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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미의 세상 Feb 06. 2024

겨울 여행은 뭐니 뭐니 해도 설경이 최고!

가리왕산 케이블카, 민둥산, 하조대, 산천어 축제

봄이 오기 전에 눈 구경도 하고 거친 파도 앞에 마냥 서있고 싶었다. 지난가을 민둥산 정상에 가득 핀 억새를 보기 위해 많은 사람이 찾았다는 뉴스를 보고 또 강원도에 폭설이 내렸다는 소식을 들을 때부터 내 눈앞에는 상암동 하늘 공원에서 황금빛으로 빛나던 억새와 덕유산 정상에 외로이 서있던 나목 그리고 햇볕에 반짝이는 상고대까지 떠올랐다. 그리고는 눈이 녹을세라 하루하루 조급하게 보냈다.

  

부실한 하체 덕에 산에 오르는 것이 쉽지 않지만 요즘 같은 비수기에는 민둥산 아래 발구덕마을까지 자동차로 갈 수 있으니 산행 시간도 반으로 줄어든다. 지난해 폭설이 내리던 날 선자령에 갔다가 레커차까지 불러야 했던 기억이 나서 살짝 망설인 것도 사실이다. 이렇게 하루이틀 미루다 지난주에야 겨우 다녀왔다.


발구덕마을이 가까워지자 산길은 꽤나 미끄러웠다. 눈만 쌓여있으면 괜찮은데 녹다 얼기를 반복하여 완전히 빙판이다.  그렇게 여행을 꿈꿨으면서도 체인 등 월동준비를 제대로 해 오지 않은 우리는 그저 핸들만 꽉 움켜잡고  엔진브레이크만으로 가야 했다. 아차 잘못했다가는 저 아래 밭으로 굴러 떨어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앞서 가던 차가 갑자기 술에 취한 듯 이리저리 흔들리더니 이내 구석에 처박혀 버리는 것이 아닌가! 남편은 그들이 엔진브레이크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면서 여유를 보였지만 넓은 공터가 나오자마자 얼른 차를 주차시키고는 우리는 안전하게 두 발로 오르기 시작했다.  


상상했던 것만큼 많은 눈은 없었지만 해가 들지 않는 곳에 남아있는 눈이라도 볼 수 있어 좋았다. 정상은 바로 눈앞. 임도인지 자동차도 지나갈 수 있을 만큼 넓은 길에는 지난 주말에 많은 사람들이 찾았는지 무수히 많은 발자국이 나있다. 어릴 때 비 오는 날 일부러 또랑으로 찰박거리며 걷던 생각이 나 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로만 터벅터벅 걸었다.

 

뒤 따라오는 우리 강아지, 푹푹 빠지는 눈길이 힘들고 낯선지 자꾸만 다리에 매달리며 안아달라고 보챈다.

"콩아, 미안하지만 내 코가 석자라 5 킬로그램이나 나가는 너를 안고 올라갈 수는 없단다."

집 앞을 산책할 때 눈이 내리기라도 하면 껑충껑충 뛰던 녀석은 이렇게 쌓인 눈에 다리가 푹푹 빠지는 것은 힘이 드나 보다.


하늘을 찌를 듯 울창한 잣나무 군락지를 지나 정상에 오르도록 다른 등산객은 없었다. 따사로운 햇살과 맑은 공기 그리고 고요함 속에 발을 옮길 때마다 뽀드득거리는 발자국 소리만 들렸다. 혼자라면 무서웠을 수도 있지만 뒤에는 든든한 남편과 귀여운 강아지가 따라오고 있으니.


잣나무와 달리 잡목들은 낙엽을 다 떨구고 앙상한 가지만을 남긴 채 이 겨울을 보내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다. 눈이라도 소복하게 내려 감싸주면 좋으련만.  무심코 고개를 드니 건너편에 또 다른 산이 따라오고 있다.  힘차게 뻗은 산등성이 아래 눈이 쌓인 모습은 한 폭의 산수화였다. 와아~


남편은 쓸데없이 멀리 돌아가는 완경사 길을 타박했지만, 미끄러운 언덕길을 힘들게 오르는 것보다 널찍한 길에서 설산의 장엄함도 맛보는 이 길이 얼마나 좋은가!  잠깐 오르면  지난가을 그리도 아름다웠을 억새밭과 정상 표지석이 있다. 생각했던 것보다는 억새의 양도 적고 눈도 다 녹아버려 다소 실망하긴 했지만 힘들지 않은 짧은 산행으로 이토록 멋진 풍경을 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다음 가을에 찾아온다면 아마도 이 설경이 떠오를 게다.  민둥산이라더니 정말 주변에는 억새 외에는 나무가 거의 없다.




날씨가 포근하다고 생각했지만 겨울은 겨울이다. 잠시 후 커피 한 잔 마시며 앉아서 쉬다 보니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서둘러 아이젠을 장착하고는 이번에는 급경사로 내려갔다. 강아지 혼자 내려가다 미끄러질세라 안아보니 세상에 우리 콩이의 네 발에 얼음덩어리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것이다. 미안하기도 해라, 얼마나 발이 시렸을까? 놀란 남편은 그 미끄러운 비탈길을 강아지를 안고 내려가야 했다.


 

민둥산에는 돌리네 (doline)라는 것이 있다. 작은 연못처럼 보이는 것은 석회암 지대에 나타나는 카르스트 지형이다. 석회암 내 탄산칼슘이 빗물에 용해되어 나타난다고 한다.

