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미의 세상 Mar 13. 2023

그저 세월의 흔적을 조금 지우고 싶었는데...

성형

언제부터인가 사진 찍기가 싫었다. 나름 예쁘다고 생각해 왔던 얼굴에 세월의 흔적이 남기 시작한 것이다. 눈매가 쳐지는가 싶더니 팔자주름이 깊어지고 요즘에는 양 입가에 심술보도 생기기 시작했다. 주위 사람들은 내게 별다른 관심이 없겠지만 문득 거울에 비치는 내 모습을 보고 서글퍼지곤 했다. 무릎이 시원치 않아 계단을 내려갈 때도 게처럼 옆으로 내려가는 것이 창피해 죽겠는데 얼굴마저 영락없는 할머니다.


그러니 인터넷 게임을 하다가 중간에 나타나는 리프팅 선전에 자꾸만 시선이 멈춰졌다.

"그래 조금만 당겨 볼까?" 

양손으로 귀 쪽을 살짝 당겨보니 그럴듯했다. 요즘 치과 치료를 받다가 임플란트를 몇 개나 박아야 한다는 것도 겁이 나서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연기했는데 얼굴에 칼을 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떨렸다. 게다가 성형으로 이상하게 변한 몇몇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르며 단념해 보지만 게임할 때마다 여시처럼 광고가 나와서는 나를 유혹하는 것이다.



얼마 전 여행에서 만난 지인은 얼룩덜룩하게 염색된 내 머리카락을 보고는,

"아유  집에서 염색하나 봐. 이젠 자기 자신을 위해 투자 좀 해요. 그 왜 유명한 헤어숍에 가서 머리 손질도 하면 훨씬 나을 텐데" 라며 혀를 차는 것이다.

그때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여행 후 자꾸만 그 말이 떠올랐다. 또 어떤 이는 퇴직할 때 제일 먼저 그동안 고생해 온 자신에게 밍크코트 등 몇 가지를  선물해 주었단다. 난 정말 거액의 퇴직금을 받았는데도 그 흔한 반지 하나 내게 선물하지 않았다. 빵가게를 그만둘 때 가게 보증금만이라도 챙겨 놓을 것을. 어느새 집으로 들어간 지 오래다. 그 후 한동안 남편의 월급에 의존해 살다 보니 점점 더 쪼잔해지고 있었는데 드디어 나도 국민연금을 받게 되었다.


나는 남편에게 "이 연금은 오롯이 나를 위해 쓸 거야."라고 선언했다.

한 달이 그렇게 빠른 줄 몰랐다. 횡재라도 한 듯 첫 연금을 받아 주위에 커피를 쏘았는데 다 쓰기도 전에 "국민연금드림"이라는 글과 함께 또 입금이 되는 것이다. 성형외과에서는 그런 나에게 끊임없이 추파를 던졌다. 100만 원이 넘는 수술을 세일해서 칠팔십만 원에 가능하단다. 그래 까짓 거 한 번 저질러 봐? 

"오늘은 그냥 상담만 받고 오는 거야"

저 멀리 강남 신사동까지 갔다. 가서 보니 몇 달 전 사진 동호회 사람들과 가로수길 촬영을 위해 갔던 바로 그곳이다. 그때 우리는 성형 때문에 얼굴에 밴드나 반창고를 붙인 여자들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는 아주 신기해했다. 그 동네는 건물 하나 건너가 성형외과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그곳에 환자가 되어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긴 기다림 끝에 만난 상담실장은 수술 전후의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내가 혹해서 간 패키지의 전후사진은 그다지 큰 변화가 없었고 그 단계가 높아질수록 더 드라마틱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당일 수술을 할 경우 주어지는 많은 혜택과 서비스에 대하여 능수능란하게 말하는 그녀에게 그만 넘어가고 말았다. 


나는 지금도 내 얼굴에 어떤 시술이 행해졌는지 잘 모른다. 다만  하안검 수술은 그전부터 하려 했고 조금 욕심을 내 양쪽 머릿속에 M자로 2,3센티미터 자른 후 당기기로  했는데 막상 의사와 직접 상담을 해 보니 내가 하기로 한 시술로는 그다지 큰 효과를 보지 못한단다.


다시 만난 실장은 200만 원이나 더하는 최고 수준의 리프팅을 이야기했다. 나는 일언지하에 거절하며 그냥 하안검 수술이나 하자고 했다. 예정했던 수술보다 범위가 훨씬 좁아진 것이다. 한 건 했다 싶었던 실장은 비상사태라도 맞은 듯 땀을 흘리며 이리저리 뛰어다니더니 나의 담당 의사가 아닌 그 윗사람을 만나고 와서는 수술 후 내 얼굴을 공개하는 조건으로 90만 원만 더 내란다. 게다가 하나카드로 결제하면 6개월까지 할부가 가능하다나? 이미 시간도 많이 지체되었고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나는 덜컥 사고를 치고 말았다.


예정된 수술 시간은 오후 6시. 적어도 서너 시간은 더 기다려야 했다. 그제야 거울을 보니 삼사 센티미터나 자라 있는 흰머리가 보였다.  수술하면 염색도 어려울 테니 그동안 염색이나 하고 오자며 병원 문을 나섰다. 그런데 그곳은 비싼 강남이 아니던가? 나는 지하철을 타고 무작정 시내로 달렸다. 집까지 오기는 너무 멀었고 동대입구쯤이면 적당한 미용실이 있지 않을까 싶어 내렸다. 


그런데 애써 찾아낸 미용실은 문이 닫혀 있어 영업 중인 미용실을 찾아 걷다 보니 약수동까지 가게 되었다. 한 시간 넘게 헤매고 다닌 것이다. 드디어 유명 프랜차이즈 미용실이 보였다. 들어가기 전에 인터넷으로 가격을 검색을 해보니 염색이 십만 원이란다. 기겁을 한 나는 다시 그 동네에서 가장 허술해 보이는 미용실에 얼굴을 빼꼼히 내밀고는 가격을 물어보니 사만오천 원이란다. 우리 동네에서 이삼만 원짜리 염색도 비싸서 못하던 나는 그만 염색을 포기하고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몇 백만 원짜리 수술을 하면서 겨우 사만오천 원이 비싸서 염색을 포기한 것이다.



그렇게 나는 그날 수술을 받았고 피멍과 붓기로 어마무시한 괴물이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3주가 지난 지금까지도 얼마나 옆으로 당겼는지 제대로 눈이 떠지질 않는다. 이러다 원래의 내 선한 눈매는 영영 돌아오지 않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괴물 같은 마누라를 보며 한숨을 쉬는 남편과 참 잘했다고 등 두들겨주는 친구들의 격려 속에 오늘도 떠지지 않는 눈을 부릅뜨며 좀 더 예뻐지길 기다리고 있다. 


예뻐지고 싶었던 내 욕심이 너무 과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지난 10년을 잘 살아온 걸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