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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진호 Nov 06. 2018

마이크로소프트를 만든 괴짜, 폴 앨런을 추억한다


빌 게이츠라는 이름만 들어도 일반 사람들은 그가 누구인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폴 앨런에 대해 물어보면 제각기 다를 것이다. 미식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미식축구 구단주? 미국 농구를 좋아한다면 농구 구단주? 아니면 여행을 좋아한다면 거대한 요트 주인 등등 말이다. 그러나 그가 빌 게이츠와 함께 마이크로소프트를 1972년에 창립한 인물로 아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사진 1 - 마이크로소프트 설립 당시 빌 게이츠(오른쪽)와 폴 앨런(왼쪽)]

폴 앨런은 빌 게이츠 보다 2살 많은 형으로서 시애틀 레이크사이드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컴퓨터를 만지던 그 지역의 유명한 해커들 중 하나였다. 폴 앨런은 괴짜의 기질이 철철 넘쳤다. 하버드 대학교를 간 빌 게이츠를 휴학하게끔 만들고,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라는 회사 이름을 지은 후 함께 스타트업을 한 장본인이 폴 앨런이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스타트업 시절에는 지금의 시애틀이 아닌 뉴 멕시코 주에서 먼저 설립한 이유는, 알테어 8800 (Altair 8800)이라는 컴퓨터를 만드는 본사인 MITS가 앨버커키 도시에 있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알테어 8800은 지금의 퍼스널 컴퓨터의 아버지 격으로 세계 최초의 상업용 조립식 개인용 컴퓨터이다.

초기 가격은 397 달러였고, 부품 형태로 전달되어 조립되어 사용했어야 했으며, 전면의 토글스위치로 코드를 입력했다. 결과가 깜박이는 불빛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그 불빛을 해독할 줄 알아야 했는데, 지금의 CRT 없는 임베디드 시스템도 비슷한 원리를 가지고 있다. 중앙처리 장치의 기억용량은 256 바이트에 불과했다.  

[사진 2 - MITS사의 알테어 8800]

1975년 1월호, 파퓰러 매거진(Popular Magazine)에 이 알테어 8800 가 소개된 것을 폴 앨런이 보고 빌 게이츠에게 이야기함으로써 마이크로소프트가 창업했다. 초창기 마이크로소프트는 이 알테어 8800의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수 있는 BASIC 프로그래밍 언어로 기업들에게 소프트웨어 개발을 해주던 곳이었다. 빌 게이츠가 코딩도 하면서 비즈니스 부문을 맡았다면, 폴 앨런은 전적으로 프로덕트 매니저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써 두각을 나타내었다.


그리고 수많은 기업들을 돌아다니던 빌 게이츠는 PC에 동작하는 운영체제와 사무용 소프트웨어가 필수가 되겠다는 점을 포착한 후 시애틀로 회사를 옮기고 운영체제를 만들었다. 그 결과  IBM으로부터 PC 운영체제(MS-DOS) 소프트웨어 독점 운영권을 따냈고,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그다음 키보드를 통한 커맨드 라인 명령 방식인  MS-DOS를 마우스라는 새로운 그래픽 인터페이스로 변형한 윈도 95가 전 세계 판매가 되면서 소프트웨어 왕국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여기에 한 가지 인상 깊은 에피소드가 전해지고 있다. 스티브 잡스의 애플이 애플 II라는 하드웨어를 직접 판매하기 시작하자, 폴 앨런은 “우리도 직접 PC를 판매하자”라고 빌 게이츠에게 제안했다고 한다.
그러나 빌 게이츠는 그 자리에서 “나는 소프트웨어 가치가 하드웨어보다 높을 것으로 믿는다!”라고 일언으로 거절했다고 한다. 그러나 나중에 키보드와 마우스와 같은 주변기기를 판매하는 것을 시작했다고 한다. 어쩌면 그것이 지금의 서피스와 같은 훌륭한 노트북을 만들고 판매하는 원동력이 되었을 리라 믿는다.

이렇게 잘 나가던 폴 앨런에게 불운이 닥친다. 안타깝게도 그는 호지킨 병(혈액암의 일종)으로 마이크로소프트를 그만뒀다. 폴 앨런 대신 같은 대학교를 다녔던 천재적 수학 재능을 가진 영업 사원인 스티브 발머가 회사의 주축이 된다.

