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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미의 세상 Feb 14. 2023

나는 지난 10년을 잘 살아온 걸까?

사진, 취미

"이런 달력 사진 찍어서 뭐 하려고요?"

"이 사진을 왜 찍었는데요?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데요?"

"예쁘잖아요. 멋있잖아요"

"작가는 글로, 화가는 그림으로, 사진작가는 사진으로 무언가를 전하는 메시지가 있어야 해요. 그저 예뻐서 찍는 사진이어서는 안 돼요."



지도교사의 연이은 질문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숨까지 막혀왔다. 내가 그동안 밤 잠 안 자고 온 천지를 돌아다니며 찍어온 사진들이 모두 의미가 없단다. 하긴 남이 찍어 온 멋진 장면을 보면 기어코 그 위치를 묻고 시간대까지 맞춰 가서는 꼭 같은 장면을 담으려고 애썼던 것은  사실이다.  그렇게 나는 지난 10 년을 보냈다.



요즘 휴대폰에 카메라 기능이 추가된 후로 나처럼 무거운 DSLR을 들고 사진을 찍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카메라를 들고 오는 사람들 중 젊은 애호가들도 간혹 있기는 하나 주로 중장년들이다. 요즘은 사진에 대한 열풍이 조금 사그라지기는 했으나 몇 년 전만 해도 퇴직자들이 많이 즐기는 취미 중 하나가 사진이었다.


나는 지금도 주위 사람들에게 취미로 사진 찍기를 적극 권하고 있다. 실제로 같이 사진을 찍는 사람들 중 몇몇은 사진을 시작하고 나서 건강을 되찾기도 했다. 상쾌한 공기 마시고  멋진 경치 바라보며 적당히 운동까지 할 수 있는 데다 나름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도 갖게 하기 때문에 시간 많고 여유 있는 퇴직자들의 취미생활로는 정말 딱이다.



10여 년 전 빵가게를 그만두고 헛헛한 마음을 달래려 구청 문화센터에 이런저런 과목을 신청하고는 매일매일을 바쁘게 살았던 적이있다. 다른 과목은 길어야 6개월이면 끝이 났지만 사진 수업은 달랐다. 솔직히 나도 내가 그렇게 사진에 빠져 지낼 줄은 몰랐다.


한국 사진작가 협회에 가입하기까지 3,4년이라는 시간은 정말 꿈과 같은 시간이었다. 그동안 일만 하며 사느라 제대로 여행도 못 갔고 주말에 혹시 가족과 함께 여행을 간다 해도 대부분 차에서 이동하는 시간에는 모자란 잠을 잤고 목적지에 도착해서는 맛있는 음식을 먹고 오면 그만이었다. 그 멋진 곳을 제대로 보려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너무 피곤했고 그저 쉬고만 싶었다.


그런데 사진을 시작하고 나서야 사시사철 그렇게 앙증맞은 꽃이 핀다는 것도, 빛이 만드는 독특한 세상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카메라 앵글로 바라본 세상은 정말 아름다웠고 그것도 멀지 않은 바로 내 주변에 있었다. 내가 돈벌이를 그만두었을 때 마침 남편은 해외 근무 중이었고 딸들은 더 이상 에미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나는 미친 듯 전국을 헤매며 사진을 찍었고 아무리 보잘것없는 사진을 찍어와도 늘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는 선생님이 있었다.


새싹이 움트는 봄이 오면 바짝 말라버린 낙엽들을 들추며 야생화를 담기 시작하여 개나리 벚꽃 등 철 따라 피는 꽃을 찍다 보면 어느새 단풍이 들고 있었다. 밤새 별궤적을 찍느라 꼬박 밤을 새우는가 하면 저녁노을을 찍다가 캄캄한 밤중에야 산을 내려오기도 했지만 피곤하기는커녕 그저 행복하고 즐거웠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동호회 회원들 대부분이 중년이라는 것이다. 한 번은 철새의 군무를 찍으러 저 아랫녘 어딘가에 갔을 때다. 이미 강가에는 많은 사람들이 새들의 쇼를 보기 위하여 자리를 잡고 있었고 뒤늦게 도착한 우리는 허겁지겁 삼각대를 설치할 빈 공간을 찾고 있었다.  그때 귓전에 들려오는 한 마디

