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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미의 세상 Jul 03. 2024

사무치게 그리운 사람, 엄마

"어머 선생님 우시는 거예요?"

갑작스러운 나의 행동에 강사는 어찌할 바를 모른다. 틀어 준 영상에서는 탤런트 나문희가 어눌하게 노래를 하고 있는데 계속해서 주름진 손만 나오고 있다. 울컥 엄마 생각이 났다. 가슴이 먹먹해지고 콧등이 시큰하더니 기어코 눈물 바람이다. 애써 참으며 창밖 하늘을 내다보지만 쉽게 멈추지를 않는다.


큰 애를 낳았을 때 우리 집에 오신 엄마는 작은 애까지 돌봐야 했다. 엄마의 도움 없이는 그렇게 오랫동안 직장 생활을 하거나 빵가게를 할 수 없었다. 무척 고마운 엄마인데 나는 엄마와 어지간히도 싸웠다. 우리 모녀는 서로 얼마나 고집이 센지 육아에서도 살림을 할 때도 늘 부딪치다가

"나 죽으면 꺼이꺼이 울지 말고 지금 잘해!"

"내가 울긴 왜 울어?" 그렇게 어깃장을 놓으면서 끝까지 고집을 부렸다.  

   

직장 다닐 때는 그나마  엄마를  조금이나마 보살필 수 있었는데 빵집을 시작하고부터는 너무 바빠 엄마를 돌볼 여력이 없었다.  엄마는 늘 우리 가족 걱정뿐이었지만 그때는 그저 귀찮은 잔소리로 들렸다. 일하는 아줌마가 들어오고 엄마의 일이 점점 줄어들자 치매라는 불청객이 찾아왔다.  수시로 가게까지 와서는

"얘, 명호가 안 온다."

"엄마 지금 몇 시인데. 이따 오후에나 오지“

     

점점 병이 심해지자 한밤중에도 큰일이라도 난 듯 우리 부부의 방문을 열어젖히며  딸이 돌아오지 않는다고 난리다. 우리는 서서히 지쳐갔다. 어느 날은 이상한 소리가 들려 나가 보았더니 화장실 변기에 몸이 끼여 끙끙대고 있었다.

멀쩡한 벽에 머리를 부딪쳐 피가 나기도 하고 매일매일 사건이 터졌다. 주간에는 간병인이 있어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지만 밤이면 우리 가족은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특히 남편에게 미안해 어쩔 줄 몰라하다 크게  마음을 먹고 엄마를 요양병원으로 모시고 갔다. 엄마는 동네 노인정에도  못 갈 정도로 소심했는데 낯선 병원에서 혼자 계실 수 있으려나? 죄송해서 미칠 것 같았다. 환갑이 넘어 아픈 몸으로 우리 집에 와서는 애들을 10년 넘게 키워 주셨는데 나는 엄마를 돌본 지 채 3년도 안 되었다. 

    

착잡한 마음으로 앉아 있는데  간병인이 엄마를 마치 짐짝처럼 끌고 갔다. 워낙 덩치가 크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런 취급받는 것을 보자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간호실에 가서 강하게 항의를 했고 애꿎게 간병인은 그날 나 때문에 직업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다 면회라도 가면  "어서 집에 가자" 며  몸을 일으키던 엄마는 두꺼운 헝겊 끈으로 묶여 있었다. 늘 집에 간다고 엄청 졸랐을 것이다. 얼마나 낯설고 무서웠을까? 버려졌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까? 나는 고작 일주일에 한 번 먹을 것을 싸들고 가서는 간병인 눈치 보며 몰래 드시게 했다. 물론 간병인을 위한 커다란 빵봉지를 준비해 간 덕분에 모른 체해주긴 했지만 병원 밖 음식은 금지였다.    

 

몇 달이 지나자 엄마의 몸은 근육이란 근육은 다 빠져 버리고 뼈만 앙상하게 남았다. 그 모습을 보자 너무 애처롭고 미안해 꼭 끌어안으며 사랑한다고 했더니 이마저 빠져 합죽이가 된 엄마는 

"나도 사랑해" 하며 좋아하셨다.

사랑한다는 말을 한 것도 엄마를 안아준 것도 처음이다. 왜 진작 따뜻하게 해 드리지 못했을까? 기껏 시장에서 옷 몇 벌 사다 드릴 때도 방 앞에 슬쩍 놓고 오기 일쑤였다. 용돈을 드리면 차곡차곡 모았다가 냉큼 동생에게 가져다주는 엄마가 싫었고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챙기는 동생도 미웠다.    

 

내가 빵집을 안 했더라면 그렇게 빨리 병원으로 모시지 않고 치매도 걸리지 않았을지 모른다. 직장을 그만두었을 때 엄마와 여행이나 하며 행복하게 살면 될 것을 왜 빵집을 시작했을까? 빵집을 하는 바람에 우리 가족 누구도 편한 사람이 없었다.  

    

그날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올 때 지인이 차로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하필 경인고속도로였다. 매주 엄마를 만나러 갔던 길이다.  엄마 돌아가신 지 10년이 넘었지만 이 길로 들어서면 나도 모르게 목이 따끈따끈하고 가슴이 답답해진다.  

   

엄마가 그리워서일까? 아니 죄책감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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