마이크로소프트 퇴사 후 폴 앨런은 미국 사회에 기부를 많이 했다.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보다 먼저였다. 특히, 시애틀 지역에 기부를 많이 했는데, 프레드 허친슨 암 연구센터나 워싱턴 대학교의 컴퓨터 공학부와 이공계에 연구를 위하여 지속적으로 많은 돈을 기부했다. 심지어 아프리카의 에볼라 바이러스 퇴치를 위해서 기부금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폴 앨런은 뇌과학 분야에도 많은 투자를 했다

[사진 3 - 뇌과학 외에 교육, 암센터 등에 투자]

2011년 뉴욕 타임지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폴 앨런의 저서 ‘아이디어맨’을 읽어보면, 폴 앨런은 아이디어가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었고 이것을 사업에 투영시켜 성공할 수 있는 재주가 뛰어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스포츠에도 관심이 많아 미식축구(NFL)의 시애틀 시호크스(Seahawks) 구단주가 되었고, 2014년에 우승컵 트로피를 선수들과 함께 같이 들어 올렸다. 농구(NBA)는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 구단주이기도 하다. 그러나 영국 축구 프리어미어 리그에도 관심 많아 첼시 FC를 사들이고자 노력했으나 실패했었다.

[사진 4 - NFL에서 3번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시애틀 시혹스 구단주로서의 폴 앨런]


또한 지금의 일론 머스크나 제프 베이조스 보다도 먼저 우주여행 산업에 투자했다. 버트 루탄과 함께 Spaceship One 이라는 회사를 설립해서 모하비 사막에서 로켓을 쏘아 올릴 수 있도록 투자했다. 또한 개인적으로 소유하고 있던 중고 보잉 B752비행기를 도널드 트럼프에게 판매하기도 했다.


그리고 다양한 자기만의 취미를 사업으로 한다는 것에 놀라웠다. 또한 한 번은 유니온 레이크 주변 지역을 사들여 부동산 개발 사업에도 참여했는데 지금 그곳이 아마존 본사가 있는 곳으로, 대박을 터뜨렸다.

[사진 5 - 아마존 본사가 자리 잡고 있는 유니온 레이크 주변 지역 ]

폴 앨런은 뭔가에 한번 꽂히면 모든 것을 수집하는 수집광으로도 유명하다. 본인이 직접 기타리스트이기도 하지만, 시애틀의 전설적인 기타리스트인 지미 핸드릭스를 기리고자 스페이스 니들 근처 팝 컬처 뮤지엄(EMP)을 지었다.


여기에는 전 세계의 팝 미디어 라이브러리가 있어 누구든지 거기서 직접 음악을 믹싱해 보는 경험해 볼 수 있다. 가끔 저에게 시애틀의 볼거리를 추천해달라는 분들에게 파이크 마켓 플레이스에 있는 스타벅스 제1호점 보다 여기를 더 추천한다. 특히, 아이들에게 많은 상상력과 풍부한 경험을 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 6 - 폴 앨런이 기부한 시애틀의 팝 컬처 뮤지엄(EMP)]

또 여기 박물관에는 그동안 수많은 SF 영화에서 촬영했던 소품들을 볼 수 있다. 특히,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 필름에 사용되었던 다양한 우주 비행선과 스톰 트루퍼스 군단의 의상, 그리고 리들리 스콧 감독의 에이리언 1편에 나온 에일리언이 성충이 되기 전 나온 허물 들이 전시되어 있는 것이 제 기억에 아직도 생생하다.


워낙 회사를 일찍 그만두어서 회사 내에서 한 번도 본 적은 없었고(편집자주-마이크로소프트는 필자의 전 직장이다), 성격이 내성적이라 대중들에게 잘 나타나지 않아 제가 직접 만나 본 적은 없다.  지난 달인가 마이크로소프트 동문 네트워크로부터 그가 암으로 투병 중이고 많이 아프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이렇게 빨리 사망 소식이 찾아올 줄은 몰랐다. 그전에도 지병이 있었고 잘 지내 왔기 때문에 그런가 하기도 했다.
아무튼 내가 아는 폴 앨런은 아마 천국에서도 기발한 아이디어로 뭔가 사업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드는 열정적인 사람이다.



이 글은 바이라인 네트워크, 10월 16일 칼럼으로 특별히 기고한 글을 재편성했다. 더 관심 있는 분들은 다음의 글들을 읽어 보기 바란다.


https://byline.network/2018/10/16-34/


https://www.gatesnotes.com/About-Bill-Gates/Remembering-Paul-All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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