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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미의 세상 Aug 01. 2018

여보, 고마워!

"너희들 어떻게 지내니?"

"집에서 에어컨 틀고 꼼짝도 안 해요" 

"오빠는? "

"응 에어컨 설치 부탁했더니 2주일이나 걸린다 해서  도서실에 가서 책 보고 있다."

연이은 사업실패로 올케와 자식들에게 눈에 가시가 되어버린 큰오빠는 올해 칠십이다. 미운털이 박힌 아버지의 칠순을 맞아 여행을 보내드린다는 조카의 말에 오빠는 요새 한껏 부풀어 있다. 오빠네 가족끼리 제주도 여행을 마련해 놓았건만 울 남편과 꼭 같이 가야 한다고 저렇게 우겨서 다음 달에 가까운 안면도로 또다시 가족여행을 가기로 했다. 


오빠가 오늘은 한잔 생각이 나나보다. 내 전화를 끊더니 이번에는 남편에게 전화하여 술 약속을 하고 있다. 환갑이 지난 남편은 친정식구들과 만나기만 하면 막내가 되어 맘껏 어린양을 하고, 언니 오빠들은 또 그 모습을 귀여워해 주신다. 형편이 별로 좋지 않은 오빠가 지난번에 얻어먹은 술이 부담스러웠나 보다. 그것을 갚겠다고 장어집에 가자 한단다. 돈도 없으면서....


남자들끼리 술 약속은 이루어졌고 나는 모임이 있어 갔다가 혹시나 하여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직 안 끝났어요?"

"응 너 기다리고 있어. 이리로 와!"

나이 들어가며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이 가족이다.  부모님  돌아가신 뒤로는 큰오빠가 친정의 대들보 역할을 하고 있다. 사업만 하던 오빠가 나이 들어 택한 것이 조경일이다. 말이 조경이지 아마도 거의 막일인 듯하다


뿌연 연기 속에 낯익은 얼굴들이 보인다. 소주병을 네 개가 비운 오빠들은 이미 혀가 꼬일 대로 꼬이고  목소리톤이 잔뜩 올라가  있다.  마누라를 위하여 남겨놓은 고기 덩어리를 열심히 구우며 이것저것 반찬을 챙기는 남편의 손이 분주하다. 

"아, 왕년에는 말이야...." 늘 나오는 레퍼토리. 아버지 살아생전, 나도 잘 기억하지 못하던 때의 이야기가 또 나오고 있다. 그래도 추억할 거리라도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또다시 나오는 땅 이야기. 서울에서 집장사(?)를 하셨고 안양에서 양계장을 크게 하셨던 아버지는 어느 날 갑자기 우리들 곁을 떠나셨다. 우리는 너무 어렸고 상황을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요즘  튀어나오는 쪼가리 땅들 덕에 가끔씩 용돈을 받고 있다. 

또, 안양 신도시 개발로 서류는 아버지 명의로 되어있으나 연립주택이 들어서 있는 땅은 오빠들에게 막연한 희망을 주고 있다. 과연 우리 살아생전에 돌려받을 수는 있는 건지... 다들 현시세를 두들겨보고는 초췌한 얼굴이 순간 희망으로 반짝인다.


2차까지 끝내고 헤어져야 할 시간, 칠 남매 중에 여섯째인 나를 늘 조카와 헷갈려 이름을 바꿔 부르는 오빠는 

"야, 너 이제 아줌마가 다 되었다" 

"오빠, 아줌마가 아니라 이젠 할머니야!"

"그래 잘 가고 즐거웠다" 굳을 대로 굳은 투박한 손을 잡은 나는 그 자리에 그만 얼어붙고 말았다. 

파란 신호등이 꺼질세라 바짝 여윈 70대 노인이 휘청거리며 뛰어가고 있다.


마을버스를 기다리며 한잔하여 기분이 좋아진 남편의 수다가 길어진다.

"여보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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