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추워진단다. 가을의 향연을 볼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기나긴 겨울을 나기 위해 나무들은 초록빛 가면을 벗고 오색찬란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도심 속 가을의 모습도 일품이지만 기어코 단풍 나들이에 나섰다.
사찰의 목조건축물과 오색 단풍이 함께 한 모습은 더없이 화려하다. 늘 이맘때쯤이면 사진동호회 사람들과 야외촬영을 위해 전국의 절을 찾아다녔다. 어떤 날은 하루에 두세 곳을 방문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사찰 문화재 관람료를 내지 않아도 되는 선배들이 그렇게 부러웠다.
"난 언제나 65세가 되는 거야?"
"우리는 돈을 낸다 해도 네가 더 부러운 걸. 우리 바꿀까?"
지난해부터는 모든 사람에게 무료입장이 가능하게 되었다. 공연히 횡재한 기분마저 든다.
홍천은 강원도에 갔다가 들르기 좋은 곳이다. 공작이 날개를 펼친 모습 같다는 홍천의 공작산 아래 수타사가 있다. 숲이 녹음으로 푸르를 때나 흰 눈으로 덮을 때도 아름답지만 부슬부슬 내리는 가을비에 젖은 고운 단풍이 함께 하면 어떨까?
소리 없이 내리는 가을비로 앙상한 나뭇가지 끝에는 동그란 빗방울들이 수없이 매달려 있고 가여운 잎새들은 흠뻑 젖은 채 반짝이고 있다. 그중 어떤 것은 생채기도 나고 얻어맞아 멍이 든 것도 같다. 며칠 뒤 땅으로 굴러 떨어질 것을 알기는 하려나? 너무나 당연한 자연의 이치지만 공연히 가슴이 저려온다. 너무 예뻐서? 아니 내 모습 같아서다.
경내로 들어가니 마침 '가을에 띄우는 시'를 주제로 문인협회 시화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산사와 가을의 시' 그리고 독경소리가 너무나 잘 어울린다. 임진왜란 때 전소된 후 인조 때 공잠 스님의 중창으로 복원되고 여러 차례 중건을 거쳐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소박한 목조 건물에 한껏 추켜올려간 팔작지붕, 섬세한 문양에 결코 진하지 않은 색조로 단장한 외벽이 비에 젖어 운치가 있다.
수타사와 연계된 산소길은 공작산 생태숲과 출렁다리가 있는 귕소와 용담을 거치는 길(3.8 킬로미터)로 가벼운 산책 코스로 딱이다. 생태숲에는 향토 수종을 비롯해 다양한 수목을 정갈하게 심어 놓아 이 가을의 운치를 만끽하기 좋다.
많은 나무들이 있었지만 이름을 아는 나무라고는 댑싸리와 맨드라미 정도뿐이다. 이름을 모르면 어떠랴. 그저 눈으로 보고 마음을 힐링할 수 있으면 충분하지 않을까?
넓은 암반과 큼직큼직한 소들이 비경을 이루는 홍천 계곡 옆으로 오르면 정희왕후 윤 씨의 아기태를 묻은 태봉이 있다.
잘 가꾸어놓은 생태숲과 수타사를 한 바퀴 돌아보는 것을 추천한다. 가을의 정취를 느끼기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