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여행 준비물
12월 5일, 그렇게도 기다리던 라틴 아메리카로 떠나는 날이다. LA 행 밤 비행기를 타기 위해 점심 식사 후 집을 나서는데 첫눈이 내린다. 우리의 여행을 축복이라도 해 주는 것일까? 공항 가는 길, 인천 앞바다의 진득한 갯벌 위에는 몇 마리의 철새가 고개를 한껏 뒤로 젖힌 채 하늘을 보고 있는 모습이 스산하기 짝이 없다.
6개월 전부터 여행을 계획하며 남미에 관한 책을 읽고 유튜브를 보며 기대감으로 잔뜩 부풀었다. 단순히 멋진 풍경을 보고 오는 것이 아니라 수천 년 전 잉카인들이 이루어 놓은 위대한 문명을 가까이에서 보는 것이다. 무턱대고 저지르긴 했지만 28일이라는 긴 시간 동안 국내도 아닌 해외에서 여행하는 것이 처음이라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사실 전에도 12일짜리 해외여행을 떠나면 일주일만 지나도 집 생각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지구 반대편 페루의 리마에 가려면 인천공항에서 태평양을 건너 LA까지 11시간 정도 비행기를 타고 가서는 입국과 출국 심사를 거친 후 다시 남쪽으로 10시간 정도를 더 날아가야만 한다. LA공항에서는 밖으로 나가지도 않고 비행기만 갈아 탈뿐인데 입국과 출국 심사를 위해 ESTA까지 신청했다.
볼리비아 비자는 절차가 매우 까다로워 직접 하지 못하고 대행업체에 맡겼다. 일인당 30만 원 정도를 냈으나 여행 출발 바로 전에 무비자로 입국이 가능하다는 메시지가 왔다. 우리나라의 위상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이야기지만 여행사에서 좀 더 빨리 그 사실을 가르쳐 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동안의 해외여행은 주로 여행사의 패키지 상품을 이용했기 때문에 좌석이 늘 비행기 저 뒤쪽 끝이었다. 시원치 않은 몸으로 꼬박 이틀 동안 비행기의 이코노미 석에 끼여 갈 생각을 하니 도저히 엄두가 나질 않아 난생처음 비즈니스 석으로 예약하다 보니 1인당 왕복 천만 원이나 더 내야 했다.
비즈니스 석을 이용하면 공항에서 라운지를 이용할 수도 있고 오고 갈 때 비행기 좌석이 편한 것은 물론이요. 음식도 풀코스로 준다. 술을 좋아하는 남편은 내내 술 마실 생각에 콧노래부터 부르고 있다. 처음 LA 갈 때는 한숨 푹 자고 일어났더니 LA였다. 이코노미 석에 앉았다면 불편해서 잠을 제대로 자지도 못 했을 게다. 비싸서 그렇지 정말 좋다.
대륙이 워낙 넓다 보니 옷도 사계절 옷을 준비해야 했다. 반팔, 긴팔에 고어텍스 점퍼까지 넣고 빙하 관광도 있다 해서 패딩점퍼까지 넣다 보니 우리는 각각 크고 작은 트렁크 두 개씩에 노트북과 카메라를 넣는 가방까지 가져가다 보니 5개나 되었지만 다른 팀들은 그다지 짐이 많지 았았다. 그들은 연박하는 경우 속옷이나 얇은 옷은 빨아 입으며 다녔단다.
우리 팀 인솔자는 여행 내내 같은 옷차림을 하고 있어 일행 중 한 사람이 그에게 물었다.
"그 옷은 한 달 내내 입는 거예요?"
"아니요, 며칠 전에 한 번 빨았어요."
그 정도는 아니라고 해도 얇은 옷으로 가져가 대충 빨아 입으며 다니는 것이 좋겠다. 거의 매일 짐을 쌓다 풀어야 했던 우리는 무거운 가방 때문에 정말 깔려 죽는 줄 알았다. 더군다나 아르헨티나 비행기는 수화물이 15 킬로그램 밖에 되지 않아 비행기 내부로 짐을 가지고 타야 해서 가방 개수가 더 늘어났다. 늘 여행 갈 때면 느끼는 것이지만 무엇이든 우리나라 만한 곳이 없다. 대륙 안에서만 비행기를 10번 정도 탔던 우리는 라탐이나 델타 항공도 이용했지만 비행기도 대한항공이 음식이나 서비스 면에서 가장 좋았다.
옷뿐만이 아니다. 여행 중 어디가 아플지 모르기 때문에 약을 챙겨가야 하는 것도 중요하다. 고산증 약은 현지에서 사는 것이 좋다 해서 준비하지 않았지만 소화제와 감기약 외에도 파스와 진통 소염제 등을 챙겼다. 디스크로 고생 중인 나는 베에는 복대를 하고 맞춤 베개와 SNPE 도구에 전기장판까지 챙겨가서는 그날그날 몸을 다스리며 다녔다.
하지만 엉뚱하게도 초반에 고산증을 심하게 앓아서인지 위경련과 장염으로 고생하더니 나중에는 방광염까지 발현하는 바람에 죽을 맛이었다. 그래도 걱정했던 것과 달리 하루 칠 팔천 보 정도만 걷는 여정이라 한 곳도 빠지지 않고 다녀왔다.
솔직히 브라질 칠레 정도는 남미에 있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페루나 볼리비아 파타고니아 우수아이아 등은 그 이름이 나라 이름인지 도시 이름인지 조차 잘 몰랐다. 여행 전 통신사에 로밍을 부탁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을 때 방문할 나라조차 열거하질 못해 다시 전화를 해서 여행 안내서를 보며 알려줄 정도로 무지했다. 파타고니아와 이과수 폭포는 두 나라에 걸쳐 있었고 우수아이아도 나라 이름이 아닌 도시 이름이었다.
혹시나 일행과 떨어질지 모르니 로밍은 꼭 새서 가야 한다. 통신사에서 권하는 8기가 데이터를 부부가 공유하는 정도로 떠났는데 모자라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우리나라처럼 데이터가 빵빵 터지지 않는 덕분에 8기가를 우리 부부가 썼는데도 충분했다. 물론 호텔에서는 와이파이가 되지만 그 속도가 너무 느려 다른 팀의 사진을 찍었다가 보내주려면 한참 동안 빙빙 돌기만 하는 바람에 속이 터져 죽을 뻔했다. 정말 IT도 우리나라만 한 곳이 없다.
한국 사람들은 느끼한 양식만 계속 먹다 보면 생각나는 것이 매콤한 라면이나 찰진 밥이다. 취향에 맞게 고루고루 준비하는 것이 좋은데 까다롭기 그지없는 칠레 국경을 넘어가려면 뜯어진 음식이나 집에서 요리한 음식 그리고 과일 등은 가져갈 수가 없으니 요령껏 준비해야 한다. 여행하는 동안 음식에 대한 거부감은 별로 없었지만 아르헨테나 정도 내려가면 매끼 기름끼 없는 고기만 잔뜩 주는 바람에 김치 생각이 간절했다. 그리고 다른 나라와 달리 호텔 객실에 커피가 아닌 마테차만 잔뜩 있어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은 따로 준비해 가는 것이 좋다.
드디어 내일부터 시작이다. 가슴이 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