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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nergist Oct 10. 2018

빚지는 것이 싫어서

정신적인 독립으로 향하는 길

남에게 짐이 되거나 폐를 끼치게 되는 상황이 싫다. 가벼운 부탁을 해야만 하는 상황도 싫다. 누군가에게 빚을 지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마음의 빚도 싫지만 금전적인 빚이라면 더더욱 싫다. 


최근 몇 달간 이런 경우가 많았다. 일하는 첫날 홀에서 일하는 바리스타가 키친으로 들어와 너 오늘 음료 안 마셨지? 라며 뭐 만들어줄까,라고 물었다. 커피를 안 마시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정당하게 카페에서 내 돈 내고 사서 마시는 것도 아니고 부탁해야 하는 상황이 싫어 괜찮다며 거절했다. 그 이후로도 몇 번 계속 물어왔는데 나는 밤에 잠을 못 자서 커피를 못 마시고, 목이 마르면 탭에서 물 마시면 되니까 계속 물어보지 않아도 된다고 돌려보냈다.

 

웰링턴 시티에 나가면 주차공간이 많이 없어서 주거지역에 차를 대고 한참 걸어서 CBD로 나가곤 했다. 캠핑장에서 알게 된 키위 아저씨가 그렇게 하지 말고, 자기가 CBD에 있는 헬스장에 다니는데 비밀번호를 알려줄 테니 치고 들어가라고 했다. 일단 말은 감사하다고 하고 비밀번호는 들었지만 주차는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결국 나는 그다음에도 또 주거지역에 차를 대고 걸어 다녔다.



호의는 호의로 받아들일 줄도 알아야 하는데, 나는 왜 이렇게 꽉 막힌 삶을 사는가. 나의 행동으로 인해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 적이 있었나 생각해봤지만 크게 생각나는 것은 없다. 어릴 적부터 폐 끼치는 걸 싫어했던 것 같은데, 부모님의 영향이 크다. 기본적으로 고맙습니다 죄송합니다를 꼭 달고 살게 가르쳤고, 웬만하면 당신들이 힘든 일을 맡아해서 자연스럽게 나도 그렇다. 하지만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사는 것이 내게 생긴 권리를 침해하라는 말은 아니다. 갑자기 커피가 마시고 싶은 날이 있어도 이제껏 바리스타에게 부탁 안 했으니 자연스럽게 안 하게 되고, 급하게 CBD에 주차할 일이 있어도 헬스장 바로 옆에 있는 유료주차장에 시간당 몇 불씩을 내고서라도 들어갈 것이다.

 


기본적으로는 빚을 지고 싶지 않은 것이다. 내가 이번에 상대방에게 빚을 지면, 다음번에 당당하게 뭔가를 요구해야 할 때가 오면 주저하게 된다. 혹시나 상대방이 생색내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걸 눈 뜨고 보고 있는 것도 괴롭다. 그냥 안 받고 상대 안 하는 게 마음이 편하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사람이 이렇다고 들었다. 기본적으로 이렇게 빚지는 상황 자체를 싫어하고, 더치페이를 좋아하며, 빚이라고 생각하면 전부 되갚아서 일정한 선을 긋는다는 사람. 꼭 들어맞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영 아닌 것도 아니다.



나는 가족에게도 개인주의 성향을 발산하는 중이다. 부모로부터 정신적인 독립을 하기 위해 경제적인 독립을 주장하는 사람이다. 오죽하면 엄마가 이런 나를 보고 진짜 이상한 애라고 했다. 이건 부모님께 빚을 지고 싶지 않다는 것과 동시에 그들이 원하는 나로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이다.


