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를 하다 보면 별의별 손님이 다 온다. 빵만 사가면 좋으련만 빵 하나 사면서 보험 하나 들어달라고 끈질기게 조르는 사람도 있고, 자기 교회에 나오라고 끝없이 귀찮게 하는 사람도 있다.
“예수 믿고 천국 가세요”
“전 절에 다니거든요”
말 떨어지기가 무섭게 지옥 운운하는 악담이 마구마구 날아온다. 나는 그런 황당한 순간에도 이를 악물고 웃었다. 반박 한 마디 제대로 못했다. 귀한 손님 하나를 잃을까 걱정이 되어서다. 그래서 ‘장사꾼 똥은 개도 안 먹는다.’라고 하지 않았을까?
이상하게 성당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악담까지는 들어보지 않았는데 유독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악착같이 따라붙거나 심한 말을 해서 정나미가 떨어지게 했다.
사실 둘째 친언니가 스님이다.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자 우리 7남매는 혼돈의 길을 걸어야 했다. 아버지 회사에서 일하던 언니는 서울에 올라온 후 기독교 신자가 되더니 교회에서 철야 기도까지 하며 누구보다 열심이었다. 그러더니 어느 날인가 갑자기 머리를 깎고는 수원의 스님들이 다니는 학교에 다니다 안강에 터를 잡고 스님이 되었다.
스님 언니는 나 보고도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라고 하는 통에 한동안은 전화도 받지 않았다. 솔직히 나는 종교에는 별 관심이 없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도 바빴고 종교의 필요성도 그다지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20년의 직장 생활을 끝냈을 때 큰 올케는 나를 강남의 능인선원에서 운영하는 불교대학에 입학시켰다.
사실 동국대학교를 졸업한 나는 불교에 대해 아주 문외한은 아니었지만 솔직히 불경은 아리송하고 어렵기만 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오랜만에 자유를 찾은 나는 문화센터에서 듣는 교양강좌가 더 재미있었다. 종일 이런저런 수업을 듣다가 한밤중에 불교대학에 갔으니 스님의 말씀이 귀에 들어오기는커녕 졸 때가 더 많았다.
조금이라도 마음을 열 수 있었던 것은 지광스님께서 쉽고 재미있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자가 되어야겠다는 마음까지는 들지 않았다.
그러다 거액을 투자해 빵집을 시작하자 덜컥 겁이 났다. 하느님이든 부처님이든 신에게 매달려야 했다. 천수경도 잘 모르던 나는 갑자기 국녕사 철야기도에 참여했다. 다라니경 108 독을 끝내고 새벽기도가 시작되기 전까지 삼천 배를 하는 것이다. 삼천 배가 채워지기 전에 사람들은 새벽 예불을 준비하느라 부산했다. 그때부터는 절을 했다기보다는 그저 허리를 굽혔다 펴기를 반복하며 삼천이란 숫자를 겨우 채웠다.
온몸은 땀으로 흥건했고 불안과 걱정으로 가득 찼던 내 머리는 그저 하얀 백지가 되었다. 그것이 바로 무념무상이지 않을까? 그때 그 열정으로 계속 절에 다녔으면 좋았을 텐데 나의 불심은 거기까지였다.
아주 인자하신 할머니 한 분은 주말이면 빵을 한가득 사가곤 하셨다. 알고 보니 같은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에게 나눠주려는 거였다. 그분은 한 번도 내게 자기 교회에 나오라고 하지 않았다.
또 우리 빵집에서 샌드위치를 가져가 교회에서 커피와 함께 파셨던 분이 계셨는데 그분 역시 늘 자상한 모습으로 대해주었고 한 번도 내게 부담을 준 적이 없었다. 아마 이런 분들이 슬며시 다가와 나를 이끌었다면 지금쯤 내가 기독교인이 되어 있지 않았을까?
하루는 어떤 여자 손님이 자기와 같이 어디를 가자며 나를 막무가내로 끌고 갔다. 무심코 끌려가보니 광명의 허름한 상가 2층에 있는 절이었다. 불자라고 해봐야 스무 명도 되지 않았다. 올케와 언니가 그렇게 절에 다니라고 강요했지만 고갯짓만 하던 내가 갑자기 불자가 되고 말았다.
사실 스님의 말씀이 좋아서는 아니었다. 신도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차마 그만둔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시작된 스님과의 인연으로 한동안 절에 열심히 다녔다. 나를 그 절로 이끈 그녀도 다른 절로 가버렸지만 어쩌다 보니 스님을 따르게 되었고 바쁜데도 불구하고 초하루면 멀리 인천까지 다녀왔다.
어렵사리 맺어진 불교와의 인연은 또 다른 절로 이어지다가 코로나가 심해진 후 뜸하게 다니다 보니 어느새 절에 안 간 지 5 년이 넘는다. 이제는 내가 불자라고 말하기도 민망하다.
사람이라 살다 보면 심신이 나약해질 때가 있다. 그때 종교는 정말 큰 힘이 된다. 한 동안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며 마음의 안정을 찾았던 것은 나를 그 절로 데려갔던 그녀와 스님과의 인연 덕분이다. 스님은 지금도 건강하시려나?
다시 절에 나가 제대로 공부도 하며 신앙생활을 계속해야겠다고 늘 마음은 먹지만 한 번 게으름을 피우다 보니 그게 쉽지가 않다. 그때만큼 간절히 원하는 것이 없어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