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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미의 세상 Dec 29. 2023

이 남자와 살아온 지 어느새 38년!

사람으로 태어나 만나는 수많은 인연 중 부부의 인연보다 더 큰 게 있을까? 그렇다면 어떤 사람과 만나는 게

좋을까? 우리 부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여보, 공인인증서 기간이 만료되었다는데"

나보고 연장해 달라는 이야기다. 도대체 왜 저런 간단한 것조차 혼자서 못하는 건지. 인터넷으로 뭔가를 하거나 홈쇼핑 또는 은행 일을 할 때면 늘 저렇게 나를 부르곤 한다. 결혼 초부터 은행일 등은 내가 도맡아 오긴 했지만 이제는 스스로 할 때가 되었는데 말이다. 하긴 나는 기계만 보면 무섭긴 하다. 사용 설명서를 아무리 읽어도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건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새롭게 전자제품이나 조립용 가구를 사 오면 난감해서 남편을 부른다.


매사에 덜렁대며 일을 저지르는 나에 비해 그는 정말로 꼼꼼하다. 설거지하는 것 하나만 봐도 차이가 난다. 나는 대충 닦아 마구잡이로 선반에 올려놓지만 그는 개수대부터 닦고 설거지를 끝내고는 나 보란 듯이 그릇도 크기 별로 싹 정리해 놓는다. 물론 그렇게 설거지를 해주는 일은 1년에 한두 번 밖에 없지만 정리된 그릇들을 보면 공연히 찔리기는 한다.


난 요즘 건망증이 너무 심해 자꾸 뭔가를 잃어버리고 또 잊는다. 정기적으로 내는 공과금이 아니면 연체료 내는 게 다반사요,  휴대폰이나 카드를 찾다가 하루가 다 가곤 한다. 할 수 없이 휴대폰은 목에 걸고 카드도 휴대폰 뒤에 넣고 다니지만 올해만 해도 그 카드를 두 번이나 재발급했다.

"제발 카드 쓰고 나면 한 자리에 넣어"

"급하니까 그렇지."

남편 성격 상 절대로 나를 이해하지는 못할 게다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 나는 그렇게 남자 물건이 사고 싶었다. 넥타이라던가 지갑이나 셔츠를 보면 남자친구가 생기기만 하면 내가 다 사주려고 했다. 그런데 막상 연예시절부터 내가 뭔가를 사주면 늘 탐탁해하질 않아 하는 것이다. 화려한 스타일을 좋아하는 나와 달리 그는 우중충하고 심플한 디자인을 좋아한다. 몇 번 반품한 뒤로는 각자의 물건은 각자가 사기로 했다. 쇼핑을 가도 우리는 따로 돌아다닌다. 그리고 상대의 물건을 살 때는 일체 간섭을 하질 않는다.  

 
음식도 그렇다. 친정집은 대체로 음식이 달달하고 고기를 많이 넣어 먹는 편이지만 시댁의 음식은 담백 그 자체다. 그러니 녹두전을 부쳐도 우리는 고사리와 고기를 넣지만 시댁에서는 그저 녹두와 김치만 넣는다. 나는  맹맹하고 아무 맛도 없는데 시댁 식구들은 너무 맛있어한다. 생선도 오로지 고등어만 좋아하고 굴이나 게 등은 전혀 먹지를 않는다. 


결혼 후 설날 처음 시댁에 갔을 때는 정말 대략 난감이었다. 도대체 고기도 넣지 않은 김치만두만 잔뜩 만들어 놓고는 3일 내내 그것만 먹는 것이다. 게다가 터진 만두는 며느리들 몫이었다. 오죽하면 떡만 넣어 먹겠다고 했을까? 요즘도 가끔 김치만두를 만들기는 하지만 내가 좋아해서가 아니라 남편이 워낙 좋아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가장 싫은 것은 남편이 아주 짠지라는 거다. 사람들은 나보고 돈도 많으면서 유명 메이커 옷 하나 없냐고 한다. 우리 부부가 돈이 없는 것은 절대 아니다. 평생 맞벌이를 해왔으니 쓸 만큼의 돈은 있다. 그러나 돈쓰기를 싫어하는 남편과 살다 보면 이렇게 변할 수밖에 없다.

아이들과 함께 중국집에 가기라도 하면 남편은 제일 먼저 "난 짜장면!"하고 외친다. 나는 할 수 없이 "나도 짜장면" 하지만 아빠를 너무나 잘 아는 우리 아이들은 "난 탕수육에 잡탕밥이요"라고 주문을 한다. 그렇다고 남편이 먹는 것에 관심이 없는 것은 절대 아니다. 남편의 식탐은 정말 끝내준다.


하루는 낙지볶음이 먹고 싶어 멀리까지 찾아갔다.  2인 분이 나왔는데 음식이 나오자 그는 반 이상을 쓸어가는 것이다. 나는 매워서 건더기만 몇 개 집어먹고 있는데 내가 먹을세라 나머지 건더기마저 죄다 쓸어갔다. 그때는 정말 그렇게 밉고 섭섭할 수가 없었다. 이런 사람과 식사를 해보지 않은 사람은 내 심정을 절대로 이해할 수가 없다.


지난 10월로 우리는 결혼한 지 38 년 이 되었다. 언제 이렇게 많은 시간이 지났는지. 만사에 맞는 것 하나 없는 것 같은 우리 부부를 보고 남들은 천생연분이란다. 남보기에 좋아 보인다니 다행이긴 하다.  하긴 이런 몇몇 가지를 빼고는 그 사람은 성실하고 가정적인 데다 허튼 짓은 절대 하지 않으니 고맙기는 하다.

그러나 사소한 성격 차이로 매번 부딪치는 내 심정은 그 누구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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