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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데이 Jun 29. 2020

달려라 개복치

멘탈 크런키 러너의 러닝 일지 [5,6월 러닝]

학창시절 

중학교 때 부모님이 사랑으로 키워주셔서 살이 엄청나게 찐 적이 있다. 160cm가 안되던 시절 70kg을 넘었었다. 살이 찌니까 움직이기 싫어지고, 컴퓨터 앞에만 앉아있고(게임을 사랑했다), 자존감이 낮았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우리 아들, 걱정 마! 지금 보기 좋아. 그리고 어차피 다 키로 가니까~!"


그땐 왜 그랬는지 도저히 모르겠지만 순진하게 믿어버렸다.


살이 키로 가려면 운동을 해야 했다. 학교가 끝나면 줄넘기를 하고, 집 주변을 설렁설렁 뛰었다. 몸에 땀나는 게 싫었지만 억지로 참았다. 참을 수 있던 원동력은 하나였다. 이 살들 못빼면 내가 내 인생을 놔버릴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살이 적당히 빠졌고, 키도 자랐다. 적당히라는 건 배가 홀쭉해지고 그런 게 아니다. 배는 볼록하고 허벅지는 서로 겹쳐지지만 그래도 걸을 때 덜 힘들 정도가 '적당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는 체중을 유지했다. 다행히 키가 조금 더 커져서 비율로 봤을 때는 크게 이상하진 않아보였다. 이때는 축구를 몇 번 했었는데, 멘탈이 개복치인 타입인 나는 '경쟁'컨셉의 활동을 버티기 힘들어한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2020년이 되었다 나는 어느새 서른이 되었고, 군대 안에서도 별 다른 관리는 하지 않았고, 살이 좀 찌는 느낌이 든다 싶으면 먹는 걸 줄였다. 운동은 피하려고 했다. 그래도 산책은 꾸준히 해줬다. 걷기를 많이했다.


나는 여름을 싫어하고 겨울을 좋아한다. 추워서 벌벌 떨며 날씨 욕을 해도 겨울이 좋다. 땀을 흘리는 것보단 훨씬 낫다. 겨울은 몸을 가릴 수 있는 옷의 종류도 다양하기도 해서 좋아한다.


러닝 진짜 극혐

러닝은 나를 초라하게 만들어서 싫었다. 학창시철 달리기를 하면 항상 하위권이었고, 옆에서 자세를 웅크리고 있던 사람들은 '탕!'소리가 들리자마자 야생의 가젤처럼 치타처럼 앞으로 뛰쳐나간다. 군대에서도 체력테스트를 하면 항상 좋지 못한 성적을 받곤 했다. '경쟁'이라는 시스템이 러닝을 싫어지게 만들었다. 


개복치와 같은 멘탈을 가진 나는 '경쟁'이 두렵다. 멘탈이 약하니 경쟁을 한다고 하면 최대한 뒤로 물러나거나 경쟁을 하지 않는 방향으로 유도를 한다거나 한다. 경쟁을 싫어하는 나는 스포츠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경쟁과 함께 따라다니는 게 있는데 '비교'라는 녀석이다. 경쟁을 하면 꼭 비교를 하게 된다. 경쟁은 결과가 뚜렷하고, 수치화가 가능하기에 비교가 따라온다. 비교를 하면 자존감은 바닥을 친다. 비교해서 내가 우위를 점한 적이 한 손에 꼽을 정도인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의자에 앉아있는데 허리가 당기고 쑤시는 일이 발생했다. 다리를 꼬고 앉아있다 보니 허리는 휘었고, 휜 허리는 다리를 꼬지 않으면 오래 앉아있을 수 없게 되었다. 두 다리를 지면에 두고 오래 못 앉아 있는다. 그리고 허리에 힘이 없다 보니 등도 굽기 시작했다. 등이 굽기 시작하니 목이 앞으로 빠지기 시작했다. 나는 점점 거북도사가 되어가고 있었다. 어깨는 키보드와 마우스를 잡고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말려 들어갔다. 거울을 보는데 꼴 보기 싫었다. 거울은 최대한 피했다. 


