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두 딸이 있다. 그렇게 '아들 아들'하고 외치던 내가 셋째를 포기한 것은 주변에 그렇게 어렵게 얻은 아들들이 속 만 썩이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다른 것은 남 부러울 것이 없지만 자기 아들을 부를 때 이름을 부르지 않고 '아들~' 하는 부르는 여자들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다.
직장 생활을 계속해야 했던 나로서는 아이를 낳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단칸방을 독채 전세라도 옮겨 놓고 우리의 첫 아이를 갖고 싶었다. 결혼한 지 1년 정도 지났을 무렵 이제는 아이를 가져볼까 하고 생각했을 때 늘 아프던 위가 또 말썽을 부렸다. '그래, 아이를 낳으려면 위부터 고치자' 하고는 그날로 내과에 가서 엎어놓고 또 잦혀놓고 마구마구 위 사진을 찍었다. 바로 그때 이미 우리의 첫 아이가 자라고 있었는데 말이다. 임신 사실에 놀란 나는 병원에 가서 상담을 했으나 태어나면 백혈병에 걸릴 위험이 많단다.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소중한 우리의 첫 아이를 보내야 했다. 그리고는 아이를 유산시키면 불임이 될 수 있다는 말에 허겁지겁 가진 아이가 바로 우리 큰 딸이다.
어느 날 주인집 할머니는 "새댁 아이 가진 거 아냐? 뱀 한 마리가 다가와 내 손을 꼭 물던 걸' 그로부터 며칠 후 나도 반지를 하나 주어 끼었고 한참 어둠 속을 헤매다 또 하나의 반지를 줍는 꿈을 꾸었다. 남들은 내 꿈 이야기를 듣고는 두 번째도 딸일 것 같다고 했으나 나는 고개를 강하게 저으며 믿지 않았다.
나처럼 열 달 내내 입덧을 하는 사람이 있을까? 눈치 없는 울 엄마는 사위가 좋아하는 냄새도 지독한 고등어조림을 맨날 하곤 했다. 엄마가 그랬듯이 눈물 콧물 다 빼며 토하는 내게는 관심조차 주지 않은 채 오로지 백년손님인 사위 밥상만 걱정하는 것이다. 점심시간이면 뭐 당기는 것이 있을까 하여 직장 주변을 몇 바퀴나 돌곤 했으나 억지로 먹을 수 있었던 것은 KFC 치킨과 명동 칼국수였다. 전혀 내가 좋아하지 않던 음식인데 그것은 조금이나마 먹을 수가 있었다. 나중에 아이를 키우다 보니 그것은 큰딸이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그렇게 열 달을 지내고 나면 남들과 달리 나는 원래의 몸무게보다 3킬로그램이나 빠져있었다.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그렇게 먹은 것이 별로 없었어도 나는 죽지 않았고 아이도 건강하게 순산하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첫 딸을 낳은 것이 조금 서운하기는 해도 '둘째는 아들 낳으면 되지'하며 행복해했다. 그런데 꼭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부담감과 환갑이 넘은 친정 엄마한테 또 신세를 끼치게 될 것이 부담스러워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터울이 거의 10 년 가까이 나고 말았다. 그것도 다니던 직장이 다른 은행과 합병하게 되었다는 발표를 듣고 지금이 아니면 둘째를 갖기 어려울 것 같았고 그해가 황금돼지 띠라 너나 할 것 없이 아이를 가지기에 나도 그 흐름을 따랐다. 그렇게 얼떨결에 낳은 것이 우리 둘째다. 아들 낳는 방법을 그렇게 공부했건만 실수(?)로 아이 가진 것을 알았고 즉시 아들 낳는 한약까지 먹었으나 나는 또 딸을 낳고 말았다.
그 후, 시아버지가 양자를 들이는 게 어떻냐는 제안이 왔다. 세상에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양자를 들여? 나는 팔딱팔딱 뛰었고 시아버지는 그러면 유산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시댁 재산은 거의 아주버님과 손주에게로 갔다. 큰 며느리에게 따뜻한 밥 한 끼도 못 얻어 드시고 손주는 전화조차 안 하건만 지금도 만족하고 계실까?
딸만 낳아 키울 때 섭섭한 마음이 없지 않았으나 이제는 다른 집 아들들이 그렇게 부럽지 않다. 다만 착하고 듬직한 사위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다른 날 보다 설 연휴에는 시댁 챙기랴 설 다음날 돌아가신 친정 엄마 제사 챙기랴 내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하다. 그때 가장 필요한 것은 우리 두 딸이다. 이제는 손 발이 척척 맞아 내가 재료만 준비해 놓으면 알아서 들 요리를 한다. 내게 아들만 있었다면 꿈도 못 꿀 일이다.
얼마 전 만나기만 하면 아들 자랑을 하던 지인은 푸념을 하는 것이다. 어버이날이 다가오길래 잔뜩 기대를 하고는 밥이라도 먹자고 할까 봐 쫄쫄 굶고 있었단다. 그런데 밤늦게 돌아온 아들은 말도 없이 방으로 들어가 버리더니 다음날도 그냥 나가버리더란다. 섭섭한 마음에 닫힌 문 만 바라보고 있다가 우연히 방 앞에 놓인 쇼핑백을 보니 그 안에 편지 한 장 없이 셔츠 하나가 덜렁 들어 있더란다. 어디 그뿐이랴 피자나 치킨을 시켜서는 엄마에게 한쪽 먹어보란 말도 없이 혼자 우걱우걱 먹는 것을 보면 그렇게 서운할 수가 없단다. 그저 귀하게 얻은 아들이라 오냐오냐하며 키웠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에 비하면 남부럽지 않은 딸이 되지는 못했으나 그저 자기 길 찾아 잘 살아가고 있는 우리 두 딸이 고맙기만 하다. 할아버지가 매일 자식들의 전화를 기다리는 것을 보고 자란 큰 딸은 아침 9시면 영락없이 전화를 해서 안부를 묻는다. 어떤 때는 귀찮아서 대충 받거나 핀잔을 해대는 내가 그렇게 좋지는 않을 텐데 말이다. 탄산음료 좋아하는 엄마를 위해 탄산수를 배달시키는 작은딸. "내 거 사려다 엄마 것도 샀어"하며 내미는 화장품도 머리핀도 나를 소소한 즐거움에 빠지게 한다. 선물이란 꼭 크고 좋을 필요는 없다. 그저 그것을 고르고 보낼 때만큼은 이 에미를 생각하고 있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