"양로원에서 단체로 구경 나오셨나 봐"

헉, 양로원이라고! 하긴  돌아보니 꾸부정한 행색에 무거운 카메라 장비를 양손에 들고 기우뚱기우뚱 걸어가는 모습이 영락없이 양로원 단체 관광객들이다. 나는 슬그머니 뒤처지며 마치 그들과 일행이 아닌 양 다른 쪽에 자리를 잡았다. 실제로 난 거의 막내였기에 그들과 싸잡아서 노인으로 치부되긴 싫었다.



"어제도 이쪽으로 날아왔으니 아마 오늘도 이쪽부터 시작될 거야"

새가 벌이는 쇼를 처음 볼 생각을 하니 가슴이 뛰었다. 잠시 후 시작된 새들의 군무는 환상 그 자체였다. 그들은 왜 저녁이면 저토록 한바탕 춤을 추다는 것일까? 바로 머리 위로 날아든 수만 마리의 새떼들은 흐느적흐느적 그 넓은 강가를 무대 삼아 몇 바퀴나 돌고 돌더니 쏜살같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채 10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다.  나는 그들이 만드는 멋진 포물선에 와 다다닥 대포를 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사진이고 뭐고 그저 입을 벌린 채 그들의 쇼를 감상하였다. 그 후로 그런 멋진 쇼는 다시 보지 못했다. 사진 한 장으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었던 그 장면은 사진이 아닌 내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겨졌다.



"오메가다"

탄성이 오가며 여기저기에서 타닥타닥 셔터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그러나 짧은 시간  보여주는 해넘이쇼를 담기 위하여 삼각대를 설치하고 마냥  기다렸건만 해는 순식간에 바닷속으로 쏙 들어가 버릴때도 다.  허무하고 야속했다. 그나마 오메가를 확실히 담았을 때는 가슴 벅찬 감동을 가지고 돌아오지만 아주 멀쩡한 날 큰 기대를 하며 그 멀리까지 갔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구름이 해를 감추었을 때의 허탈감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또 어떤 때는 갑자기 나타난 구름 때문에 모두 포기하고 삼각대를 접은 순간 갑자기 구름이 걷히며 해를 보여주는데 그것도 오메가일 때도 다.  그런 날은 횡재라도 한것 같아  팔딱팔딱 뛰었다.



언젠가 별궤적을 찍겠다고 강원도에 갔을 때다. 윙윙거리며 돌아가는 풍력발전기 아래에서 나는 밤새도록 와들와들 떨었다. 아무리 강원도 산꼭대기라 해도 한 여름인데 그렇게 추울 줄은 몰랐것이. 우비와 바람막이 점퍼까지 준비해 온 사람들은  여유있게 기다리면 되었지만 나는 사진이고 뭐고 간에 족히 두세 시간은 정말 비맞은 개처럼 달달 떠느라정신이 없었다. 또 발전기가 그렇게 무서운 소리를 내고 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그렇게 힘들고 재미있고 별난 시간을 정말로 행복하게 보냈는데 그 결과물은 일언지하에 무시된 것이다.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으려고 사진을  찍은것은 아니지만...


한 학기 내내 외국 유명 작가들에 대한 연구가 이어졌고 현대의 사진들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나 같은 문외한은 그 유명 작가들의 깊은 속내를 도대체 알 길이 없다. 게다가 현대 사진을 들여다보면 도대체 만화도 아니고 이상한 장면을 연출하여 사진으로 담는가 하면 그저 평범한 슈퍼마켓이나 아파트를 대형으로 찍어서는 대작이라고 한다.


게다가 요즘은 아트를 한답시고 사진에 그림을 그리고 포토샾으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고 있다. 그 신선함에 따라 해 볼까도 생각했지만 끈기와 인내를 필요로 하는 작업을 도저히 따라갈 자신이 없다. 한 번 칼을 뽑았으니 무라도 잘라야 할 텐데 어찌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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