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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미의 세상 Oct 14. 2024

좀 더 따뜻하게 해 줄 것을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한 남자가 자동차가 지나가는 데도 막무가내로 길을 건너고 있다.

“어, 위험해요”

뒤돌아보는 사람은 전부터 잘 아는 아이다. 우리 아이들 또래일 텐데 벌써 머리도 반쯤 벗겨진 데다 딱 중년 남자로 보였다.  왜 저렇게 변했지? 그 아이는 발달장애아 인지 약간 정신장애가 있었다.

     

그에게 빵집은 신기한 장소였을 게다. 총을 들고 적군에 돌진하는 군인처럼 큰 눈을 반짝이며 갑자기 가게 문을 밀치고 들어와서는 진열된 빵을 마구 뒤집어 놓기도 하고 돈을 내기는커녕 마음에 드는 빵을 집어 들고나가기 일쑤였다. 때문에 근처에 그 아이가 보이면 문을 꼭 잡은 채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웃으며 

“무슨 빵 먹고 싶어?” 

하며 빵 하나 줄 것을.....  

   

바로 뒤쫓아 온 아이 엄마도 예전보다 많이 늙어 보였다. 산책 가다 아파트 앞 화단에서 만나는 아이의 아버지도 수심이 가득한 채 늘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렇게 보이는 것은 내 선입견 때문일까? 우리 가족 중에도 발달장애아가 있다.  가족들이 너무 힘들어하고 있는 것을 본 후부터는 그런 아이들을 볼 때면 남의 일 같지가 않다. 빵집 할 때 문전박대 했던 것이 미안해 지금도 그들을 만나면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다.    

  

하루는 딱 노숙자로 보이는 아줌마가 지저분한 행색으로 빵 집에 들어오려 하기에 나는 또 문을 꼭 잡고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그러자 그녀는 문 밖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행패를 부렸다. 양쪽 문을 걸어 잠그고 있으니 몰려온 동네 사람들이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나는 그저 그녀를 가리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녀는 어쩌면 그냥 돈을 내고 빵을 사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나의 좁은 생각으로 그녀는 빵 하나 사지 못하고 문전박대를 당하고 말았다. 아마 나 때문에 그녀는 마음에 큰 상처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만 원어치 빵을 사도 팥빵 하나 얹어주던 그 마음씨 좋은 빵집 아줌마는 어디로 간 것일까? 그때 나는 정말 빵을 많이 사주는 고객이 고마워서 주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건 친절이 아니고 그냥 장사수완이었나 보다.  

   

이런 실수를 한 적이 또 있다. 연로하신 친정 엄마께 아이들을 돌보게 하는 것이 미안해 집에서 일을 돌봐줄 아줌마를 찾았다. 그때 남편은 연변에 사시는 분을 모셔왔다.   거의 엄마 연배의 아주머니셨다. 그런데 맡긴 집안일은 별로 안 하고 엄마와 함께 TV만 보고 있는 데다 무엇보다 엄마가 너무 불편해하셨다. 차츰 미움이 쌓이고 있을 때다. 누군가에게 돈을 받았는데 몇 만 원이 비는 것이다. 당장 그 아줌마를 의심하고 그만두라고 했다. 절대 그런 일이 없다며 원망의 눈초리로 나를 보았지만 단호히 거절했다.     


그때 뷰티 숍에 다녔었다. 특수 사우나 관리를 해주는 곳인데 독소배출도 되고 체중조절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관리사는 내가 사우나 박스에 들어가기만 하면 작은 유리창을 수건으로 꼭꼭 가렸다. 내가 반나의 상태로 박스 안에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하루는 내 가방을 똑딱하고 닫는 소리가 들려 수건 사이로 내다보니 그녀가 내 가방을 긴 장대로 사물함에 넣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문을 벌컥 열고는

“지금 뭐 하는 거예요?”

그녀는 내가 분명히 보았는데도 오리발을 내밀었다. 사장에게 말하겠다고 하자 다음날 봉투에 돈을 넣어가지고 와서는 미안하다고 사죄를 했다. 

    

다시 생각해 보니 연변 아줌마를 의심했던 그 일도 바로 이 여자 짓이었던 것이다. 이미 물은 엎질러졌고 달리 그 분께 사죄를 할 연락처도 없었다. 또 실수를 하고 만 것이다. 그 후 연변사투리가 들려올 때마다 그날의 일이 떠올랐다.  

    

멀리 고국까지 와서 돈 좀 벌어가겠다고 오신 분이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을까? 뷰티샾의 관리사를 탓하기 전에 나의 무모함을 탓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정말 맛있는 김치전을 해주셨는데....  

“죄송합니다. 혹시 나 때문에 상처를 받았다면 잊어주세요. 정말 죄송합니다.” 

     

왜 그렇게 각박하게 살았는지 모르겠다. 하긴 지금도 남에게 베푸는 마음은 별로 없다. 지인이나 친지에게는 친절할지 몰라도 모르는 사람에게까지 나눔을 실천하며 살고 있지는 않다. 절에 가면 늘 복을 지으라고 스님들이 말씀하신다. 전생에는 그래도 복을 좀 지었는지 이번 생은 그런대로 살고 있지만 지금 그 복을 깎아먹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제도 종일 바쁘게 움직이다 보니 온몸이 천근만근이었다. 마침 경로석 가운데 자리가 비어있었다. 체면 불고하고 비집고 들어가 앉아서는 돋보기를 꺼내어 휴대폰을 보고 있는데 나보다 나이가 조금 많아 보이는 아주머니가 탔으나 모른 척했다. 

“나도 65세라고. 물론 만으로는 예순넷이지만. 나도 경로석에 앉아도 되는 거 아냐?”

그렇다고 마음까지 편했던 것은 아니다. 그냥 서서 갈 것을.


아직도 이렇게 밴댕이 소갈딱지 같은 마음으로 살고 있다. 오늘부터라도 좀 베풀며 살자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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