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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미의 세상 Apr 19. 2023

정조의 원행길에는 즐거움이 가득!

시흥행궁, 만안교, XR 버스, 화성어차, 열기구(플라잉 수원)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선대 왕께서는 종통의 중요함을 위하여 나에게 효장세자를 이어받도록 명하셨다."

정조 이산은 어린 나이에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아버지 사도세자를 보며 자라야 했다. 노론의 집요한 반대에도 왕이 되었던 그는 아버지 사도세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자들에게 복수나 일삼는 폭군이 되지는 않았다. 도리어 위민정치를 펼쳤고 할아버지 영조에 이어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루는 성군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죄인의 아들'이라는 굴레를 벗기 위해 꾸준히 사도세자의 추승 사업에 힘썼다. 1789년 양주 배봉산에 있던 사도세자의 묘를 수원으로 옮기고 '융성함을 드러낸다'라는 뜻으로 '현릉원'이라 하였다.  그리고 해마다 능으로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행차하니 그 유명한 정조의 능행길이다.


 시흥행궁 전시관(시흥5동 주민센터)에 있는 정조의 원행길


능행 행렬은 창덕궁을 나와 보신각과 숭례문을 지나 한강을 건너야 한다. 당시 왕은 배를 타고 물을 건널 수 없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배다리다. 노량은 양쪽 언덕이 높고 수심이 깊은 데다 물의 흐름도 빠르지 않고 강폭도 좁아 배다리 건설지로는 최적이었다. 여러 척의 배를 가로로 엇갈린 형태로 배치한 다음 막대기로 연결하니 근사한 다리가 되었다. 이는 정조의 효심과 뱃사람들의 협조 그리고 장인정신으로 이뤄낸 합작품이다.


배다리를 살펴볼 수 있는 한강주교환어도와 시흥행궁터


남태령길을 이용하여 현릉원으로 향하던 원행길에서 정조는 우연히 우물물을 마시다가 그 물맛이  너무 좋아 우물에 벼슬을 내렸다. 그런데 바로 위에 큰 능이 있어 누구의 묘인지 물어보니 바로 아버지 사도세자를 돌아가시는데 앞장섰던 김상로와 김약로 형제의 묘였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아마 파묘를 명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조는 내가 돌아가면 된다며 택한 길이 바로 시흥이다. 물론 과천 쪽이 높고 가파르기도 했단다.


그렇게 시흥로를 닦고 세운 시흥행궁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치르면서 흔적조차 없어졌다. 그저 900 년 된 은행나무가 서있는 사거리쯤이 아닐까 하고 짐작할 뿐이다. 시흥천이 흘렀던 곳은 복개 공사 후 도로가 되었고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던 은행나무 세 그루 중  하나는 지난해 그만 벼락을 맞아 반토막이 되었다. 


은행나무 아래에는 비석이 4기가 있다. 당시 이곳은 현령이 다스리던 곳으로 임무를 마치고 돌아갈 때마다 공덕비를 세워 놓은 것이 18기가 있었는데 복개공사  등으로 묻히고 후손들이 가져가기도 해서 현재 4기만 남아있다. 


어머니를 모시고 떠나던 행복한 왕의 능행길

정조의 수원 행차는 단순히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참배하러 갔던 것만은 아니었다. 대략 6,000여 명이 8일 간이나 행차하던 행렬은 향교를 참배하고, 과거시험을 치러 인재를 등용하는가 하면,  화성 연무대에서는 대규모 군사훈련까지 실시하여 왕권의 강화와 전시효과도 노렸다.


왕 앞에서는 감히 얼굴조차 들 수 없던 시절인데 정조는 백성들이 국왕의 행렬을 자유롭게 구경하도록 하였다. 임금을 알현하는 일은 빛을 보는 것과 같다 하여 관광하러 나온 백성을 관광민인이라 하였다.

환어행렬도

상언과 격쟁

그때는 신문고라는 제도가 있었다. 그러나 백성들이 창덕궁에 있는 신문고까지 가지 않고도 억울한 일을 호소할 수 있었으니 바로 상언과 격쟁이다. 상언이란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당사자가 한문으로 문서를 작성하여 왕에게 올리던 것으로 주로 글을 쓸 수 있는 관원이나 양반과 중인이 행하던 제도이고, 격쟁이란 일반 백성들이 능행길에 꽹과리를 쳐서 억울함을 호소하던 제도다. 그 때문에 현릉원에 행차하는 원행길은 격쟁의 주요 무대가 되었다고 한다. 그 많은 호소문들을 읽으며 하룻밤 머물던 행궁터에는 현재 주민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주민센터가 들어서 있다.



