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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미의 세상 Jun 08. 2023

6월에는 북녘땅이 보이는 연천으로!

백학마을, 상승전망대, 경순왕릉, 호로고루, 재인폭포

얼마 전 아침부터 사이렌이 요란하게  울렸다.  '어디서 불이 났나?' 아파트 주위를 살피다 TV를 켜보니 북한에서 탄도미사일을 남쪽으로 쏘았다고 한다. 불안감이 몰려왔다. 맞아! 우리나라는 아직도 휴전 상태지. 실제로 전쟁을 경험하지 못했고 정전된 지 70 년이나 되어 그 사실을 종종 잊고 산다.


처음 땅굴이 발견되던 날의 놀라움! 그리고 연이어 발견되던 땅굴을 보고 우리는 얼마나 경악했던가? 그런데 요즘에는 또 잊을만하면 신무기를 뻥뻥 쏘아댄다. 남북한이 손잡고 으쌰으쌰 하면 세계 그 누구도 쉽게 넘보지 못할 대국이 될 수도 있을 터인데 말이다.


국가 보훈의 달을 맞아 우리나라의 최북단 도시 연천을 찾았다. 연천은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데다 임진강이 흐르고 잘 발달된 주상절리와 멋진 재인폭포까지 있으니 호젓하게 여행하기 딱 좋다


호국영웅정신 계승 마을 1호로 지정된 백학마을의 역사박물관

신기하게도 연천군 백학면의 지도를 보면 마치 우리나라의 지도를 축소해 놓은 듯하다. 우리나라 전체의 모습처럼 휴전선과 남북방한계선이 지나며 반토막이 난 것도 똑같다.  주변 조형물과 함께 군용차가 다니는 것을 보니 이곳이 최전방임을 다시 상기하게 된다.


마을 사람들이 조성했다는 역사박물관은 크고 멋지지는 않았지만 주민들이 직접 수집한 자료와 유물에 전쟁의 상흔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6.25 전쟁, 항일만세운동 당시의 유물이 전시 되어 있다    


녹슨 수통 포탄 곡괭이 날 등 주민들이 직접 수집한 유물들


그런데 한국전쟁 때 군인만 싸운 것이 아니었다. 뒤에서 그들을 도운 숨은 영웅이 있었으니 바로 민간인으로 구성된 지게부대(지게 모양이 알파벳 A를 닮아 A특공대라 했다)와 레클리스라는 말이다. 산지가 많은 우리나라는 진입이 어려운 지역이 많다.  군수물자와 탄약 포탄 등을 가져다주고 부상자 및 사망자의 후송을 맡은 것이 바로 지게부대와 레클리스라는 말이었다. 레클리스는 전쟁이 끝나고 미국으로 돌아간 뒤 하사 계급까지 받았다고 한다. 이는 최초로 사람이 아닌 존재가 받아 미국 100대 영웅에 선정되었다고 한다.



레클리스라는 카페는 7개 나라에서 이민온 외국인들이 운영하고 있다.


북쪽을 관측하기 위한 최전방 관측소로  열쇠전망대 태풍전망대 등이 있는데 백학면에 있는 상승전망대를 찾았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니 연천 평야는 오랫동안 버려져 잡초만 무성했다.  그곳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것은 고라니와 새 같은 동물뿐이다. 그리고 겹겹의 철책선들.


상승전망대에서 보이는 제1땅굴

제1 땅굴이 발견된 비무장지대를 내려다볼 수 있도록 관광객들에게 개방한 곳이 상승전망대다. 물론 사전 신고를 하고 나서야 방문이 가능하고 군사지역이므로 사진 한 장도 찍을 수도 없어 그저 눈과 가슴에만  담아와야 한다. 저 멀리 푸르게 보이는 언덕배기가 북한이라고 한다. 굳이 망원경으로 보지 않아도 민둥산의 모습이 삭막하게 보인다. 같은 민족끼리 선 세 개 그어놓고 이렇게 오랫동안 오가지 못하고 있다. 언제쯤 자유롭게 다니며 옛날이야기 처럼 할 수 있으려나!