우리 남매는 어려서부터 주기적인 용돈을 받지 않았다. 꼭 필요한 준비물이 있으면 그때그때 받아서 썼고 속인 적도 없다고 자신한다. 일 년에 두 번 명절 때 친척들로부터 받는 용돈을 저금해서 필요할 때마다 꺼내 사용하곤 했다. 그런데 언젠가 부모님한테 이런 말을 들었다. 그 용돈 사실 니들 꺼 아니야. 엄마 아빠도 친척동생들 만날 때마다 주니까 그대로 돌아오는 거야,라고. 그 어린 나이에도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가져가세요 그럼. 입 밖으로는 못 뱉었지만 찝찝한 표정을 했던 게 기억난다. 내 것도 아닌 것을 내 것인 줄 알고 살았구나, 라며 부모 자식 간의 관계에도 돈은 정리가 되어야만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빠는 나보고 꼭 서울대를 가야 한다고 했다. 사립학교는 등록금이 비싸 학비를 댈 형편이 어려우니 국립대인 서울대를 가라고. (학비가 저렴한 국립대가 서울대뿐이 아닌데 그렇게 말한 건 그냥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가라는 이야기였겠지) 엄마는 우리 남매에게 미성년자인 19살까지만 먹여주고 키워줄 테니 성인 되고 대학교 가면 알아서 벌어 살라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아예 납득이 가지 않는 소리는 아니었다. 우리 집은 찢어지게 가난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세상 넉넉한 부잣집도 아니었기에 당연히 학비는 내가 벌거나 보태야 할 일이었다. 나는 (서울대에는 가지 못하고) 한 사립대학에 진학했고, 성적장학금을 받지는 못했지만 국가장학금이나 대표자 장학금 등으로 가계 부담을 덜면서 알바로 어물어물 내 용돈을 충당했다. 그 말인즉슨 내가 온전히 벌어서 대학 등록금을 내지는 않았다는 거다. 그렇게 대학교도 졸업했고, 어학연수도 등골브레이킹으로 다녀왔다. 회사 다니면서는 집에서 지내며 집과 밥을 제공받았고, 지금은 엄마 지인의 빌라에 전세로 들어가 동생과 자취를 하고 있다. 나는 이제 서른이 다 되어 가는데 아직까지 부모 금전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 너무 끔찍하고 괴롭다. 그렇게 나에게 세상으로 나갈 준비를 하라던 엄마는 어디 간 건지. 진짜로 대학 학비를 본인이 다 벌어서 내고 자취까지 한 친구가 있는데 그 이야기를 할 때마다 부끄러워지곤 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런 일이 벌어졌다. 대학교 때 알바를 하면서 휴대폰 사용요금을 내 통장 계좌로 돌리자 엄마가 서운해했다. 우리 생일 때마다 선물 대신 일정 금액을 주는 엄마에게 동생이 이제는 우리가 용돈을 드려야 할 때라고 하며 돌려주자 또 서운해했다. 미친 듯이 오르는 서울 집값을 감당하지 못하면 보증금 없는 쪽방에서 이십 대를 보내듯, 나는 이 빌라에서 사는 대신 그렇게라도 살면서 경제적인 독립을 하고 싶다고 하니 또 서운해했다. 끝도 없이 우리의 편리와 편안을 위해 사랑을 제공해주는 것은 감사하지만 나는 그럴수록 정신적인 독립이 힘들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건 자식에 대한 집착과도 연결되는 문제다. 아이가 태어나는 동시에 본인들의 이름을 잃고 누구 엄마, 누구 아빠가 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식의 성공이 곧 나 자신의 성공으로 이어진다. 자신의 인생에 더욱 집중할 필요가 있다. 성인이 되고 자유를 얻게 되는 순간 어느 정도는 놔주어야 한다.


최근에 동생이 화상을 입어 통원치료를 하면서 엄마한테 보험료에 대한 것을 물었단다. 그러면서 흘리듯 덧붙이는 이야기는 ‘보험료는 언제부터 가져갈 건지’. 가져가면 서운해하고 안 가져가면 빚진 것 같은 이 느낌을 어찌해야 좋을까. 한국에 돌아가자마자 내 이름 앞으로 된 보험료부터 넘겨받으면서 빚을 청산하고 정신적인 독립에 또 한 발짝 다가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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