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속 산책길에서 떠올려 보는 역사 이야기

5호선 광화문역, 창의문, 백사실 계곡, 세검정

by 마미의 세상

어느덧 봄이 오고 있다. 함박눈 맞으며 실컷 돌아치기를 그렇게도 기다렸건만 옷깃 속으로 들어오는 바람과 햇살은 영락없는 봄이다. 서울 하면 빽빽한 빌딩숲과 길게 늘어선 차량 그리고 북적이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되지만 바로 그 한 발치 뒤에는 믿기지 않는 풍경과 잊혀 가는 이야기가 있다. 오늘은 그 숨은 비경을 찾아 자하문 터널에서 창의문, 백사실 계곡을 거쳐 세검정까지 걸어보련다.


자하문 앞 영화 '기생충' 촬영지는?

북악산과 인왕산이 있어 아름다운 효자동과 세검정 사이를 이어주는 자하문 터널을 나오면 영화 기생충의 포토존이 있다. 기택의 가족들이 비 오는 밤 하염없이 내려가던 바로 그 계단이다. 반 지하 집과 영화 세트장은 철거되었지만 노량진의 스카이 피자집과 아현동의 돼지쌀슈퍼 그리고이 계단은 그대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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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하문 터널로 이어지는 굴다리 입구를 나오면 작가 리금홍의 '불현듯 인왕산'이라는 시구를 멋진 캘리그래피로 표현해 놓았다. 저녁이면 조명까지 들어와 묘한 분위기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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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반정' 때 한양으로 반군이 진입했던 창의문

4 소문 중 완전하게 남아 있는 유일한 문인 창의문은 인왕산과 백악산 능선의 가장 낮은 부분에 있다. 자욱이 안개가 끼고 노을이 지는 날이면 노을은 보랏빛으로 보이고, 뿌연 안개 위로 비봉과 사모바위 보현봉이 솟아오른 것처럼 보여 이 부근을 자하골이라 하고 이 북소문을 자하문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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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인조반정(1623년)이 일어난 지 400 년이 된다.


임진왜란 때 왜군의 공격으로 불과 반 달만에 서울이 함락되고 전국이 왜군에게 유린될 때 급하게 세자 책봉을 받게 된 광해군은 선조가 의주로 피난을 떠난 뒤 명나라의 파병군과 함께 분조를 이끌며 전쟁을 수습해야 했다. 그러나 한양이 수복되고 돌아온 선조는 민심이 광해군에게 쏠리는 것을 두려워하여 이내 분조를 해체해 버리고 그 공도 인정해주지 않았다.


적자가 아니었던 광해군은 늘 불안에 떨다가 적자인 영창대군이 태어나자 '폐모살제' 즉 어미인 인목대비를 폐하고 동생인 영창대군을 죽이고 만다. 게다가 명나라가 줄기차게 파병을 요청해 왔지만 지는 해였던 명나라에의 파병을 거절하고는 큰돈과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경희궁을 짓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이는 효와 의를 중시하던 조선 신하들에게 광해군을 공격하는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어 주었고 급기야 인조반정이 일어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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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3년 인조반정군은 한양 도성으로 들어오기 전에 중국 사신들이 임시로 묵었던 '홍제원'에 집결해서 이곳 창의문을 통해 창덕궁으로 진입하였다. 지금 우리가 보는 창의문은 영조 16년에 인조반정의 뜻을 기리고자 만들었다. 창의문 육축 상부의 문루에는 인조반정 공신들의 명단이 새겨져 있다. 임진왜란 때 분조를 만들며 공신을 세운 이들의 명단은 반정군들에게 삭제되고 반정의 공을 세운 52명의 명단은 현판에 새겨 문루에 걸려 있다.


L1019310_1.JPG 지네가 많아 지네의 천적이 닭인데 성문에 닭을 그릴 수가 없어 닭모습을 닮은 봉황을 홍예 중앙과 천정에 그려 넣었다.


서쪽 대문인 돈의문과 북서쪽 대문인 창의문에는 '의'자가 들어가는데 이는 서쪽을 지키는 곳이라는 뜻과 의를 지킨다는 뜻이 있다.