타인의 시선이 나를 뚫어버릴 것 같아

나는 주위 시선을 꽤나 신경쓰는 편이었다. 헬스장은 한정된 공간에 사람들이 많아서 부담되니 패스했다. 그리고 살찐 상태에서 중량운동하면 건강한 돼지가 된다는 소리를 들어서 헬스는 안 하기로 했다.  나 혼자 조용히 다른 사람과의 경쟁 없는, 비교 없는 운동을 생각했다. 결론은 '달리기'였다. 몸과 운동화만 있으면 바로 시작할 수 있기도 해서 접근하기도 용이했다. SNS에서도 인기가 많은(인증이 많은)운동 중에 하나이기도 했다. (제가 운동을 하고 sns에 올리겠다는 건 아닙니다. 저는 그냥 염탐인간입니다.)


반팔 면티를 입고, 반바지를 입고 운동화를 신었다. 다행히 우리 동네는 뛰는 사람은 거의 없고 걸으면서 산책하는 어르신들이 많았다. 어르신들은 젊은이가 뛰는 모습이 신기했는지 저 멀리서부터 내가 지나갈 때까지 나를 바라봤다. 너무 쳐다봐서 어쩔 줄 모르겠다. 다 나를 쳐다보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진짜 디질 것 같았어요

 초반에는 좀 걸으면서 몸을 풀어줬다. 몸이 좀 풀렸다 싶었을 때부터 달리기를 시작했다. 뛴 지 한 4분 정도 지났나, 숨이 안 트여서 들숨과 날숨을 아주 거칠게 호흡했다. 코로 호흡을 해보려고 했지만 숨이 안 쉬어져서 입으로 숨을 쉬었다. 그러다보니 입술은 빠르게 마르고, 혀로 입술을 문대면서 촉촉하게 만들었지만 또 다시 금세 말라버렸다.


 다들 러닝할 떄 무선 이어폰 딱 차주고 달리는 모습이 보여서 나도 에어팟을 끼고 음악을 들으면서 뛰었다. 음악 비트 때문에 내 숨 쉬는 게 잘 안 들리고, 비트와 내 호흡 BPM이 달라서 엉망진창이었다.  노래는 당분간 듣지 않기로 했다. 심장이 아주 빠르게 뛰게 되면 귀가 막혀서인지 펌프질하는 소리가 들린다. 쿠악쿠악하는 소리.


 시선처리에서 멘탈이 많이 흔들렸다. 멀리 바라보니 '오래 달린 것 같은데 아직도 여기야...? 좀 걸을까..' 등등 온갖 잡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멀리 바라보지 않고 약간 시선을 아래로 깔았다. 시선을 바닥 쪽으로 향하도록 하니까 그나마 좀 괜찮아졌다. 그리고 반대쪽에서 걸어오는 사람들이랑 자꾸 눈 마주쳐서 거시기했는데, 눈을 깔으니까 편해졌다. 당분간은 고개는 들고, 눈은 내리까는 방법을 써야겠다.


정강이 쪽 근육이 엄청나게 당기고, 무릎도 덜덜 떨리고, 육수는 줄줄 흐르고, 숨은 쉬어도 끝이 없었다. 무엇보다 안경을 쓰고 달리니까 자꾸 흘러내려서 더 힘들었다. 신경 쓸 게 한두 가지가 아니라서 멘탈이 뻑났다. 


집에 돌아와서 티를 벗으려고 하는데 또 땀에 흥건하게 젖은 면티는 내 몸과 하나가 되어 벗겨지지 않으려고 필사적이다. 러닝이 그래도 돈이 안 드는 운동이라고는 해도 티셔츠는 하나 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면티와 기능성 티의 차이는 분명히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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