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을 지내고 나니 온몸이 안 아픈 곳이 없다. 서둘러 병원에 갔으나 벌써부터 초만원이다. 한참 기다려야 할 것 같아 한쪽 소파 깊숙이 자리를 잡았다.
“60 년 7 월 7 일생 맞으세요?”
60 년생이냐는 간호사의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보니 한 여자가 걷기도 어려운지 심하게 절뚝거리며 와서는 내 옆에 앉는다. 동갑내기인데 염색을 안 해서일까? 진짜 할머니 같다.
“허리가 많이 아프신가 봐요?”
“혼자 동동거리는 딸을 못 본체 할 수 없어 손자 둘 키워주다 보니 어깨도 허리도 죄다 고장이 났나 봐요.”
순간 나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 눈앞이 캄캄해졌다. 애써 자식 키워 결혼시키고 나면 끝인가 했더니 이젠 손자까지 키워줘야 하나 보다. 그깟 명절 음식 만드느라 아파서 왔다는 내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했다.
설날은 친정엄마 제삿날이다. 환갑 넘어 우리 집에 오셔서 두 손녀딸 키우느라 고생만 하다 돌아가신 친정엄마의 제사만큼은 올케들의 손을 빌리고 싶지 않아 우겨서 우리 집에서 지내고 있다. 그러니 설이 다가오면 시댁의 차례음식과 친정의 제사 음식을 만드느라 정말 죽을 지경이다.
“여보, 어떡해. 어머님 좋아하시는 녹두 안 사 왔다.”
“어머님도 안 계신데 그냥 하지 마?”
시댁 식구들은 그 어느 것보다 녹두전을 좋아한다. 녹두전을 생각하니 불편하신 다리 쩍 벌리고 녹두전을 부치던 어머님 모습이 떠오른다. 명절이면 시댁의 거실은 온통 주방이 된다. 동그랑땡이나 생선 전은 딸과 내가, 부치기 어려운 녹두전은 늘 시어머님이 만드셨다. 어디 전뿐이랴 설에는 만두, 추석에는 송편까지 만들다 보면 저녁때가 되어야 겨우 일이 끝났다. 몸이 힘들기는 했지만 이렇게 북적이며 음식 나눠 먹는 게 명절이다.
요즘은 차례도 지내지 않는 데다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나니 기름 냄새 하나 나지 않는 시댁은 썰렁하기 짝이 없었다. 다행히 큰 시누이가 내려와 있어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준비해 간 음식을 전해드리고는 친정엄마 제사를 지내야 해서 서둘러 집을 나왔다.
“추워요. 아버님 어서 들어가세요.”
잔뜩 굽은 허리를 지팡이에 의지하고 나오시는 시아버지를 보자 울컥 눈물 바람이다.
몇 년 전 큰소리를 치며 제사를 가져간 형님은 한두 해 지내더니 코로나를 핑계로 차례도 제사도 몽땅 없애버렸다. 맏며느리였던 시어머니는 70 년 넘게 조상님을 모셨는데 얼마나 황당하셨을까? 형님은 아프다는 핑계로 올해도 설날 오후 3시가 되어서야 손님처럼 내려왔다.
설날 아침, 우리 부부는 달랑 둘이서 만둣국을 끓여 먹었다. 40 년 가까이 북적이며 명절을 보내던 우리는 이런 분위기가 너무나 낯설었다. 다들 이런 명절을 보내고 싶은 걸까? 오후에 큰 딸이 와서 제사음식을 만들면서부터 겨우 명절 분위기가 났다. 7시가 넘자 친정 식구들이 하나 둘 왔고 상을 4개나 놓았는데도 겨우 끼어 앉아서 먹어야 했다.
‘그래, 이래야 명절이지.’
엄마 아버지는 제사상 앞에 모인 가족들을 보며 좋아하셨을까? 안부 인사하며 여기저기 부족한 음식 챙겨주다 보니 나는 밥도 못 먹었지만 맛있게 먹는 가족들 모습만 봐도 뿌듯하다.
친정 올케도 칠십이 넘고부터는 늘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툴툴거리며 제사를 지낸다. 조상님들이 얼마나 불편하실까?
“이제 차례는 절에서 합동차례로 지내고 제사는 엄마 아버지 합쳐서 설날에 내가 지낼게.”
나라고 힘이 들지 않을까? 하지만 나 하나 고생하면 가족들 모두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당연히 여자가 해야 할 일이라고 당연시하는 관습 때문에 명절이면 집집마다 시끄러운 것 같다. 굳이 옛날 방식을 고집하자는 게 아니다. 게다가 요즘은 반찬가게에 가면 모든 음식을 파는데 그게 그렇게도 어려울까?
솔직히 나도 직장 다닐 때는 은행 뒷자리에서 무게 잡고 앉아 있다가 시댁에 가서 온갖 궂은일 하다 보면 짜증이 나기도 했었다. 하지만 한 집안의 며느리이니 어쩌겠는가!
모든 것이 간소화되고 있다. 차례도 제사도 없어지고, 딸 결혼식 때 보니 사주단자도 보내지 않고 폐백도 없애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 정도는 지켜야 할 우리 고유의 미풍양식 아닐까? 이러다간 아이들에게 물려줘야 할 우리의 풍습이 모두 사라질 것 같다.
요즘은 여자가 돈도 벌어야 하고, 아이도 키워야 하고, 집안일까지 해야 하니 힘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수십 년간 내려오던 우리의 풍습을 모두 없애야만 할까? 명절에 자기네 가족만 모이고 여행이나 가면 그게 행복할까? 이렇게 살다 간 길에서 사촌들을 만나도 알아보지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