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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미의 세상 Oct 11. 2024

우리 가족의 소확행

'타닥타닥' 불판 위에서 고기가 익어가는 소리와 창밖의 빗소리가 장단을 맞추더니 어느새 장대비가 되었다. 바로 건너편 백화점 건물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리며 기분이 아주 상쾌해졌다.  이렇게 장대비가 쏟아져 내리면 우산도 없이 일부러 또랑을 철벅거리며 걷던 어릴 때가 생각난다. ‘Singing in the rain’ 이라는 영화 속에서 비를 맞으며 탭댄스를 추던 배우들도 떠오른다.

“미친 척하고 빗속을 뛰어다녀봐? 아이, 진작 탭댄스라도 배워두었으면 이럴 때 멋지게 비 맞으며 춤이라도 춰 볼 것을!”     

“엄마,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왜 옛 첫 사랑이라도 생각나?”

“지랄!”


모처럼 함께하는 술자리가 즐거운 지 두 딸의 수다도 끝이 없다. 남편은 고기판 위의 고기를 뒤집느라 땀을 뻘뻘 흘리고 있다. 믿음직한 남편과 사랑하는 두 딸이 함께하는 이 순간이 너무나 좋다. 이미 마셔버린 막걸리 때문일까?


오랜만에 가족 네 명이 뭉쳤다. 요즘은 가족 모두 모이는 것도 쉽지 않다. 저녁 식사 후, TV를 보고 있다가 산골로 귀촌 한 부부가 산삼을 키우는 장면이 나왔다.

 "오목교 껍데기 집에 가면 2 년산 수삼을 주던데!"

다시 또 다른 드라마 속에서 돼지 껍데기를 굽는 장면이 나왔다. 바짝 구워 먹는 껍데기를 콩가루에 찍어 먹는 맛이 생각나자 입 안 가득 군침이 고였다. 

"우리 돼지 껍데기 먹으러 가자"

늦은 밤 두 딸도 그곳으로 오라고 하고 술 한 잔할 생각에 차도 두고 버스를 탔다. 우리는 이렇게 가끔 한밤중에 술자리를 같이 한다. 

    

빵집 할 때는 온 가족이 모일 수 있는 시간이라고는 가게 문을 닫은 12시 이후뿐이었다. 어쩌다 기분이 좋은 날이면 그 시간까지 문을 열고 있는 근처 맥주 집에 모였다. 한참 대학입시를 준비하던 큰 딸과 미성년자인 딸까지 데리고 갔다.    

  

빵집 못지않게 동네에 많았던 것이 호프집이다. 그중 우리가 자주 갔던 집은 친절한 노부부가 운영했던 집으로 무엇보다 골뱅이무침이 맛있었다. 큼직하게 썰어놓은 골뱅이에 새콤달콤한 양념이 묻은 야채가 함께 씹힐 때의 상큼함이란. 여태까지 그만큼 맛있는 골뱅이무침을 먹어본 적이 없다.    

  

그 맛이 생각나 요즘도 다른 호프집에서 먹어 보지만 산처럼 쌓아놓은 야채 속에 잘게 다져진 골뱅이는 찾기도 어려운 데다 그때의 상큼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골뱅이 통조림을 사다가 집에서 내가 무쳐먹는 것이 도리어 맛이 있다. 아낄 것도 없다. 캔 하나 따서는 야채 조금 넣고 만들어 주면 남편 눈이 커지며,

“역시 우리 마누라가 최고야.”   

  

소스와 함께 나오는 마른 김도 얼마나 맛있었는지 모른다. 살짝 눈치가 보이기는 했지만 두세 번 정도 리필을 해서 먹었다. 워낙 김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때 우리는 술을 마시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온 가족이 한밤중에 야식을 즐기기 위해 갔었다. 

     

어느 날인가는 호프집 사장님이 자기 고향의 특산물이라며 과메기 몇 점을 가져다 직접 싸서 우리 남편 입에 넣어 주는 게 아닌가?  남편은 헤벌쭉 받아먹으며 좋아했다. 사장님은 밤늦은 시간까지 어른들과 함께 술자리에 따라오는 작은 딸이 안쓰러웠는지 늘 주스 한 잔을 따로 가져다주셨는데 작은 딸은 또 그렇게 그것을 좋아했다. 그런 따뜻함에 마치 친정 부모님 찾아가듯 우리는 한밤의 데이트를 즐겼다.  

“그분들 지금도 어디선가 건강하게 잘 계시겠지?” 

    

야식을 할 핑계는 아주 많았다. 미대 입시를 위해 홍대 앞까지 딸을 데리러 간 남편을 기다리는 장소이기도 했고, 바로 위층의 도서실에서 공부하고 나오는 큰딸 마중을 나갔다가 찾던 곳이 호프집이었다.     


그렇게 자란 우리 애들은 어느새 서른을 넘겨 결혼도 하고 직장인이 되었다. 술을 잘 못 마시는 큰 딸과 나는 아빠의 술친구를 못해주지만 작은 딸은 자작하려는 아빠의 술잔을 알아서 채워주고 기분도 잘 맞춰준다. 고기 한 점 싸서 남편의 입에 넣어주자 작은 딸은 얼른 술잔에 술을 가득 따라 남편에게 건네며 

“아빠 건배!”

무슨 큰 행운을 바라겠는가? 그저 우리 가족 이렇게 모여 얼굴보고 맛있는 음식 먹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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