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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미의 세상 Nov 10. 2023

가을비 내리는 늦가을의 국립수목원

국립수목원, 광릉, 포천 갈만한 곳

가을비가 오락가락하던 날 국립 수목원을 찾았다. 수목원까지 길게 이어진 진입로는 어찌나 나무가 울창한지 하늘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다. 바람이 불 때마다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과 살포시 내리는 비가 만들어 내는 풍경은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가슴 속까지 촉촉하다. 


올해는 날씨가 춥지 않아 단풍이 예쁘지 않더니 벌써 떨어져 버렸다.  길은 온통 낙엽투성이다.  


"낙엽 빛깔은 정답고 모양은 쓸쓸하다.

 낙엽은 버림받고 땅 위에 흩어져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한참을 낙엽 발치 기를 하며 걷다 보니 개울이다. 


오늘의 숲 해설은 독특했다. 메타세쿼이어 한 그루가 한 방향으로 가지를 뻗은 것을 보고는 옆에 있는 나무를 배려했다고 하질 않나, 개울가로 길게 늘어진 가지를 보고는 물고기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란다. 물론 숲에 사는 식물들이 어느 정도는 공생의 개념도 있겠지만 햇볕을 더 받기 위해 다른 가지가 없는 방향으로 나래를 펼친 것 아닌가? 공연히 어깃장을 놓아본다. 하긴 그 덕분에  나무의 열매나 벌레들이 하천으로 떨어져 물고기의 밥이 될 수도 있겠다. 꿈보다 해몽이라더니 그분의 설명을 들으며 삐딱한 나 자신을 돌아본다.


색을 잃은 둥그런 수국, 잎새를 다 떨궈버린 나뭇가지 등 녹색에서 황금빛으로 변해가는 숲이 평온해 보인다.  경치도 경치려니와 더욱 좋았던 것은 숲의 향이다. 가슴속으로 스며드는 자연의 향에 기분이 상쾌하다.



광릉 숲은 조선시대부터 나라에 사용할 큰 나무들을 생산하고 왕실 사람들의 사냥 및 활쏘기기 이뤄지다가  1922년에는 임업시험장으로 사용되었고 요즘은 시민들의 힐링의 장소가 되고 있는 곳이다. 약을 전혀 주지 않는 천연 숲에는 천여 종이 넘는 식물이 자라고 있어 유네스코에서 생물권보존지역으로도 지정되었다. 


해설사는 이 수목원에는 1년에 딱 네 번 비가 온단다. 꽃 비, 애벌레 비, 도토리 비, 단풍 비.  다른 것은 상상이 되지만 애벌레 비라니! 봄이면 애벌레가 새 등에게 잡아먹힐세라 거미줄 같은 것을 만들어 타고 내려온단다. 좀 징그럽긴 하겠지만 그때 방문해 보면 어떨까?

오른쪽에 있는 뭉뚱한 것이 왼쪽에 있는 낙우송의 공기 뿌리요, 깃털처럼 생긴 것이 잎새다. 물 속에서 주로 자라는 낙우송은 물가가 아니라도 공기 뿌리를 낸다고 한다.


숲을 가다 보면 가끔 따다다닥 하며 딱따구리가 구멍을 파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이 나무에는 2개의 구멍이 뚫려 있다. 이는 유사시 피신 장소로 쓰기 위함이란다. 또 어떤 때는 나무속이 텅 비어 있는데  나뭇가지가 풍성한 나무를 보게 되는데  이는 나무 끝의 짙은 부분만 살아 있으면 나무가 크는 데 문제가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산책길에 신기한 나무 이야기를 듣는 것도 즐겁다.



오른쪽 돌탑이 겨울에는 벌레들이 겨울잠을 장소가 된단다.



한국전쟁 후 우리의 산은 완전히 초토화되었다. 그 후 지금의 푸르름을 이루는데 앞장선 인물들을 소개하는 곳이 숲의 명예전당이다. 박정희 대통령을 비롯하여 천리포 수목원을 만든 민병갈 씨 등의 조각상이 있다. 그분들이 없었다면 아직도 벌거숭이 산을 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수목원에는 '기를 육에 수풀 림'자를 써서 육림호라는 호수가 있다. 호수 안에는 이미 꽃이 져버린 연이 가득하다.  카페에서 차도 한 잔 즐기고 물길 따라 한 바퀴 돌다 보면 수변풍경에 금세 매료되고 만다.




무엇보다 가장 좋았던 곳은 마치 마법의 문이 열리듯 쭉쭉 하늘로 치솟은 전나무가 가득한 숲길이다. 약 200 미터나  이어지는 숲길에는 피톤치드가 가득한 데다  시간이 멈춘 듯 바람소리와 나무들의 속삭임 그리고 청아한 새소리만 들려온다. 



알록달록하게 다양한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 푹신할 것만 같다. 대자로 누워 있으면 해설사 말대로 뱀이 나오려나?



수목원 바로 옆이 광릉이다. 수양대군인 세조와 정희왕후 윤 씨의 무덤이다. 세조는 조카인 단종을 왕위에 올렸다가 폐위시키고 본인이 왕위에 올랐다. 그는 왕권강화를 위하여 육조직계제를 단행하고 승정원을 강화시키는가 하면, 호패법을 복원하고 군제를 정비하며 국방을 강화시켰고, 직전제를 실시하고 경국대전의 기틀을 마련하는 등 선정을 베풀었으나 조카의 왕위를 뺏았다는 사실에서는 피할 수가 없었다. 


세조는 “내가 죽으면 속히 썩어야 하니 석실과 석곽을 사용하지 말며, 병풍석을 세우지 말라.”는 유명을 남겼다. 이러한 세조의 유언에 따라 이전까지 석실로 되어 있던 능을 회격(灰隔)으로 바꾸어 부역 인원을 반으로 줄이고 비용을 절감하였다. 봉분 주위에 둘렀던 병풍석도 생략하면서 병풍석에 새겼던 십이지신상은 난간석의 동자석주에 옮겨 새기는 등의 상설 제도를 개혁하였다.

사진에서 왼쪽이 세조의 능이고 오른쪽이 왕후의 능이다.


보통 왕릉 주변에는  소나무를 많이 심는다. 소나무는 십장생의 하나로 오랫동안 임금을 지켜달라는 의미도 있고 역사적으로 소나무는 귀한 대접을 받았던 나무다. 그러나 광릉에는 전나무를 심었다


세조는 남양주 풍양궁에 자주 묵으며 사냥을 겸한 군사훈련을 하곤 했는데 이때부터 광릉을 자신의 묘역으로 정했다고 한다. 또한 종기를 치료하기 위해 오대산 주변의 온천과 불당을 자주 찾다가 상원사의 전나무 숲길에 강한 인상을 받아 전나무를 심었다고 하기도 한다.


광릉과 국립수목원은 자연과 역사가 공존하는 아름다운 곳이다. 비록 화려한 단풍은 볼 수 없었지만 늦가을의 정취에 빠지기에는 딱이다.  발아래 오색 낙엽을 밟으며 소리와 감촉을 즐기다 보면 짧지 않은 산책길을 걸었음에도 발이 아픈 줄을 모른다. 이 가을이 가기 전에 추억 만들러 다녀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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