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롤스티겐, 게이랑에르 피오르, 플롬 산악열차
이 한 여름에 눈 덮인 산이라니! 게다가 계곡 사이로 흘러내리는 폭포는 마치 산을 두 동강이라도 낼 것처럼 엄청난 속도와 수량으로 쏟아붓고 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멋진 자태를 자랑하며 올라가는 도심 건물에 탄성을 지르곤 했지만 천여 미터나 된다는 웅장한 산 앞에 쪼그라질 대로 쪼그라진 나의 심장은 금세 터져버릴 듯 심하게 요동을 쳐댄다.
빙하와 지난겨울 내렸던 눈이 녹은 에메랄드 빛의 물은 푸른 목초지의 나무 사이를 마구잡이로 헤치며 흐르는데 그 물길이 어찌나 거세던지 빨려 들어갈까 가까이 가기도 무섭다.
오따의 아침
피오르를 보기 위해 달려오다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 멈춘 도시 오따. 예쁜 집들이 보고 싶 마냥 아침잠에 빠져 있을 수가 없었다. 카메라 한 대만 들고 무작정 동네로 나갔다. 기차역 근처와 강 건너편의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며칠 동안이나 장맛비가 내렸던 것처럼 요란하게 흘러가는 강과 아침 안개로 뒤덮인 마을의 분위기는 환상적이었다.
요정의 사다리라는 트롤 스티겐
북으로 북으로 달려가던 버스가 승차한 곳은 장엄한 피오르 산세에 파묻힌 캠핑장(?)과 같은 곳이다. 우리를 반갑게 맞이한 것은 우스꽝스럽고 이상하게 생긴 트롤로 북유럽 신화와 전설에 등장한다는 괴물과 빙하가 만든 호쾌한 U자형 계곡과 환상적인 경치다. 한 컷 한 컷 스쳐가는 장면 모두가 명화의 한 장면이다. 이곳에 인간이 만들었을 리 없다는 '요정의 길' 트롤 스티겐이 있다. 해발 2,000 미터 꼭대기에 무려 11번이나 지그재그로 심하게 굽어있는 험난한 길.
아슬아슬하게 오르는 길은 외길이다. 큰 버스가 맞은편 차량을 피하며 S자를 그리며 아슬아슬하게 산을 오를 때는 두려움과 절경에 환호했고 능수능란한 버스 기사의 운전 솜씨에 감탄했기는 했으나 몹시 오금이 저렸다. 양 옆의 산은 마치 다양한 폭포 전시장 같다.
그 모든 것을 둘러볼 수 있는 전망대에 머무르는 시간은 너무나 짧다. 주변을 천천히 돌며 설산과 주변 풍경에 한껏 빠져보고 싶었으나 패키지여행에서는 꿈도 꿀 수 없다. 전망대까지는 숨도 쉬지 않고 달려가야 했고 가슴 벅찬 설경은 그저 창으로 보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푸른빛으로 빛나는 눈과 얼음, 그것이 녹아 만든 옥빛 호수의 경이로운 풍광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산 정상에서 게이랑에르 피오르로 내려가는 길은 독수리의 길이다. 세계 자연유산으로 등록된 게이랑에르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게이랑 오르는 여름에만 갈 수 있다고 한다.
일반 하천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은 피오르 사이를 오가는 교통수단 중 하나가 페리다. 페리를 타고 게이랑에르를 관광하고자 하는 사람들로 작은 마을은 생기가 가득했다.
드디어 페리에 버스까지 탑승했다. 미끄러지듯 배를 타고 피오르로 들어가자 양 옆으로 높은 절벽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웅장한 협곡에 사람들은 압도당한 듯 그저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 하이라이트는 뭐니 뭐니 해도 아름다운 폭포다. 7 자매 폭포(크니브스플로포센 폭포)와 구혼자 폭포에 다다르자 함성소리와 함께 카메라 셔터 소리가 수없이 들려왔다. 칠자매 폭포는 날씨와 계절과 수량에 따라 폭포의 개수가 달라진다고 한다. 의자에 올라가 한참을 사진을 찍다가 마주친 서양 할머니는 나를 향해 엄지 척해주고 있었다. 미친 듯 셔터를 누르는 동양 여자가 얼마나 우습게 보였을까?