추운 겨울, 나 같은 등린이에게는 이런 코스가 딱이다.  어느새 오후로 접어들고 있는데 몇 명의 등산객과 캠핑객이 급경사 길로 올라오고 있다. 잠깐 멈춰도 추운데 그들의 등에는 많은 짐이 들려 있다. 아마도 하룻밤을 보내고 가려나 보다. 내가 저 나이 때라면 한 번쯤 시도를 해 봤을까?


가리왕산 정상은 케이블카로! 

청옥산 중왕산들이 이어져 있는 태백산맥의 중앙에 해발 1,500 미터가 넘는 가리왕산이 있다. 평창 올림픽 때 알파인 스키장으로 사용되던 곳으로 지금은 케이블카가 남아있다. 자세한 이유는 모르겠으나 곧 철거될지도 모른다고 한다.



정상뷰야 말해 무엇하랴! 청명한 날씨 덕분에 주변 산들이 선명하게 보이고 나무 아래로 구름이 두둥실 떠다니고 있다.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데크 아래로 산책길을 만들어 놓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상고대를 좀 더 가까이에서 보지 못해 아쉬웠다.



케이블에 탑승해 정상에서 설산을 만끽한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처음으로  남편이 경로우대증으로 혜택을 받은 것이다. 내 것은 네이버로 예약하여 1,000 원 할인받았으나 남편은 경로우대로 50%나 혜택을 보았다. 게다가 1인당 5,000원씩 정선사랑 상품권까지 주니 출출하던 차에 호떡과 어묵까지 사 먹었었다.  보행약자도 쉽게 갈 수 있는 케이블카 타고 가는 가리왕산 코스는 특히 나이 든 사람들이 한 번쯤 다녀오면 좋겠다.


겨울 바다는 역시 동해바다!

여름 바다도 좋지만 난 겨울바다가 더 좋다. 살을 에일듯한 추운 겨울 매서운 바닷바람이 가슴으로 훅 들어오며 끝없이 파도가 밀려올 때의 짜릿함 때문이다.

추운 날씨에 주변 암벽에는 멋진 얼음조각이 생겼다


 

겨울 바다에 가는 것은 바로 나를 만나러 가는 것이다

      고독을 만나러 가는 것이고 자유를 느끼기 위해 가는 것이다

               시린 바닷바람 가슴 가득히 마셔 나를 씻어내고 싶어 가는 것이다.

                                                                                                                       -  양병우 -      


하조대 둘레길을 걸어보고 싶었으나 높은 파도 때문에 전망대만 다녀왔다.


하조대는 고려말에 조선의 개국공신이었던 하륜과 조준이 머물렀던 곳으로, 그 후 정자를 짓고 두 분의 성을 따서 하조대라고 한다.


바위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가 있어 주변 경관이 빛이 난다


달은 어느 쪽에서 뜰까? 해가 동쪽에서 뜬다는 것은 알았지만 늘 한 밤중 건물 옆에 무심히 떠있는 달을 보면서 어느 쪽에서 떴는지는 몰랐다. 그것도 수평선 바로 위로 떠오르는 모습은 처음이다.



화천 산천어 축제장

요즘 강원도에서는 각종 겨울 축제가 열리고 있다. 얼음 조각과 눈썰매장을 겸비한 곳부터 얼음낚시라는 콘셉트를 도입해 열리는 화천 산천어 축제장까지 있다. 그중 화천 산천어축제장을 택한 것은 늘 낚시에 관심이 많은 남편이 가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제주도 배낚시 때 특출한 솜씨를 보였던 남편은 빙상낚시에도 큰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아무런 장비 없이 떠났기에 낚시에 참여할 수는 없었다.


화천 산천어 축제장은 이 번이 두 번째다. 10여 년 전 처음 사진을 찍기 시작했을 때 찾았는데 그때와 달리 축제장 주변을 도는 미니 셔틀버스가 다닐 정도로 행사장(2 킬로미터)도 넓어지고 눈썰매장 등 즐길거리도 새롭게 생겼다.


갈 곳 없는 겨울, 가족나들이 하기에 안성맞춤일 듯하다. 날씨도 포근한 화천천 축제장에는 눈도 보이고 얼음에 앉아 낚시를 할 정도로 강가도 얼어있다. 찾는 사람이 별로 없던 소도시에 축제로 인해 올해 찾은 사람이 15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중 눈길을 끄는 곳이 산천어 맨손잡기장이다. 한 겨울에 빨간 반팔 상하의를 입은 관광객들은 그저 물고기를 맨손으로 잡겠다는 일념하에 가볍게 몸을 푼 후 바로 얼음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맨손 잡기의 즐거움에 빠져있는 그들도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도 박수를 치며 즐거워했다.


그러다 억지로 태어나(?) 그저 살겠다는 일념하에 사람들의 손을 피해 다니는 녀석들을 생각하니 갑자기 물고기가 측은해졌다.  게다가 그들은 바로 옆에서 구이로 또 회로 변하고 있었다. 물론 우리 밥상에 올라오는 수많은 고기와 생선들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일지 모르지만 산 생명을 우리의 놀잇감으로 삼은 것 같아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며 행사장을 떠났다.



추위 때문에 집에만 갇혀 있다가 콧바람도 쏘이고 멋진 경치도 보고 나니 기분이 훨씬 좋아졌다.  요즘  영상일 때도 있지만 아직은 옷깃으로 스며드는 바람이 꽤나 차다.  이렇게 힘들지 않게 다녀오는 여행으로 생활에 활기를 불어넣으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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