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궁, 리마 대성당, 아르마스 광장, 미라플로레스, 키스하는 연인상
리마부터 남미 여행이 시작되었다. 리마는 아름다운 해안에 고급스러운 건물이 가득한 미라플로레스(미라는 보다는 뜻이고 플로레스는 꽃을 뜻한다)라는 신도시와 스페인 식민지 시대에 건설된 역사적인 건축물이 밀집한 구도시로 나뉜다.
페루의 역사
남미에서 세 번째로 큰 영토를 가지고 있는 페루는 잉카문명의 발상지이자 중심지였다. 잉카문명은 태평양 연안을 따라 아메리카 최대의 제국을 건설하며 약 1세기 동안 문명을 꽃피웠으나 그에 대한 문헌을 찾을 수가 없다. 바로 그들에게 글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들 고유의 언어인 케추아어 등을 쓰는 사람도 있지만 역사적 문헌으로 남은 것은 스페인군이 쳐들어 와서 가르쳐 준 스페인어로 기록된 것뿐이다.
1533년 스페인의 피사로는 겨우 180명의 군사를 데리고 페루에 쳐들어 왔다. 황금을 얻고 식민지를 얻기 위해 또 기독교의 밝은 빛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잉카인들은 처음 보는 동물인 말을 타고 다니는 기병대의 모습에 놀라고, 천둥소리를 내는 총과 대포에 혼비백산해 채 2 시간도 되지 않아 7,000 여 명이나 되는 원주민은 죽고 아타왈타왕도 불에 타서 죽고 말았다.
그보다 더 어이없는 것은 그들은 안데스의 신화에 나오는 얼굴이 하얗고 키가 크고 수염이 있는 데다 긴 옷이 발목까지 내려오는 바라코차를 신이라 믿어왔는데 스페인의 기독교 수사의 모습이 바로 그랬다. 잉카인들은 하나님을 자신의 신으로 받아들여 태양신은 예수요, 대지의 신은 성모마리아로 믿으며 국민의 90 % 이상이 가톨릭 신자라고 한다.
리마는 피사로가 잉카제국을 제압하며 수탈한 금은보화를 본국인 스페인으로 가져가기 위한 도시였다. 그 중심에 아르마스 광장이 있다. 산티아고나 쿠스코 아바나에도 아르마스라는 광장이 있는데 이는 식민지 시대에 병사들을 집결시키거나 무기를 재정비했던 곳이다.
스페인은 무자비하게 잉카인들이 세운 건물을 무너뜨리고 그 위에 그들의 성당을 짓고 행정을 담당하는 공공건물 등을 지었다.
구도시 리마에는
700년 이상된 라우니온 거리에는 식당과 쇼핑 시설이 많아 쇼핑 나온 사람들과 우리 같은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잉카제국시대와 스페인 식민지 시절의 핵심 지역이다. 대부분이 석조 건물이고 발코니가 많은 스페인식 건물뿐만 아니라 프랑스나 이탈리아 건축 양식도 볼 수 있다. 18세기부터 19세기에 지어진 건물은 대부분 2층건물이고, 3층 이상의 것은 19세기 이후에 지어진 것이다.
많은 건물의 이름에는 페루를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시킨 영웅인 시몬 볼리바르랑 싼 마르틴이라는 이름이 들어 있다.
아르마스 광장에는 대통령궁과 대성당이 있다. 스페인의 정복자들에 의해 잉카의 건물은 거의 파괴되어 과거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페루의 첫 대통령이 취임할 때 피사로의 동상은 철거되고 분수대를 만들었다.
1821년에 페루를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시킨 산마르틴 장군을 기리기 위해 100 년 후에 만들어진 산마르틴 광장 중앙에는 산마르틴 장군 동상이 있다. 아르헨티나의 장군이었던 산마르틴은 시몬 볼리바르와 함께 당시 스페인의 지배를 받고 있던 남아메리카의 독립운동을 전개해 칠레와 페루까지 독립을 시켰다. 산마르틴 광장은 페루의 독립을 기리는 광장이요, 아르마스 광장은 스페인 정부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던 광장이다.
웅장함이 돋보이는 건물은 대통령궁이다. 스페인의 정복자 피사로가 직접 설계를 담당했다는 건물로 피사로가 리마로 수도를 옮기고 암살되기 전 몇 해 동안은 그곳에서 살았다고 한다. "피사로 궁"이라고도 하는데 이곳에서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 정오에 근위병 교대식이 열린다. 관광객들은 철창 너머로 그 모습을 볼 수 있어 인기가 있다.
남미에서 가장 오래된 리마 대성당은 아르마스광장 남동쪽에 있다. 피사로가 직접 대성당의 초석을 놓아 건설했다고 한다.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성당은 그다지 크지는 않지만 지하 무덤인 카타콤으로 유명한데 피사로의 미라도 안치되어 있다고 한다. 성당 안에는 최후의 만찬 그림을 비롯한 많은 고서와 가구 초상화 은으로 장식된 제단 등이 있다.
사막에 세운 리마의 주변 산은 거의 민둥산이다. 리막강 너머 보이는 집은 전기도 물도 들어가지 않는 빈민촌으로 치안이 좋지 않고 구도시와 대조를 이루고 있다.
신시가지인 미라 플로레스
미라 플로레스는 칠레와 태평양 전쟁을 벌일 당시 칠레군의 리마 진입을 막기 위해 방어진지를 구촉하고 싸웠던 전략적 요충지로 우리나라의 한남동쯤 되는 지역이다. 미라플로레스 지역을 스페인 정복자들이 장악하고 스페인의 고위 귀족계층들이 단체 이민을 와서 스페인 양식으로 정원을 끼고 건축물을 지었다. 정원도 있고 건물이 넓고 크다.
센트럴 공원에서 바닷가를 향해 이어진 호세 라르코 거리를 걷다 보면 다양한 상점과 레스토랑으로 붐비는 미라 플로레스의 중심가가 나온다.
복합쇼핑몰인 라크로마르에는 각종 고가브랜드숍이 들어와 있어 사람들로 붐비는데 태평양까지 내려다 보여 풍경도 즐길 수 있다.
강물에 운반된 모래와 자갈등이 퇴적된 후 융기하여 발생한 층적 단구에는 그물이 쳐져 있다. 아마 비가 많이 오면 산에서 굵은 자갈이 흘러내리는가 보다. 태평양이 내려다보이는 위쪽 평평한 곳에는 호텔과 아파트 등 건물이 있고 잘 정비된 거리와 가로수 그리고 깔끔한 고급 주택이 있다.
해안 절벽을 따라 꽃 잔디가 무성한 산책로에는 키스하는 연인상이 있다. 페루의 젊은이들이 이곳에서 첫 키스를 하면 헤어지지 않는다는 속설이 전해지는데 해안의 일몰이 압권이다.
센트로 지역이 리마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라면 미라플로레스는 리마의 현재를 보여주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