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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nergist Oct 09. 2018

과거로 돌아가 바꾸고 싶은 순간

돌아가면 진짜 실천할 수 있을까

* 이 글은 18년 9월 18일 블로그에 먼저 작성되었습니다.


현재를 살고 있지만 현재는 없다. 시간은 계속 흘러 미래를 현재로 바꾸고, 특별한 순간도 1초만 지나면 과거가 된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과 별개로 나는 과거와 미래에 붙잡혀 현재를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곧 내 삶에 들이닥치는 30대의 삶을 겪어보지도 않은 채 불안해하고, 좋았던 한 순간이나 후회스러운 과거를 매일 되새기기도 한다. 사실 미래는 그럴싸하다.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걸 이제 아니까, 들어가는 나이에 불안해도 괜찮고 영화에서 나올법한 행복을 상상해도 괜찮다. 상상을 밑거름으로 탄탄한 계획도 짤 수 있고 현실화의 과정을 통해 또 다른 희열이나 좌절을 만날 수도 있다. 하지만 과거는 다르다. 지나간 과거는 돌릴 수도 없고 바꿀 수도 없으니 상상만 할 수밖에. 흔히들 과거의 한 순간으로 돌아가 인생을 바꿀 수 있다면 어떤 지점으로 돌아가겠냐는 이야기를 한다. 이제껏은 굳이 그 지옥 같은 과거로 돌아갈 필요가 있나 싶었다.


뉴질랜드에 오기 전에 잠시 알바를 하면서 나보다 몇 살 어린 친구들과 일을 했었다. 대부분은 20대 초중반이었기에 꿈을 좇아 열정을 다해 삶을 살아가는 친구들이었는데, 그중 조용하지만 아주 소신이 뚜렷한 친구를 만났다. 남들 다 대학교에 진학할 때 자기는 굳이 대학에 갈 필요성을 못 찾아서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왔고, 지금은 돈 벌면서 평소에 하고 싶었던 것을 이것저것 배우러 다니다가 곧 뉴질랜드로 워킹홀리데이를 또 간다고 했다. 정말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부러움과 존경을 담아 대단하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은, 과거로 돌아간다면 대학교를 안 갈 것 같다는 것. 



대학교를 안 가겠다는 결정을 했다면, 고등학교 때 그렇게 등수와 평균 소수점까지 집착하는 삶을 살았을까? 내 욕심에 공부를 어느 정도 하기야 했겠지만 그렇게 혈안이 되진 않았을 것 같다. 모두가 대학을 갈 때 나는 안 갔으니 루저라는 생각이 들었을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남들과는 다른 길을 택하는 특이한 사람’이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십 대 초반에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기란 쉽지 않았을 테지만, 적어도 이것저것을 시도해 보면서 젊음을 낭비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고등학교 때까지 틀에 갇혀 선생님이나 부모님이 지시하는 것들만 하고 살다가, 스무 살이 되면서 완전하지도 불완전하지도 않은 자유가 주어지면 그때부터 혼란이 오기 시작한다. 누군가의 트윗이 생각난다. 며칠 전까지는 화장실 가는 것도 허락을 받아야 하던 학생들에게, 학교 시간표 짜는 것부터 시작해 자신의 인생 전체를 스스로 설계하라고 하는 것이 너무 어불성설이라는 것. 경쟁의식과 결과를 중요시하는 가치만을 심어주는 불합리한 제도인 대학입시 때문에, 중학교도 고등학교도 진학을 위해 공부만 하면서 개인의 가능성을 점점 줄게 하는 시기인 것 같다.

