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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nergist Oct 27. 2018

나이가 들면 겁이 많아진다

현실에 눈을 뜨게 되는 것일 수도

10년 전의 나와 비교했을 때 가장 큰 변화를 꼽자면 단연 겁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강산이 변할 동안 청춘을 낭비하고자 수많은 도전과 실패들을 겪었는데, 시련을 극복하고 한층 더 성숙해지는 동시에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깨달으면서 지레 겁을 먹게 되더라.


돌아보자면 나는 주변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어이구 저 겁대가리 없는 것, 선머슴아 같은 것’ 이라며 걱정을 빙자한 혐오발언을 듣고 살아왔다. 늦은 밤이나 새벽에 아무렇지도 않게 골목길을 돌아다니면서도 무서움을 별로 느끼지 못했고, 오히려 내 앞에 가던 여성분이 우연히 같은 길을 뒤따르는 나를 오해하고 걸음이 빨라지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어릴 때는 놀이공원 롤러코스터의 짜릿함으로는 부족했던지, 가족여행에서 번지점프를 발견하고는 당장 도전하려고 했다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제재를 받고 구석에서 쪼그려 울기도 했다. 결국 부모님이 업체를 설득해 (당시엔 규정이 그다지 빡빡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당당하게 점프를 마치고 하루 종일 깔깔댔던 기억. 아빠는 아직도 그 얘기를 하며 혀를 내두르곤 한다. 유혈이 낭자한 장면이 가득 나오는 영화를 보면서도 눈을 가리기는커녕 어떻게 저 장면을 연출했는지 궁금해했던 나였다.



이제는 약간 겁이 난다. 고소공포증까지는 아니지만 높은 곳에 올라가면 다리가 떨리는 게 느껴진다. 오클랜드에서 스카이타워에 올라갔을 때도 그러더니, 최근에 더니든에서 오른 가파른 언덕에서조차 덜덜... 예전에는 100% 희열이었던 그것이, 낙하나 부상에 대한 두려움 반과 희열 반으로 나뉜 것 같다. 그래도 익스트림 스포츠는 아직 즐긴다. 타우포 호수에서 스카이다이빙을 할 때는 제트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면서 으악, 이거 어떻게 하지 라는 생각이 들더니 강사가 뛰자니까 냉큼 뛰어내렸던 (ㅋㅋ) 1월에 엄마랑 함께할 호주 여행에서는 3천 피트 더 높은 15,000피트에 도전한다.


밤늦은 길을 겁 없이 돌아다녔던 건 세상을 너무 몰랐기 때문인 이유가 크다. ‘선머슴아’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었던 건 우연이 아닌데, 미투 글에서도 언급했듯 성희롱/추행/폭행을 당하는 건 남성성을 가진 여자가 아닐 거라는 생각에 더욱 여성성을 지우려 노력하고 살았었기 때문이다. 어떤 바보가 밤길에 남자인지 여자인지 헷갈리는 사람을 추행하려 따라갈까. 요즘은 탈코르셋을 위해 숏컷을 하는 여성들이 많다던데, 나는 역으로 숏컷인 채 살다가 그게 답이 아닌 걸 알게 된 경우다. 그렇게 지우려던 여성성을 다시 찾아가고 있는 결과로, 나는 밤길의 적막과 어둠이 무서워졌다. 최근엔 밤에 깜깜한 도로를 달리다 에전에 연예인들이 하는 우스갯소리로만 여겼던 고속도로 귀신들이 생각나 오싹했던 기억이 있다. 사람도 무섭지만 영적인 존재도 무시할 수 없지.


의학드라마의 피칠갑 수술 장면, 19금 고어/호러 영화의 유혈 낭자 장면들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요즘엔 비위가 상한다. 최근엔 심지어 갑자기 구토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영상을 멈추고 한참 심호흡을 해야 했다. 그 이후에도 비슷하게, 피가 나거나 신체 절단이 연상되는 장면에서는 아예 눈을 감아버리고 소리도 웬만하면 피하게 됐다. 덕분에 작품을 90% 정도만 즐길 수 있게 됐다. 참 아쉽다.


이 모든 겁의 원인은 죽는 것에 대한 두려움인가 싶다. 떨어져 죽는 것, 추행을 당해 비관 자살하거나 강도를 당해 죽는 것, 내 몸에서 피가 흐르고 사지가 절단되면 곧 죽음에 이르는 것에 대한 겁이 나는 게 아닐까. 누구나 한 번쯤 그랬듯 자살을 생각해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한 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남겨져서 슬퍼하고 나를 처리해야 하는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다. (죽어서도 빚을 지고 싶지 않은 이 마음..) 죽음이라는 건 누구에게나 언제고 한 번은 찾아오는 것인데, 먼저 간다고 혹은 늦게까지 버티고 있다가 간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 별로 없는 것 같다. 통제하고 준비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앞에 언급한 상황에 처해져서 급하게 맞이하는 것이 싫다. 겁을 내야 하는 상황들을 알았으니 조금 더 조심하고 때가 되어 행복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면, 겁이 많아진 것도 괜찮다고, 내 성격 바운더리에 새로 들어온 것을 환영한다고 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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