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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미의 세상 Nov 15. 2022

나의 가을

50 플러스 센터

와~~ 

아침 햇살을 받은 은행잎과 단풍잎의 어우러짐이 탄성을 지르게 한다. 매일 걷는 산책길이 어느 관광지 못지않다. 마치 지난 1 년간의 결실이라도 내려는 듯 나무 아래 차곡차곡 쌓이고 있는 오색 낙엽들이 화려하다.



쓱싹쓱싹. 

그냥 한 철 내버려 두어도 좋으련만 계속해서 떨어지는 낙엽을 쓸어 모으느라 경비 아저씨들의 손길이 바쁘다. 우리 집 강아지는 부는 바람 따라 이리저리 나뒹구는 낙엽을 쫒고 냄새를 맡느라 껑충껑충 뛰어대는 통에 느긋이 산책을 즐기고 싶은 나를 마구잡이로 끌고 간다.



2022년도 벌써 11월. 60대에는 시간이 시속 60 킬로미터로 간다더니 정말 빠르게 한 해가 흘러갔다. 그래도 다른 해처럼 허전하지 않고 뿌듯한 것은 그 어느 해보다 열심히 살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50 플러스 센터’를 알고 난 후 올 내내 이것저것을 배우고 다니느라 종횡무진 뛰어다녔다.

“나 요즘 연극한다.”

“뭘 한다고?”

연기는 어릴 때부터 나의 꿈이었다. 국어시간에 책을 읽을 때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칭찬을 받기도 했지만 낭독이나 연극을 하는 것이 참으로 재미있었다. 그러나 안정적인 삶을 원했던 나는 연기자의 길이 아닌 월급쟁이의 길을 택했고 그저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왔다. 그러다 우연히 발견한 연극 수업. 한 번이라도 연극 무대에 서보겠다고 관련 수업을 연거푸 들으며 정말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각기 다른 강사들의 취향에 따라 어떤 때는 라디오의 아나운서가 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독특한 ‘부캐’에 빠져 보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즉흥 연극 무대에 서보기도 했다. 비록 관람객이 많지는 않았으나 실제 연극 공연도 올려보았다.



어디 그뿐이랴? 그동안 마구잡이로 써놓은 글도 책으로 만든답시고 독립출판에도 도전했다. 그동안 출판을 미뤄왔던 것은 누가 돈을 주고 내 책을 살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러다 센터의 커리큘럼에서 발견한 ‘종이책 출판과 전자책 출판’이라는 강의를 보고는 미친척하고 신청했다, 첫 책은 그동안 SNS에 써놓은 제주도 여행기다. SNS에 올린 글을 퍼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때마침 ‘다음’이 불통이 되지를 않나, 꽉 찬 스케줄 때문에 한 밤중에야 작업을 해야 해서 하루 서너 시간밖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렇게 두서없이 260여 페이지에 달하는 글과 사진의 정리를 끝내고 교보문고 퍼플에 판매 신청서를 냈으나 파워포인트에 문제가 있는지 표지 작성에서 두 번이나 반려되고 말았다. 아무도 사지 않을 책을 만드느라 이렇게 생고생만 하고 있다. 


그래도 젊었을 때도 시도해보지 못했던 것에 새롭게 도전하는 내가 나는 참으로 대견하다. 남이 인정해주지 않으면 어떠랴. 그저 내가 도전하며 행복하면 되지. 난 내년에는 또 무엇을 하며 살까?  계속 연극을 하고 있을지 아니면 새로운 또 무언가에 도전하고 있을지 나조차도 궁금하다. 몇 년 전에 들은 ‘Active Senior’라는 단어가 처음에는 낯설었으나 50 플러스에서 수업을 들으며 나이가 들어도 식지 않는 동년배들의 열정에 놀라고 그들과 함께 하며 계속해서 힘을 얻고 있다.

 


“수업 중이에요”

“지금 나이에 무슨 수업?” 그러게 말이다 내 나이가 몇인데? 

나는 요즘 너무 행복하다. 돈을 벌어가며 아이들을 키우지 않아도 되고, 하고 싶은 공부도 하고, 원하는 여행도 실컷 다니고, 큰 부자는 아니라도 맛있는 음식 정도는 부담 없이 사 먹을 수 있으니 그 무엇이 부러우랴? 게다가 전생에 복을 지어야만 얻을 수 있다는 주말부부의 기회가 다시 찾아왔다. 가족들은 각자의 일터인 원룸으로 나가버리고 이 넓은 집에 강아지 한 마리와 남겨진 나는 외롭다기보다는 아주 여유로운 휴가를 즐기고 있다.


언젠가 방송에서 나이 지긋한 어떤 분이 나와 인터뷰를 할 때 만약 돌아갈 수 있다면 인생의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고 싶은지에 대해 물었다. 그분은 60대라고 대답했다. 바로 지금의 내 나이다. 나 같으면 좀 더 욕심을 내서 40대라고 했을 텐데 말이다. 



내가 어렸을 때 오동통한 볼 살을 빼고 싶어 입을 홀쭉하게 만들곤 했는데 그때 어른들은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고는 그 통통한 내 모습이 더 예쁘다고 하셨다. 그때는 그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으나 이제야 그 말뜻을 안다. 눈코 입이 예쁜 것보다 통통 튀는 젊음을 말했을 것이다. 아마 나무가 새순을 내는 5월의 느낌이지 않았을까?


신록의 5월도 예쁘지만 낙엽이 지는 11월도 5월 못지않다. 모두가 우리를 아름답다고 보지 않으면 어떠랴. 그저 우리가 나이 들었다는 생각만 버리고 행복하게 살아간다면 차세대들도 자기들의 미래가 그럴 것이라 믿으며 나이 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너무 바빠 딸들의 전화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엄마를 딸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남편은 이런 내 모습에 늘 응원해 주며 칭찬해 준다. 몸만 따라준다면 내일도 오늘처럼 열심히 살련다. 언제 손자 손녀에게 발목 잡힐지 모르니 말이다. 


이렇게 나의 가을은 숨 가쁘게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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