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밥 한 공기

by 마미의 세상

"다녀왔습니다"

"벌써?"

내일이 생일인 큰 딸이 웬일로 9시도 안 되어 돌아왔다.
"밥은?"
"배고파"
"그래 엄마가 반찬 해 놨어"


내일 모두 외식하기로 하였지만 엄마로서 아무것도 안 할 수가 없어 미역국에 불고기 잡채에 전까지 기초 반찬을 준비해 놓았다. 얼른 가스불 켜고 이것저것 반찬을 꺼내고 밥솥을 열었는데 밥이 없다. 늘 아침에 밥을 하면 두 딸들은 한 끼 먹을까 말까 해서 딸의 밥을 남겨놓지 않았다. 먹다 남긴 공깃밥 반 그릇뿐이다.

"내일 아침밥도 안 먹고 나갈 텐데..."

갑자기 몰려오는 미안함에 햇반과 남은 밥을 내놓고는 얼른 방으로 들어왔다.

어릴 적 아랫목 이불 안에는 집에 돌아오지 않은 식구만큼의 밥공기가 들어 있었다. 주로 아버지 밥이었다. 내가 직장인이 되었을 때, 친구들과 헤어져 12시가 다 되어 돌아가도 엄마는 내가 좋아하는 조갯국 끓여 놓았다고 이불 안에서 따뜻한 밥공기를 꺼내어 밥상을 차려주셨다. 엄마의 그 마음을 잘 알기에 배가 불러도, 시간이 늦었어도 나는 밥을 또 먹었다.

내가 지금의 통통한 모습을 갖게 된 것은 초등학교 때부터다. 일찌감치 엄마와 떨어져 할머니와 오빠들과 함께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던 나는 초등학교 2학년 때인가 학교에서 "영양실조" 진단을 받았다. 안양에서 양계장을 하시던 엄마는 놀란 나머지 방학에 내려갔을 때 하루에 닭 한 마리씩 먹이셨다. 그렇게 방학만 되면 영양 보충을 하던 나는 중학교 고등학교를 올라가며 점점 통통하게 살이 찌고 말았다. 울 엄마의 자식 사랑은 오로지 먹을 것을 듬뿍 챙겨 주시는 거였다. 그래서 지금도 나의 가장 큰 행복은 맛있는 것 먹는 것이다.

나도 아이들만 보면 "밥 먹자!"라는 말을 하지만 시간도 없고 다이어트 중인 딸들에게 돌아오는 말이라고는
"안 먹어!"

"어이구!"


물소리와 함께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나는 걸 보니 딸이 밥을 다 먹고 설거지하는가 보다. 며칠 전부터 방 청소 때문에 다툰 큰 딸과는 아직도 냉전 중이다. 내일은 딸 생일이니 내가 먼저 풀어야 하나?


이불속에서 따뜻한 밥 한 공기를 꺼내 주던 친정엄마 생각이 떠올라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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