마을에 살던 한 청년이 아름다운 7 자매에게 돌아가며 청혼했으나 안타깝게도 7 자매는 술에 취해 모두 거절했다고 한다. 이에 상심한 청년은 자매에게 바칠 술병의 모습으로 폭포가 되었으니 건너편에 있는 구혼자 폭포다.
다시 플롬 산악열차를 타기 위하여 라르달로 향했다. 그 어느 곳 하나도 놓칠 수가 없어 무겁디 무거운 눈을 부릅뜨고 있어야 했다.
세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되었다는 뵈이야 빙하
뵈이야 빙하는 캐나다에서 본 것과 많이 달랐다. 빙상 차를 한참이나 타고 올라가 아주 두꺼운 얼음에서 방방 뛰었던 그런 빙하가 아닌 골짜기에 녹아내리다만 얼음 덩어리와 눈이 섞여 있을 뿐이다. 하긴 캐나다를 다녀온 것도 20년이 넘었으니 아마 지금쯤 그곳의 빙하도 많이 녹아 없어졌을지도 모르겠다.
빙하 박물관에서는 빙하의 생성과정 등을 보여주고 있는데 특이하게 실제 빙하를 만져볼 수 있도록 손바닥만 한 빙하까지 비치하고 있다.
하룻밤 머물렀던 아름다운 마을 라르달
너무나 평화로운 마을 라르달. 화려하게 정원을 꾸민 것도 아니고 단지 창틀에 꽃병 하나 놓았을 뿐인데 왜 그렇게 멋지고 행복하게 보였을까? 아마 주위의 아름다운 풍경에 내가 도취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바로 그때 정신을 차리게 하는 굉음이 들려와 올려다보니 작디작은 폭포가 마을 어귀로 떨어지고 있다.
플롬과 뮈르달을 연결하는 관광용 산악 열차 플롬 스바나
플롬은 거대한 송네 피오르의 가장 깊숙한 내륙에 있는 마을이다. 처음 철도를 놓을 때는 관광용이 아니라 이 지역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서 건설되었다 한다.
20 년이라는 긴 공사 끝에 완성된 산악열차는 20킬로미터나 이어지고 최대 경사가 무려 55도에 이르는 급경사 구역도 있다. 기차에서 바라보는 플롬스달렌 계곡의 웅장한 파노라마는 엄지 척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쇼스 포센 폭포에 이르면 열차가 잠시 정차하여 거대한 폭포를 감상하게 하는데 쉴 새 없이 쏟아지는 하얀 물줄기와 거대한 소리가 공간을 압도한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음악 소리와 함께 물안개 사이로 빨간색 옷을 입고 춤을 추며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데, 한 사람이 아닌 듯하다.
이는 노르웨이 발레 학교의 학생들이 펼치는 짧은 공연으로 요정 훌드라(비밀이라는 뜻으로 비나 안개를 사용하여 사람들을 홀린다)를 표현한 것이다. 마법에 걸려 꼬리가 생긴 아름다운 여인은 자유를 얻기 위해 사람들을 숲 속으로 꾀어내어 목숨을 뺏기도 한다. 꼬리를 떨어뜨리려고 남자를 유혹해서 결혼식을 올리는 순간 발각되어 실패했다고 한다.
훌드라 사진을 찍어보겠다고 잠깐 서있었을 뿐인데 기차에 돌아와 보니 온몸이 흥건하다.
피오르를 만나기 위해 기차와 버스, 페리 그리고 산악열차까지 번갈아 타며 보았다. 각기 다른 감동으로 다가온 피오르는 내 기억 속에 아름답게 자리 잡았다. 노르웨이 정말로 아름다운 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