조선시대 문인들이 즐겨 찾았다는 비밀의 숲, 백사실 계곡

한적하고 경사가 높지 않은 길을 사브작사브작 걷다 보면 바짝 말라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마른 이파리에 스며드는 햇살이나 커다란 암벽 아래 옹기종기 둥지를 튼 집들의 모습까지도 살갑게 느껴진다. 아마도 따스한 봄빛 때문이리라. 그때 눈에 들어오는 글귀가 더욱 가슴을 따스하게 한다. "결 고운 바람이 모이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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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모퉁이 카페도 여전하다. 다만 문이 닫혀 멋진 산 아래 정경을 바라보며 커피 한 잔 못 마시고 가는 것은 아쉬웠다. 앙증맞은 노란색 차는 움직이기는 하나 보다. 영업 중에는 마치 호객이라도 하듯 문 밖에 있더니 휴일에는 수문장처럼 철문 안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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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사실 원림 유적을 포함한 계곡 일대를 백석동천이라 한다. 동천은 신선의 영역을 일컫는데 한양 도성 안팎의 경승지에까지 동천이라 하였다. 도화동천, 청린동천 등은 그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지만 백석동천은 청와대 뒤쪽에 있어 각종 규제를 받아보니 아직도 그 아름다운 모습이 남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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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이 계곡에는 도롱뇽뿐만 아니라 버들치와 가재등 다양한 수생식물도 관찰된다고 한다. 이른 봄에 보아도 아름다우니 나뭇잎이 푸르게 나고 계곡 물이 경쾌하게 흐른다면 오죽하랴. 문인과 화가들은 이 앞에서 아름다운 시를 짓고 그림을 그렸을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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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경관을 아주 잘 살려 넓은 너럭바위 위에 세운 현통사 또한 절경이다 비가 많이 오는 여름에는 암반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이 마치 폭포수처럼 흘러내릴 것 같다. 잔잔하게 들려오는 스님의 독경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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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반정군이 칼을 갈고 씻었다는 세검정 골짜기에는 흐르는 물을 이용하여 조선의 한지를 만드는 조지서가 있다. 종이가 귀했던 당시 실록편찬이 끝나면 글쓴이의 비밀을 보장하고 그 기록을 없애기 위하여 사초나 초고들을 씻어내는 세초 작업이 행해졌다고 한다. 세검정 아래 널찍한 바위인 차일암에서 세초 작업이 끝나면 세초연까지 열었다. 또한 경치가 아름다워 조선 사대부가 노니는 명소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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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5개의 수문으로 이뤄진 오간수문


숙종 41년에 만들어진 탕춘대성과 홍지문(유형문화재 제33호)은 한양도성과 북한산성을 연결하기 위해지었으며 그로 인해 한양 북쪽의 방어체제가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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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관음기도도량으로 낙산사의 홍련암, 강화도의 보문사, 남해 보리암 그리고 세검정의 옥천암을 든다. 태조 이성계도 이 석불에 기원했다고 하니 불자가 간절히 원하는 바가 있다면 한 번 찾아가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L1019399.JPG 옥천암(닷집 안에 하얀 바위를 깎아 만든 마애석불)


광해군을 폐위시킨 인조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었을까? 이괄의 난등 좀처럼 잠잠해지지 않는 혼란 속에 후금은 광해군 폐위를 구실로 정묘호란을 일으켰고, 9년 뒤 청나라는 다시 병자호란을 일으켜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굴욕적인 삼전도를 당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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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으로 인해 남자들은 전쟁터에 나가 죽고 여자들은 환향녀가 되어 돌아와 편히 살지 못하다 자살하는 일이 많아지자 인조는 홍제천에 가서 목욕을 하고 오면 그 더러운 과거가 다 씻겨진다고 하였다. 저런..... 그런데 백성들은 그 임금의 은혜에 감사하며 세검정 근처를 '홍은동'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웃 나라에 짓밟히며 살아야 했던 슬픈 이야기에 답답하고 가슴이 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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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 않은 여정으로 비록 다리는 천근만근이었지만 띄엄띄엄 있던 역사적 사실들이 하나로 이어졌다. 비록 그 모습이 바뀌기는 했을지라도 수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서울의 한 부분을 걸으며 과거를 돌아보니 감회 또한 새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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