛날의 기억 찾기다.


한국어보다는 중국어와 일본어가 많이 들리는 거리를 꽉 채운 것은 수많은 푸드트럭들이다. 음식도 한국 고유의 음식만 있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옷가게를 채우고 있는 것은 명품이 아닌 값싼 젊은이들의 옷으로 가득하고 화장품 가게에서 이따만한 보따리를 들고 나오는 것은 중국인이다. 길거리 음식을 사가지고 길바닥에 앉아 즐겁게 먹고 있는 젊은이들. 명동은 그렇게 팔딱이며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그곳에 멈춰진 시계를 돌리고 있는 나는 그저 신기한 눈으로 여기저기 구경하기 바빴다. 그러다 찾아낸 할머니 낙지집, 원래 이름이 뭐였는지 잊었으나 퇴계로 가까이 있는 그 집 앞에는 70년 전통이란 글씨가 보인다. 아직도 그 맛일까? 유일하게 찾아낸 구두가게는 늦은 시간도 아니건만  굳게 문이 닫혀 있다.


번쩍이는 불빛 때문인지 과식한 저녁 탓인지 아니면 약해진 다리 때문인지 명동을 제대로 돌지도 못한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조용히  각자의 젊은 날의 추억 속에 빠진 채 지하철역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어이 거기 몇 년생이야"

"58년 개띠요!"

나는 그렇게 거짓말을 하며 디스코텍으로 들어가 집게손가락으로 수없이 허공을 찔러댔었다. 

맞아 내게도 그런 때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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