 

나는 누가 어느 대학교 나왔냐고 묻는 게 끔찍이 싫다. 창피하다. 대학교를 못 나와서도 아니고, 좋은 학교를 다니지 못해서도 아니고, 내 수준에 조금 과분한 학교를 나왔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모의고사 성적으로 연고대를 바라보다가 수능에서 미끄러져서 어쩔 수 없이 인 서울 상위권 대학교에 진학하게 됐는데, 나 자신에도 실망하고 학교도 별로 재미없을 거라고 예상했었다. 한 가지 간과한 점은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쉬운 전형으로 진학을 했다는 것. 실업계 특별전형이라 인문계 친구들과 비교했을 때 수능에 공들인 시간과 노력이 다르니 아는 것도 달랐다. 하루는 방법론 수업 퀴즈에서 아예 종잡을 수 없는 문제가 나왔다. 답을 보니 통계를 이용해서 풀어야 했는데, 수포자였던 나는 통계가 기억도 안 날뿐더러 이 문제를 통계로 풀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인문계와 실업계는 커리큘럼이 워낙 다르다. 고등학교 때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했기에 컴퓨터를 다루는 능력이나 실용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내가 강했을지 모르지만, 대신 문학이나 역사 등의 과목을 배우는 시간이 줄었기에 기본적인 교양 상식도 많이 부족했다. 내가 과소평가했던 대학 네임밸류가 뒤통수를 치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나는 자연스럽게 공부와 멀어졌고 동아리나 학생회 활동 등 내가 잘하고 재밌어하는 것들에만 집중했다. 고학년이 되면서 필요성을 느껴 복수전공을 시작했는데, 이 학부는 또 실용적인 학문에 가까워서 억지로 이론수업을 하는 분위기였다. 공부가 필요할 땐 제대로 하지 않았고, 내가 공부를 필요로 하자 원하는 걸 충족시켜주지 못했던 대학교. 다니는 4, 5년 동안 결국 배운 게 별로 없고 그래서 학교에 애정이 없다. 어디 가서 학교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아니고, 누군가 어쩌다 알게 돼서 어 너 그 학교 나왔어?라고 물으면 주제를 바꾸려고 노력한다. 창피하다. 


모두가 전공을 살려 취직하는 것도 아니고, 대학을 나와도 나처럼 방황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물론 자신을 실패자라고 하고 싶지는 않지만 성공한 삶이라고도 못 한다. 그 성공한 삶의 기준이 우리나라에서는 안정적인 직장, 안정적인 관계에서 발전한 안정적인 가정, 내 집 마련, 노후 준비 등인 것이면 성공한 삶을 살고 싶지도 않지만. 학사라고 적힌 종이 한 장을 받기 위해 4천만 원의 돈과 4년의 시간을 들여야 한다면, 나는 다시 돌아가 대학교에 가지 않는 삶을 택할 것 같다. 물론 이것도 내 손에 졸업장이 들려있는 상태니까 말할 수 있는 것도 맞다. 그때 안 갔다면 이 정도도 안 됐을 수 있다. 우리나라 사회는 대학 졸업장 없이 뭔가를 하는 것이 힘들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내 동생은 고3 때 수능을 준비하다가 자기는 공부머리가 아니라며 직업학교에 가겠다고 했고 결과적으로 자기가 즐거운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청년창업을 준비하고 있다. 이제 생각해보면 아주 똑똑한 결정이었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대학을 가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 하고 싶은 것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 고등학교 시절 내내 알바를 해서 졸업할 때쯤 수중에 300만 원 정도가 있었던 기억이 난다. 조금 더 일하고 모아서 갭 이어처럼 여행을 다니며 세상에 대한 눈을 틔우고 싶다. 공부는 배우고 싶은 것이 생기면 내 돈 벌어서 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내 돈을 들이니 수업료 아까운 줄 모르고 출튀하거나 자체 휴강하는 일도 없을 것이고, 학교 이름에 집착하지 않고 커리큘럼을 따라 선택하면 적어도 손에서 공부를 아예 놓지는 않을 것 같다.


나는 대학에 진학하는 나이가 된 사촌동생들이나, 고등학생을 만날 일이 있으면 대학 진학이 필수요건은 아닐 수도 있다고 말해준다. (대부분 결국 대학에 진학하지만..) 물론 20대 초반에 또래들과 대학을 다니면서 얻게 되는 추억이나 경험들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런 경험들은 인생 타임라인 어느 지점에서라도 겪을 수 있다. 학력이 재능을 막지 않는 사회가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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