만인이 행복한 다리, 만안교

안양예술공원 주차장에서 10분 정도의 거리에 한 폭의 그림과 같은 다리가 있다. 바로 정조 때 만든 것으로 능행차마다 임시로 다리를 놓는 것보다 백성들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돌다리를 놓으라는 왕명을 따른 것이다. 당시 돌로 다리를 축조한다는 것은 쉽지 않아 수원 광주 강화 개성 유수부들까지 동원되었다고 한다. 다리 위에는 큼지막한 상판이 놓이고 홍해도 만들었다. 원래 다리가 있던 자리는 좀 더 위쪽이었으나 1980년 도로 확장공사로 현재 위치로 옮겨졌다.



만안교


시흥행궁 외에도 사근참 행궁과 안양행궁이 있었으나 안양행궁이 있던 자리에는 많은 상가가 들어섰고 한 카페 옆에 그저 표지석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안양행궁 터에는 표지석만!

 

현대판 가마인 'XR 버스 1795'를 타고 수원화성으로

정조가 가마를 타고 며칠이나 걸려서 갔던 능행길은 수원시민이 아니라면 지금도 가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현대판 가마가 생겼다. 바로 'XR버스 1795' 다. 한 시간 정도 수원화성으로 가는 동안 버스 창문은 온통 스크린이 되어 정조의 능행차 및 수원화성의 건축 기술과 야간에 연무대에서 행해졌던 군사훈련(야조)에 관한 내용이 상영된다. 이 버스는 무료로 운영되는 데다 VR이라는 새로운 기술을 보여주고 있어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꽤나 흥미롭게 느껴진다.




 '터치 수원'이라는 애플리케이션을 깔고 예약하기만 하면 된다. 아직은 그렇게 홍보가 되지 않았는지 두 명이 그 큰 버스를 타고 갔는데 마치 극빈 대우를 받은 것 같다. 지하철 1호선 종각역 건너편에 있는 한국관광공사 주차장에서 매주 금요일 11시에 출발하는 편도형과 화, 수, 목, 금, 토, 일요일(11시, 1시, 3시, 5시)에 수원화성을 도는 순환형이 있다. 승하차는 연무대 공영주차장이다.


붉은 화성어차 타고 수원화성 한 바퀴!

수원화성은 진분홍 철쭉이 만개하는 요즘이 가장 아름답다. 성벽 윗길을 걸으며 수원시를 내려다보는 것도, 성벽 아래 핀 꽃들을 보며 사브작사브작 걷는 것도 좋다. 특히 성 아래에는 널찍한 공원이 형성되어 있어 큰 나무 아래에서 한가롭게 장기를 두시는 어르신들을 보면 그렇게 평화로울 수가 없다.



그럴 때면 옆으로 화성어차가 지나 가는데 괜스레 한 번쯤 타보고 싶어 진다. 게다가 보행이 불편하신 어르신의 관광코스로는 딱이다. 코스도 팔달산까지 다녀오는 관광형과 장안문과 화서문을 지나는 순환형이 있으므로 골라서 타면 된다.

행궁동 벽화도 보고 맛집과 카페를 돌며 먹방 투어

성벽 길을 걷다가  꼭 내려와야 하는 곳이 행궁동이다.  전국 어디에나 벽화마을은 많지만 또 어떤 그림들이 그려져 있을까가 궁금하기 마련이다. 게다가 다양한 맛집과 예쁜 카페들이 몰려 있는 행궁동은 데이트 코스로도 안성맞춤이다.



화성행궁에서는 혜경궁 홍 씨의 진찬연 둘러보기

행궁의 봉수당에는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 씨의 진찬연을 여는 장면을 연출해 놓았다.  평생을 울며 지냈을 홍 씨는 그날 얼마나 행복했을까?


화홍문에서는 방화수류정 바라보며 느긋하게 휴식을!

7개의 홍예문이 아름다운 화홍문에서 바라보는 방화수류정과 연못은 정말 한 폭의 그림이다. 게다가 한옥 특성상 넓게 만들어진 문을 열어놓으면 달궈진 발의 열기도 치솟던 땀방울도 금세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다. 갑자기 그 옛날 양반 규수가 된 듯하여 자세도 꼿꼿이 앉아있어야만 할 것 같다. 양 옆으로 늘어선 카페가 부럽지 않다. 



'플라잉 수원' 타고 보는 수원의 야경

해가 기웃기웃 떨어질 무렵이면 창룡문 외성 쪽으로 달려가야 한다. 시간 예약이 안 되는 것이 흠이지만 평일이면 그다지 줄을 길게 서지 않아도 된다. 처음에는 좀 비싸다는 느낌도 없지 않았지만 상공에 올라서 수원의 야경 특히 수원화성을 볼 때는 정말 잘 탔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에 단 두 곳에서만 탈 수 있다는 열기구가 수원 화성에 있다.




볼거리 즐길거리가 너무 많아 하루로는 부족한 곳이 수원화성이다. 화성을 향해가며 가슴 저릿했던 감동은 그만 꽃에 홀리고, 먹거리에 뺏기고, 열기구가 죄다 앗아가기는 했으나 노글노글해진 몸과 마음은 아주 잘 놀았다는 기쁨으로 충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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