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이와 만난 지 어느새 40 년

by 마미의 세상

다음 달 '1월 21일'이면 남편과 만난 지 어느새 40 년이 된다. 지금은 없어지고 이름조차 잊어버린 종각 근처 어느 찻집이었다. 대학 입시를 끝내고 한가하게 지내는 내게 율산에 함께 다니던 내 친구와 시누이가 소개팅을 주선하였다.


이미 직장생활 3 년 차인 내게 대학교 4학년이었던 그가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꾀죄죄한 버버리 코트에 007 가방(?)을 들고 나온 그는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그는 냅다

"그쪽도 1학년 새내기고 나도 취직 준비로 바쁘니 주말에 도서관에서 만나 공부나 합시다."

뭐 별 볼일도 없었고 공부는 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나는 매주 그의 대학교 도서관을 찾았다.


그 당시에는 음식 백화점이라는 것이 있었다. 공부를 하다가 배가 고프면 우리는 저렴하게 식사를 하기 위하여 그곳을 찾곤 했다. 그는 학생이었고 나는 돈을 벌고 있었으니 그 밥값은 거의 내 차지였다. 그런데 눈치코치 없는 그 사람은 가장 비싼 메뉴를 시켰고 나는 돈에 맞춰 라면을 먹곤 했다. 어디 그뿐이랴 가끔은 친구마저 데리고 나오는 것이다. (그 친구는 나중에 우리 집 집들이에 와서는 그때 얻어먹은 밥값이라며 수표 몇 장을 내게 주었다. 한 10 년 만에 뻥튀기가 되어 돌아온 것이다.)


대학 입학식 날 그는 입학식에 왔고 그날 축하하러 와준 오빠와 남동생에게 그만 딱 걸리고 말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가 결혼까지 골인할 줄은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야간 대학의 학생들은 대부분 사회생활을 갓 시작한 상고 출신들이다. 나도 상고를 나왔지만 어린 나이에 어른인 듯 정장에 넥타이까지 매고 있는 그들을 보면 왠지 사회의 때가 묻은 것 같고 나의 자화상을 보는 것 같아 싫었다. 그래서 천진난만한 남편이 더 좋아 보였다. 같은 과 학생들 중 잘 어울렸던 사람도 직장에 다니지 않는 동생들이었다. 남동생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누나 누나하고 따르는 동생들이 부담이 없고 편했다.


그렇게 우리 만남은 여름까지 이어졌고 친구네 커플과 함께 망상해수욕장으로 여름휴가를 떠났다. 직장과 학교와 집만을 오가는 숨 막히는 생활을 하다가 탁 트인 바다로 휴가를 가보니 그저 하늘을 날 것만 같았다. 그렇게 들떠 물 멍하고 있는 내게 비수 같은 말이 들려왔다

"어떻게 그렇게 다리가 굵을 수가 있어요?"

순간 얼굴이 확 달아오르며 느꼈던 모멸감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나는 바로 짐 보따리를 싸들고 서울로 올라와 버렸다. 그렇게 우리 만남은 반년만에 끝이 났다.


그리고 1년 후 별 볼일 없이 지내던 어느 토요일 오후 타박타박 집으로 걸어가고 있을 때 남동생이 나를 보고는 뛰어왔다. 어떤 남자가 찾아왔단다.

"취직도 했으니 따님과 정식으로 만나고 싶습니다"

헤어진 게 언젠데 나도 아니고 우리 엄마를 찾아왔다고?