사진 속에 누렇게 보이는 언덕 사이에 제일 먼저 발견한 땅굴이 있다. 바로 코 앞이다. 제멋대로 자라는 풀 때문에 서로가 보이지 않을까 가끔 불을 낸다는 말에 씁쓸해진다. 몇 년 전에는 금강산도 가고  대통령도 바뀌며 금세 남북을 오갈 수 있을 것만 같더니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직접 사진을 찍을 수는 없고 마을 박물관에 비치된 비무장지대와 제1 땅굴 모형


철조망에 돌을 끼워놓고 그곳을 순찰하던 군인들이 그 돌을 꼼꼼하게 살피던 영상을 보곤 했는데 그 넓은 철조망을 지키는 사람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관람객 중 누군가 "요새는 CCTV가 지키죠" 그럴까? 아마 군대도 어느 정도 자동화가 되었나 보다.


휴전선은 똑바르게 직선으로 되어 있지 않다. 전쟁 때 땅따먹기라도 하듯 조금이라도 더 차지하려고 수많은 전투가 있었을 것이다. 그 때문에 현충원에 잠든 사람도 있다고 생각하니 우리가 향유하고 있는 이 자유와 이 땅이 얼마나 소중하게 느껴지는지 모른다.



전망대 앞에 설치된 커다란 비석에는 '5.5.5'라는 숫자가 쓰여있다. 5명의 북한군을 잡고 5번째 남침 갱도를 발견하고 5명의 북한 군인을 귀순시키자는 의미라고 한다. 마치 감전이라도 된 듯 짜릿했다. 이곳은 실제 최전방이었다. 그런데 왜 5일까?


신라의 마지막 왕이 잠들어 있는 경순왕릉

후백제, 고려, 신라로 분열된 혼란의 시기에 왕위에 오른 경순왕은 점차 기울어져가는 나라를 위해 고군분투하다가 결국은 고려 왕건에게 스스로 나라를 물려주었다. 경순왕은 왕건의 딸 낙랑공주를 아내로 맞아 살았으나 숨을 거두고는 고향인 경주로 돌아가지 못하고 머나먼 고랑포 북쪽 언덕에 묻히게 된 것이다

 


불운의 시기에 왕위에 오른 신라 경순왕의 능은 소박하기 그지없는 데다 찾는 이도 별로 없어 쓸쓸해 보였다.


고구려의 남쪽 전략적 요충지였던 호로고루 성

'호로하로 부르던 임진강에 있는 오래된 보루'라는 뜻으로 '호로고루 '라 명명된 성이 있다. 임진강 북안의 현무암 절벽 위에 세워져 신라와 백제로부터의 공격을 방어하던 고구려 성이다. 호로고루 부근은 여울목이기 때문에 배를 타지 않아도 개성에서 한성으로 가는 가장 짧은 거리의 군사적 요충지라 삼국의 대립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전략적 입지를 차지했었다.   성의 둘레가 401 미터로 남쪽과 북쪽은 현무암 절벽을 성벽으로 하고 평야로 이어지는 동쪽에만 너비 40 미터 높이 10 미터 길이 90 미터 정도의 성벽을 쌓았다.


고구려에 의해 처음 만들어진 호로고루 성은 나당전쟁에서 신라가 승리하자 오랜 전쟁으로 부서진 성벽의 곳곳을 보수해야 했다. 보수 과정에서 성벽을 덧붙여 쌓는 방식으로 재건된 성은 고구려 성벽의 모습을 확인할 수 없이 내려오다가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 포대가 설치되며 성벽이 훼손되자 고구려의 성벽 일부가 외부로 노출되며 고구려와 신라의 성벽을 모두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임진강과 푸른 초원이 있어 호젓한 호로고루 성의 하이라이트는  드라마' VIP'가 촬영되었던 하늘 계단이다. 계단 위로 보이는 것이 없어 계단을 오를 때는 마치 하늘로 오르는 듯하다. 계단에서 멋진 포즈를 취하면 인생 샷을 담을 수 있다. 초록 이불을 깔아놓은 듯한 넓은 초원은 어찌나 포근해 보이는지 아이처럼 마냥 굴러보고 싶다.




