튤립 축제, 꽃지 해수욕장, 안면암, 안면도 수목원, 신두리 해안사구
솔직히 그렇게 큰 기대감은 없었다. 벚꽃 개나리 진달래에 이어 철쭉꽃까지 이미 봄꽃을 실컷 본 데다 여태껏 꽃이 피어있으리라고는 기대도 안 했다. 그저 연휴였고 갈 만한 곳을 찾다가 오랜만에 서해 바다도 보고 신두리의 모래밭도 보고 싶어 찾은 곳은 태안의 안면도다.
섬에 가까워질수록 많은 차량과 인파로 가다 서기를 반복하다 도착한 코리안 플라워 파크! 우와아~~~ 그저 입이 딱 벌어졌다. 다른 공원에서도 튤립을 많이 봐왔지만 이토록 많이 핀 것은 처음이다. 게다가 찬 바닷바람 때문인지 늦게 심었는지 아직도 꽃이 싱싱했다. 강아지 출입이 가능한 행사장에는 우리 집 달콩이뿐만 아니라 많은 강아지들이 있었고 나와 그 녀석은 꽃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도대체 몇 송이나 심어 놓은 거야?
서산 개심사에서야 볼 수 있던 왕벚꽃 나무도 탐스럽게 꽃을 피운 채 튤립 둘레를 장식하고 있다. 내년을 기약했다가 벚꽃을 다시 본 사람들은 너무 기쁜 나머지 "겹벚꽃이야" "아니야 왕벚꽃이야" 하며 입씨름을 하고 있다. 화창한 날씨 때문에 또 예쁜 꽃 때문에 사람들은 온갖 시름을 잊은 채 입꼬리를 잔뜩 올리며 행복해한다.
안면도에 가면 빠지지 않고 들르는 곳이 안면도 자연휴양림이다. 100년도 더 되었다는 송림 속을 거닐다 보면 몸과 마음이 청결해지는 것 같다. 이곳도 몇 년 새 많이 변했다. 수목원으로 가는 길에는 보행약자를 위한 통로가 생겼고, 반대편 숲 속의 집이 있던 곳에는 키 큰 소나무들을 잘 보기 위해서인지 스카이워크가 생겼다. 입구에 있던 숙소는 아마 저 멀리 뒤 편 어딘가로 옮겨졌나 보다.
솔향을 느끼며 안으로 안으로 들어가자 웅장하고 우아한 소나무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휘영청 굽은 소나무를 보면 왜 이렇게 편안하고 기분이 좋아지는 걸까?
아주 잘 가꿔진 수목원에는 봄꽃이 가득하다. 연꽃 빼고는 대부분의 꽃이 활짝 피었다. 철쭉꽃이 화려한 동산 앞에서 인증숏도 찍고 귀여운 동물 모양으로 다듬어진 관상수를 보며 걷다 보면 현대 정주영 회장의 호를 딴 아산원이다. 조선시대 별서정원 양식이란다. 기분이 좋아지는 우리의 한옥과 정자 그리고 잉어가 놀고 있는 아담한 호수! 한적한 정원 벤치에 앉아 번잡한 마음 잠시 내려놓는다. 햇살 받은 꽃들이 싱그럽다.
절하면 흔히 깊은 산중에 있는 고요한 사찰을 떠올리게 되지만 바닷물이 넘실대는 바닷가의 사찰도 꽤나 멋스럽다. 부산의 해동 용궁사를 비롯하여 양양의 낙산사와 함께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안면도의 안면암으로 금산사의 말사다. 몇 년 전, 앞바다의 두 개의 여우섬 사이에 세워진 부상탑은 새로운 볼거리다.
여우섬으로 가는 바닷길에는 바닷물에 흔들리는 나무다리가 있다. 이 다리를 건너는 재미가 있었는데 위험해서인지 '출입금지' 팻말이 세워져 있다. 다행(?) 히 썰물이라 부상탑까지는 다녀올 수 있었지만 물 위에 떠있는 부상탑은 볼 수가 없었다.
할매 할아비 바위 사이로 지는 해를 담기 위해 무던히도 왔던 곳이 바로 꽃지 해수욕장이다. 서울은 벌써 여름이 오나 싶을 정도로 더운데 이곳은 아직 꽤나 쌀쌀하다. 비록 멋진 일몰을 보지는 못했지만 마냥 해가 떨어지기를 기다리며 발을 동동거리며 떨었던 옛 시간들이 선물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바다 풍경을 보던 사람들은 어느샌가 모두 돌아가고 해변에는 우리뿐이다. 힘차게 밀려오는 바닷물에 옷을 적실까 발걸음을 재촉해 돌아왔다.
아침 햇살에 눈을 떠보니 창밖에는 아침 안개와 이슬로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화려한 꽃과 다른 아름다움이다. 그저 이슬을 따라 걷다 보니 바닷가다. 코끝으로 스며드는 바닷바람에 비릿한 바다 내음이 섞여있다.
"이곳이 영화에 나온 안흥성인가?"
"아, 영화에 나온 성은 안시성이지" 깨갱! 괜히 아는 척을 했다가 구박만 받는다. 조선 효종 때 축성되었다는 안흥성은 왜구와 해적의 침략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는데 동학혁명 등으로 대부분 소실되고 현재는 성곽과 성문만 남아 있다.
성곽을 따라 올라가 보면 수덕사의 말사인 태국사가 있다. 전에는 꽤나 위풍당당한 절이었을 것 같다. 이곳에 오면 바다풍경이 일품이다. 바로 아래에는 골프장이 있고 작은 섬들이 이어져 있는 오션뷰는 최고다. 노을이 질 때면 더 멋지지 않을까?
사막의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을 때 찾는 곳이 신두리 해안 사구다. 처음 사진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모래 안을 마구 누비며 사진을 찍었는데 점차 소실되어 가는 모래 때문인지 이제는 펜스가 쳐져 멀리 서나 볼 수 있다.
바람이 어지간히도 센가 보다. 올 때마다 그 모양이 다르다. 더군다나 모래 양도 부쩍 줄어든 것 같아 아쉽기 짝이 없다. 대신 풀이 많이 자라났다.
힐링이 필요할 때면 자주 찾는 안면도. 화려한 튤립을 한가득 가슴에 담고 돌아왔다. 가까운 것 같으면서도 은근히 먼 안면도에 올해도 도장을 찍었다. 또 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