그렇게 우리 만남은 다시 시작되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더벅머리의 대학생이 아니었고 버젓한 사회인이 되어 있었다. 청와대 근처 모 건설회사에 다니는 그와 시청역 근처 은행에 다니는 나는 주로 사직공원이나 남산에서 데이트를 하였다. 회계사가 되겠다며 큰소리치던 나의 꿈은 어딘가에 처박아버리고 수업도 대충 1,2교시만 끝내고 그와 데이트를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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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여름 우리는 설악산 주전골로 첫 캠핑을 갔다. 바리바리 먹거리를 준비해 갔건만 빠진 것이 있어 그는 그것을 사기 위해 산 아래로 내려갔고 나는 혼자 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한산한 계곡에 캠핑객이라고는 우리뿐이었다. 그때 몰려오는 대여섯 명의 남자들. 저만치서 힐끗 우리 텐트를 기웃대더니 어느새 슬금슬금 계곡 아래로 내려오는 것이다. 나는 겁이 나서 급히 텐트 안으로 들어가 지퍼를 내리고는 눈에 보이는 삽 하나를 움켜잡았다. 그들의 흥얼거리는 유행가 소리가 점차 가까워지자 나의 심장은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쿵쾅거렸다. 움켜쥔 삽자루에 잔뜩 힘을 주고는 “부처님 하느님 제발!” 하며 신자도 아닌 나는 신을 찾았다.


그때 저쪽 모퉁이로 그가 보였다. 나는 황급히 손을 흔들며 “종승 씨~~” 하고 부르며 뛰어 나갔다. 뭔가 이상함을 느낀 그는 검은 비닐봉지를 거머쥔 채 미친 듯이 달려왔고 그들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태연히 가던 길로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내 남자가 얼마나 멋있게 보이던지.


낮까지도 멀쩡하던 날씨는 밤이 되면서 한 두 방울 비를 내리더니 점차 폭우로 변해갔다. 우리가 꿈꾸던 멋진 밤은커녕 한숨도 잠을 자지 못한 채 밤새 불어나는 계곡만을 바라봐야 했다. 새벽녘쯤 불어난 계곡물이 빠른 속도로 우리 텐트 가까이 다가오자 우리는 혼비백산하여 텐트를 걷어야 했다. 남자라는 이유로 거센 비바람 맞으며 호기 있게 혼자서 텐트를 걷던 모습은 또 얼마나 믿음직스럽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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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1박 2일 여행을 가도 "진심으로 사랑하는 여자는 결혼할 때까지 지켜줘야 해"하고 말하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바람기에 질색팔색 하며 "남자는 다 도둑놈들이야" 하고 외치던 나는 그런 그가 신기하기만 했다. 그렇게 내 눈에 콩깍지가 씌었다.


울 엄마는 비쩍 마른 그를 싫어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기에 오로지 명이 긴 사람이 사위가 되었으면 했다. 그런데 그렇게 틈만 나면 여행을 떠나는 딸이 처녀일 것 같지 않아 할 수 없이 허락했다고 했다. 그런데 정말 우리의 첫 경험은 신혼여행으로 간 제주도 모 호텔이었다.


시누이 넷을 데리고 살아야 한다는 것도, 연립주택 단칸방부터 시작해야만 한다는 것도 내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래도 결혼식만은 졸업 후에 한가하게 치르고 싶었으나 그해가 아니면 서른 살이 넘어야 결혼 운이 들어온다는 말에 4학년 2학기 중간고사도 포기한 채 우리는 결혼식을 올렸다. 다른 과목들은 리포트로 대체가 가능했지만 한 과목은 죽어도 시험을 쳐야 한다고 해서 과 친구(전혀 그 과목을 모르는)에게 대리시험을 부탁했다. 그 친구가 무엇을 어떻게 쓰고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다행히 F학점을 안 주신 교수님 덕분에 겨우 졸업장은 받을 수 있었다. 덕분에 4학년 2학기의 성적표는 A부터 D까지 화려하게 장식되었다.


얼마 전 시누이 아들이 결혼하여 집들이를 할 때 그 녀석이 내게 물었다. 숙모는 외삼촌의 뭐가 그리 좋았어요?

"글쎄... 그저 예쁘장한 얼굴 하나."

탤런트 김주승과 꼭 닮은 남편이 웃고 있는 모습에 홀려 지금까지 알콩달콩 잘 살고 있다.

물론 그 콩깍지는 오래전에 벗겨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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