망향단은 임진강의 주상절리가 잘 보이는 곳에 있다.  실향민들이 갈 수 없는 북쪽 고향을 그리며 조상님들께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고려왕과 충신을 모신 숭의전지

조선시대에 종묘가 있다면 고려시대에는 숭의전지가 있다. 한국전쟁 때 전소하여 1971년에 재건한 것이고 나머지 대부분의 고려 유적지는 개성에 있다고 한다. 숭의전지는 태조 왕건의 원찰이었던 앙암사가 있던 곳으로 1397년 고려 태조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이다. 처음에는 위패도 8분을 모셨으나 세종대왕이 4분으로 줄이라고 해서 4분만 모시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 지질공원에 등재된 한탄강

주상절리는 주로 바닷가에서 볼 수 있는데 한탄강과 임진강에는 매우 드물게 강 주변에 현무암의 주상절리가 잘 발달되어 있다. 강가에 병풍을 펼쳐 놓은 듯 높이 20여 미터의 주상절리가 강을 따라서 만들어졌다. 기묘한 형상과 몽돌 강변으로 유유히 흐르는 한탄강의 모습이 조화롭다. 이외에도 차탄천 주상절리, 백의리 층, 온대리 판상절리 등 연천 곳곳에서 화산활동의 흔적이 있어 지질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재인폭포

북쪽 지장봉에서 흘러 내려온 물이 현무암 주상절리를 따라 20여 미터 아래로 떨어지는 신비한 재인폭포는 연천군에서 손꼽히는 명소다. 주위에는 폭포의 관람을 위해 데크가 잘 놓여있으니 가까이까지 내려갈 수 있다. 주변의 울창한 숲과 자연이 만들어 낸 주상절리의 모습이 한 폭의 병풍이다.


한탄강의 하늘다리를 기준으로 주상절리를 관찰하며 힐링할 수 있는 둘레길(구라이길 가마소길 등) 또한 잘 형성되어 있어 도보여행자들이 많이 찾고 있다. 재인 폭포부터 한탄강 하늘다리까지는 그리 멀지 않아 산책 삼아 걸어도 좋고 주차장이 따로 마련되어 있으니 차로 이동해도 된다.  하늘다리에 오르면 자연이 만들어 낸 걸작품인 주상절리가 한눈에 들어오니 놓치지 말아야 한다.





마을 좌측에 우뚝 선 봉우리는 좌상 바위

전곡읍 궁평리 한탄강 물이 소용돌이치며 흐르는 지점에 60여 미터의 압도적인 크기로 서있는 바위를 궁평리 마을 좌측에 있다 하여 좌상 바위라 한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구석기 유적지 중 가장 오래된 연천 전곡리 유적지

1977년 그렉 보웬이라는 공군 상병이 우연히 발견한 돌을 조사하다 보니 약 30만 년 전의 아슐리안형 주먹도끼인 것을 알아냈다.  그 후 전곡리 일대의 발굴작업으로 4,000여 점이 넘는 유물이 발굴되었고 세계 구석기 역사를 다시 쓰게 했다고 한다. 

인류 진화의 모습부터 전곡의 지층, 선사시대의 문화등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다. 곧 더워질 여름에 시원한 에어컨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실내여행지로 특히 아이들이 좋아할 것 같다.



유적공원의 산책로에는 구석기시대를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전시관과 조형물이 있다. 걷다 보면 마치 타임머쉰을 타고 선사시대로 간 것 같은 착각도 든다.




연천에 이렇게 볼거리가 많은 줄 몰랐다. 상승전망대 등이 있어 안보교육지로, 세계지질공원인 한탄강과 재인폭포가 있어 자연관광지로, 게다가 남쪽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고려시대의 유적지에 구석기 유적지까지 있다. 당일로 전부 보고 오기는 어려울 것 같으니  캠핑 장비까지 준비해 가서 한적하게 한탄강에서 추억도 쌓고 오면 좋겠다. 이제 곧 더운 여름이다. 

바로 지금이 여행하기 딱 좋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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